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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May 31. 2022

독일어로 지하철티켓을 끊었어

4月 - 하리가 일수에게

안녕 일수?


4월은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게 지나간 것 같지? 3월 말에 편지를 붙이고, ‘4월 둘째 주 정도에는 미리 편지를 써 놓아야지’ 생각했는데 이제 마지막 주가 되어 버렸어.


이번 달에는 벚꽃 구경을 하러 본에 다녀온 게 기억에 남아. 겹벚꽃이 유명하다고 한국에 있을 때부터 들었는데 직접 가보니까 또 새롭고 무척 좋더라고. 그리고 요 며칠 전에는 혼자서 뒤셀도르프에 갔다 왔어. 한인 미용실에 들르려고. 그 도시는 내가 지금 있는 도시와 다르게 무척 큰데, 또 다른 매력이 있었어. 거리도 되게 예뻤고, 거리 악사들도 있었고.


머리가 점점 길어지고, 무거워지고, 눈앞을 가릴 만큼 자라서 불편해졌을 때 나는 결정을 해야 했어. 한인 미용실을 가느냐, 기르느냐, 현지인이 하는 미용실을 가느냐. 원래 기를 생각이었는데, 과거의 경험을 비추어 생각해 봤을 때 도무지 안 되겠더라고. 불편하기도 하고, 내 외관과 맞지도 않고-옛날에 장발이었다가 짧게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했을 때 정말 만나는 사람들마다 칭찬을 그렇게 했어. 그래서 현지인이 하는 미용실을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가, 혹여나 망쳐질 두려움에 생각을 바꿨어. 독일어도 못 하는데 머리까지 이상한 애가 되고 싶진 않았거든. 아무리 도전을 환영한다 해도, 짝을 찾고자 하는 욕망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는 짐승으로서 그것은 너무 큰 리스크였어. 시간과 돈을 한인 미용실에 조금 더 들였지만 충분히 그 값을 했어. 잘 자르시더라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뭔가를 좀 해보려던 찰나에, 같은 어학원에 다니는 나름 친한 친구에게 메세지가 왔어. ‘하리 너 무서운 사진 보고 싶어?’ 하며. 그래서 나는 ‘얘가 또 뭔 웃긴 걸 보내려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답장을 하기도 전에 냄비에 넣어져 있는 생닭(삼계탕용 닭 같은) 사진을 보낸 거야. 순간 진짜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다 들었다. 이걸 농담이라고 보내는 것이 어이없어서 실소가 나왔고, 슬펐고,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마치 예상 못 했을 때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어. 되게 놀랐거든. 이런 ‘테러’를 당한 건 또 처음이라서 ㅋㅋㅋㅋ. 물론 걔가 날 미워해서 엿 먹이려고 보낸 건 아녔어. 내가 ‘이건 너무한 것’이라고 설명을 하니까 거듭 사과하기도 했고. 근데 그것과 별개로 충격은 한동안 가시질 않더라. 그러면서 한국과 독일의 시차가 있는 게 무척 아쉬웠어. 얼른 너한테 전화를 할 수도 없으니 원. 뭐 여하튼 요런 에피소드가 최근에 하나 있었다!


이제 두 달 가까이 지내며 내게 익숙해진 장소들에 대해서 좀 들려줄게. 일단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Bochum이라는 도시야. 독일 북서쪽에 위치한 Nordrhein-Westfalen(NRW)주에 위치해 있어. 독일에는 16개의 주가 있는데 NRW주 북쪽에 하나의 주가 더 있어. 그래서 완전 북쪽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는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고 말해.


이 보훔이라는 도시는 걸어서 한두 시간 정도면 시내 중심가를 다 돌 수 있을 만큼 작은 동네야. 사람도 그만큼 적고. 나는 독일의 다른 도시들도 다 이만할 줄 알았는데 여기가 특히 작은 곳이더라고. 근처에 쾰른, 뒤셀도르프 같은 곳은 서울처럼 엄청 커. 뒤셀도르프에 갔을 때 사람이 많아서 정말 정신이 없었어. 그리고 그 대도시 특유의 지하철 분위기는 날 좀 불안하게 만들더라고. ‘나중에 베를린에서 살아보고 싶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베를린에 가면 생각이 또 바뀔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지금은 보훔에 꽤 익숙해져서 살짝 먼 거리를 여행했다가 보훔 중앙역에 도착을 하면 긴장이 풀리고, 주위 공기가 따뜻해지고, ‘집에 왔다’는 생각이 들어.


기차역에서 기숙사로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해. 이 도시에는 U35라는 하나의 호선이 있어. 종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교와, 내 기숙사와, 중앙역을 다 지나가서 내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대중교통이야. 이곳의 지하철은 한국과 달리 중앙에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통로를 기준으로 양 옆에 2명 2명이 마주 볼 수 있게끔 자리가 설계되어 있어. 2명은 기차가 달리는 방향을, 2명은 달리는 반대방향을 보며 가는 거지.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대각선 자리에 앉아. 넓게 넓게 앉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 봐.


