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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Feb 08. 2024

제로콜라를 마시며 우리가 이어지지 못한 이유를 생각했다

  제로콜라를 매일 저녁마다 마신 지 어연 2주가량이 흘렀다.

  제로콜라는 전에 함께 만났던 형이 물처럼 마시던 음료수였다.

  형네 집에서 형과 함께 제로콜라를 마시며 놀았던 시간이 그리웠던 것일까, 얼마 전부터 제로콜라를 마시고 싶어서 매일 저녁마다 제로콜라 한 잔씩 마시고 있다.


  검은 액체 위로 갈색 기포들이 떠있고 탄산들이 통통 튀어 오른다.

  나는 검은 잔에 담긴 제로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우리가 이어지지 못한 이유를 생각했다.


  형은 재밌고 내 스타일이었다. 생각도 적당히 깨어있고 똑똑하고 외모도 내 스타일이었다. 티키타카도 잘 되었다.

  형도 MBTI가 T(사고형)였고 나도 T(사고형)이었다. 함께 논쟁하는 재미도 있었다. 서로 설득되지 않는 이야기에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과정도 재밌었다. 내가 절대 설득되지 않을 때 형이 결국 마지막에 '아 짜증나'하고 마무리되는 모습도 재밌고 귀여웠다.


  하지만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먼저 연락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였다. 형이 아무리 내향적인 사람이고 내가 외향적인 편이라지만, 나도 트러블 후에 먼저 손을 내밀 때 에너지가 상당히 많이 소요된다. 트러블이 있을 때면 내가 몇 번 손을 내밀었지만, 형은 손 내밀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트러블을 극복한 후에 나는 형에게 앞으로 형도 손을 내밀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다음 트러블이 있었을 때, 형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지쳐서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렇게 관계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참 허무했다. 비록 형과의 만남이 오래된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관계라는 것이 맺고 끊기가 쉬워졌다니.


  직장인이 된 후로 대학생 때보다 관계에 좀 더 진중하게 다가가기로 생각하곤 했다. 대학생 때는 너무 아이 같았어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잘해보고자 노력하고자 마음먹었던 상태였다.


  나는 애인과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빈번히 관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가능한지 의문이 들곤 한다. 심지어 퀴어 분들 중에 애인과 함께 한 지 오래된 4050대 퀴어 분들도 헤어지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의문은 배가 된다. (물론 이성애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맺고 끊음이 쉬워진 현대 사회.

  옛날에는 부모님의 뜻대로 결혼하고 이혼은 용납되지 않고 부부가 맞지 않더라도 서로 맞춰가던 사회였으나 더 이상 그렇지 않은 현대 사회.

  각 개인이 최고존엄인 현대 사회.

  싸우고 지지고 볶아도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는 더 이상 불가능한 걸까.


  제로콜라를 마시며 우리가 이어지지 못한 이유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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