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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Nov 28. 2023

6시간짜리 인간관계

마치 그래야 했던 것처럼

  일일알바를 갔다

  근로계약서로 나와 용역업체가 계약한 고용시간은 09시부터 15시

  알바들은 다같이 모여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이곳에서 알바를 얼마나 했는지, 일이 얼마나 힘든 지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본 사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대화에 어색함은 없었다

  낯설지만 예의있게, 웃고 서로 존중하고 질문들과 답변들이 빠르게 오고 갔다

  마치 그래야 했던 것처럼


  나와 다른 한 분에게 A라는 업무가 주어졌다

  우리는 함께 A라는 업무를 수행했다

  일을 하면서 서로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는 곳, 다음에도 알바하러 오시는 지, 여기 알바 했었는지 등등

  알고 보니 상대방은 운동선수 출신 직장인이라고 한다

  백수인 나와는 달랐다

  그런데 평일에 알바를 하러 왔다

  궁금했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마치 그래야 했던 것처럼


  얼마 뒤, 일이 밀려들어 오고

  여러 알바들이 다함께 일을 빠르게 수행했다

  고참 알바 및 직원들의 고성소리도 함께했다

  우리는 빠르게 일을 수행했다

  빨리 끝난 사람은 다른 분들의 일을 도와주었다

  마치 그래야 했던 것처럼


  전쟁같은 일을 하다가

  15시가 되어 알바들은 일을 마무리했다

  직원들은 "서로 아는 사이에요?" 물어봤으나 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빠르게 환복을 하고 회사를 나갔다

  서로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나누고

  6시간짜리 근로 계약도 마무리하고

  6시간짜리 인간관계도 마무리했다

  마치 그래야 했던 것처럼


  공동체가 붕괴되어가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

  서울 중심으로 1인 가구는 급속도로 늘어가고 있고

  사회전반적으로 점점 개인주의가 퍼지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유대, 공동체, 사회안전망, 외로움을 다루기에는 아직도 사회는 미숙하다

  알바들은 각자의 외로움을 품고 독거청년으로 돌아간다

  우리들은 애써 서로의 외로움을 무시한다

  마치 그래야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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