그리고 나 이제는 티켓으로 골치 썩지 않아. 매달 일정 돈을 내면서 NRW주의 모든 대중교통을 다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을 ‘직접’ ‘독일어’로 구매했거든. 계약을 했다 해야 하나. 여튼 한 뼘 성장했어. 


그렇게 내 앞의 빈 의자를 응시하며 10분 정도 타고 오면 Markstraße 역에 도착해. 거기서 3분 정도만 걸어가면 내 기숙사야. 밖에서 봤을 땐 주황색과 하얀색으로 칠해진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건물인데 내부는 꽤나 괜찮게 되어 있어. 당구, 탁구, 운동, 공부, 파티를 할 수 있는 공용 공간들도 있고. 그럼에도 나는 내 방과 공용 주방에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 13제곱미터가 내 방의 크기야. 가로는 3걸음 정도, 세로는 4걸음하고 조금 더 되는 정도? 이 방에서 내 마음에 가장 드는 부분은 큰 창문이야. 신선한 공기랑 햇빛은 너무 중요하잖아. 방 문을 열면 바로 마주 보는 벽에 이 창이 있어. 문을 닫고 왼편에 세수와 양치를 할 수 있는 세면대가 있고, 그 옆에 장롱이 있어. 그게 공간을 분리해줘. 장롱 바로 뒤에 침대가 있고 창문 밑에 긴 책상이 놓여 있어. 어딘가에서 봤는데, 독일인들은 양치하는 것을 무척 사적인 것으로 본대. 한국에서처럼 칫솔을 입에 물고 거실에서 말하면서 티비를 보는 건 뜨악할 일이라는 거지. 그래서 세면대가 안에 있나 봐. 그냥 내 추측이야. 이 공간에서 나는 자고, 먹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명상을 하고, 온라인 수업을 듣고, 요가를 하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유튜브를 봐. 내 방이 편하긴 한데, 공부는 참 안 된다?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내가 외향성이 강한 사람이라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방 안에 오래 있게 되는 날은 우울해지고 답답해져. 온라인 수업이 있는 화요일과, 수업이 없는 수요일에 좀 그래. 그래서 이 공간을 딱 ‘쉼의 공간’으로 명명하고 그 외의 활동은 다 외부에서 하려고 노력 중이야. 밥 먹는 거나, 공부하는 거 등 말이야.


밥은 공용 주방의 식탁에서 자주 먹어. 처음에는 이 공용주방에 적응이 무척 안 됐어. 많이 더러웠거든. 한편으로는 이해도 갔어. 살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들도 많이 있을 테니, 요리하면서 튄 기름을 닦지 않는다거나, 싱크대 배수구의 음식물 찌꺼기들을 치우지 않는다거나, 먹고 난 뒤 식탁을 닦지 않는다거나,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을 수 있지. 듣기만 해도 짜증나지 않니? 허허. 다행인 건 이런 게 많이 나아졌다는 거야. 주방이 한 번 크게 더러웠다가 확 치워지는 계기가 있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는 나름 청결을 유지하고 있어.


밥을 거의 항상 해 먹기 때문에 주방에는 일주일에 7시간 이상은 머무는 거 같아. 매번 요리할 때마다 방에서 후라이팬이며, 냄비며, 칼 등을 다 싸들고 주방으로 가서, ‘개인 주방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지만 그래도 나름 살만해. 어떻게 보면 그 공간이 같은 층 사람들과의 사교 공간이야. 비슷한 시간 때에 요리를 하는 친구들이 있거든. 그리고 나름 자기 음식을 신경 써서 챙겨 먹는 애들도 주방에 자주 들락날락거리고. 그래서 친해진 몇몇의 친구들이 있어. 인도 친구가 기름에 양파와 큐민씨드를 볶을 때면 잠시 동안 향에 취해있게 되는데, 그 친구 말고는 딱히 자기 나라 음식을 하는 애들이 없더라. 뭐 나만 하더라도 아직까지 한국 음식 한 번도 해먹은 적이 없으니까 일반적인 걸까. 


내가 한국에서보다 여기서 더 잘할 수 있게 된 것 중 하나가 규칙적인 달리기야. 한국에서는 집 주위에 달릴만한 공간이 마땅치도 않았고, 하루 루틴이 들쑥날쑥했어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코스를 달리는 게 힘들었거든. 여기에서는 항상 규칙적으로 어학원에 나가니까 루틴이 생겨서 월, 수, 금 이른 아침마다 달리는 게 습관이 되었어. 달리는 공간은 기숙사 옆의 숲길이야. 이 길이 난 참 마음에 드는 게, 일단 달리면서 나무와 꽃과 풀들을 볼 수 있어서 좋고, 풍경이 계속 바뀌어서 달리는데 지루하지가 않아. 양 옆으로 나무가 높이 자라 있는 콘크리트 길을 지나면 시야가 트인 주택가가 살짝 나왔다가 다시 흙길이 나오고, 운동장 옆을 지나친 다음에는 흰색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를 뛰었다가, 주택가 뒤로 작은 개천을 따라 나 있는 길을 지나쳐. 매번 달리는 거리를 살짝 씩 늘리고 있는데 다음 길은 어떤 모습일지가 기대되는 것도 큰 동기부여가 돼. 다음에 한 번 동영상 찍어서 보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일단 내 현재 목표는 30분간 쉬지 않고 뛰는 것과 10km 마라톤에 나가보는 거야. 


이렇게 아침 일찍 뛰고 와서 밥을 먹고, 15분을 걸어서 보훔 대학교로 가. 내가 듣는 어학코스는 대학교 건물에서 하거든. 보훔 대학교의 외관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페인트를 칠해놓지 않아서 엄청 투박해 보여. 근데 안의 시설은 또 꽤나 좋아서 대비를 이룬달까. 어느 날은 바깥에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그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한국에서 이 대학의 사진을 보며 ‘얼른 가고 싶다’며 두근거리던 게 생각나더라. 근데 이제는 정말 이 공간에서 수업도 듣고 밥도 먹고 춤도 추니 신기했어.


어학원 수업이 이뤄지는 공간은…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하나의 홀이야. 거기에 우리가 책상과 의자를 깔고 수업을 들어. 아, 다목적 홀이라고 설명하면 딱 맞을 거 같아. 그 공간에서는 월, 목, 금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시간을 보내. 그리고 목요일 저녁에는 같은 공간에서 대학 댄스 서클의 수업이 열리지. 기숙사를 제외하고 이 공간에서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는 거 같아. 편지를 쓰다 보니 그 갈색의 바닥을 가진 홀이 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아. 


수업을 마치면 밥을 먹으러 가는데 날씨가 좋고 점심을 싸왔을 때는 밖에 아무 곳에나 앉아서 햇빛을 쬐며 점심을 먹고, 아니면 학교 식당으로 가. 이 대학의 메인 식당은 금년 초부터 100% 비건으로 바뀌어서 난 아무 걱정 안 하고 가서 먹을 수 있어. 비건으로 바뀌었다고 사람이 적어진 것도 아닌 거 같아.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밥도 맛있어. 접시마다 가격을 매기는데 나는 모두가 그러듯 작은 접시에 담을 수 있는 최대치를 담아서 계산대로 향하지. 그럴 때면 딱 대학생의 삶을 살고 있는 거 같아. 


만약 여기가 비건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난 아마 소외감을 많이 느꼈겠지? 그리고 점심을 안 싸왔을 때마다 살짝 더 멀리 떨어진 식당에 가서 밥을 더 비싼 가격에 사 먹었거나 기숙사로 돌아갔겠지. 친구들과 같이 밥 먹을 기회를 많이 놓쳤을 테고. 이런 소외감을 안 느껴도 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이 참 안타까워. 한국이든 다른 나라의 학식도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메뉴로 바꿔 주면 안 되나?


내가 일주일에 두 번 살짝 멀리 갈 때가 있어. 댄스 동호회에 참석하려고 지하철을 타고, 지상철(S-Bahn)로 갈아탄 다음 조금 걸어가. 그럼 한적한 동네 끝자락에 위치한 댄스홀에 도착하게 돼. 널찍한 홀에 테이블과 의자, 홀 바깥쪽에는 파티를 할 때 쓰일 것 같은 조그만 주방이 있어. 거기서 일주일에 한 번은 라틴댄스를, 다른 한 번은 스탠다드 댄스를 배워. 춤추는 게 너무 재밌어서 이 동네에는 뭐 없나 찾아보다가 한국에서부터 찜해놓은 곳이었거든. 독일 현지인들하고도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거 같아서 거의 독일 도착하자마자 가서 췄는데 벌써 8-9주 넘게 다녔네. 내가 자주 심리학자 김경일씨 영상을 보는데, 그분이 뭐라냐면, ‘스스로에게 감탄할 일을 많이 만들어라’고 했거든. 춤이 나한테는 그거야. 그래서 그 공간에 가면 내 동작이 살짝씩 더 멋져져 갈 생각에 설레. 그리고 댄스파트너와 합을 맞추는 거여서 즐겁기도 하고, 독일 현지 사회에 안전하게 들어간 느낌도 들어. 일수 너도 다음에 기회 되면 쥴스랑 같이 댄스스포츠 춰 보는 건 어때? 커플이 함께 하면 아주 좋을 스포츠야. 꽤 재밌고. 


이 정도가 두 달 차 독일서 살고 있는 내게 익숙한 공간들이야. 너는 순천에서 어떤 공간들에게 익숙해졌을지 궁금하다. 인스타를 보니까 이제 베일리를 데리고 산책도 나가던데 곧 베일리도 함께 기억할 셋의 추억이 쌓이겠네. 그럼 순천은 너에게 조금 더 특별해질 거 같아. 뭔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미소가 번진다. 너와 쥴스와 베일리의 행복을 항상 바랄게.


길에서 풀을 뜯는 토끼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는 다람쥐를 신기해하며

하리가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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