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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 May 16. 2024

책 읽다가 한국이 왜 자살률 높고 불행하고

출산율이 낮은지 스토리를 읽고 한번에 와닿았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어떻게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언쟁을 하고 삶에 대한 고찰을 해보고 싶어서 도서관의 철학 코너를 갔다. 삶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다가... 속물 관련 이야기를 읽고 문득 '헐! 이거 한국 얘기다!!! 이래서 한국이 자살률도 높고 다들 불행하게 느끼고 출산율도 낮지!! 이걸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한번에 이야기해주다니!!!'라고 놀랐다.


  다음은 나를 감동시킨 책 내용 일부




"독미나리 이야기를 속물 근성의 세계관에 적용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이 세계관을 따라 살아가고 있고, 거기서 비롯되는 고통과 만 죽은 분명히 실재한다. 속물 근성의 세계관은 허공의 것이 아니라 근거 있는 관점일 수도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속물이란 '세상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위계 속에 등급별로 놓이고, 위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그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결정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속물의 세계관에서는 돈이 많다면, 외모가 뛰어나다면, 사회적 지위가 높다면, 권력이 강하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더 나은 사람이다. 반대로 외모가 못하다면, 사회적 지위가 낮다면, 권력이 약하다면 그 사람은 그 만큼 초라한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이 속물 근성의 세계관을 따르는 가상의 도시가 있다. 이 도시에서 독미나리 제도가 시행되었다. 돈, 외모, 사회적 지위, 권력, 명예 등을 가장 적게 가져서 가장 초라한 위치에 있는 시민이 도시의 시장을 찾았다. 시장은 물었다. "어찌하여 독미나리를 원하는 것입니까?"

시민이 답했다. “저는 가장 초라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가치란 남들보다 더 나은 부분을 가지고, 발휘하고, 뽐내는 데서 나옵 니다. 그러지 못하면 쓰레기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가치가 영인 사람입니다. 삶의 가치가 영이라는 것은, 삶을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장은 수긍했다. "안타깝군요.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경멸하고 비웃으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당신에게는 남들에게 뽐낼 만한 것이 하나도 없군요. 당신의 논변은 타당합니다. 독미나리를 드리겠습니다.” 시민은 독미나리를 먹고 죽었다.

다음 날, 또 다른 시민이 시장을 찾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삶은 가치 있었는데, 가장 초라한 시민이 죽는 바람에 자신보다 못한 비교 대상이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고 했다.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자기보다 낫다고도 했다. 시장은 어제 죽은 시민의 논변이 이 시민에게도 타당함을 확인했다. 그는 독미나리를 주었다. 시민은 독미나리를 먹고 죽었다. 그다음, 그다음, 그다음 시민이 시장을 찾았고 독미나리를 받아 냈다. 마침내 시장 이외에는 도시에 남은 마지막 시민이 시장을 찾았다.

시장이 물었다. “당신은 모든 부귀영화를 누린 데다 젊고, 잘생기고, 무엇 하나 남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독미나리를 원하는 것입니까?"

시민이 답했다. “시장님, 이제 이 시에는 당신과 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부귀영화, 젊음과 외모, 학력에서 당신과 저는 동등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시장이라 저보다 큰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제 삶에 가치는 없습니다."

시민은 시장이 논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곧바로 독미나리를 챙기려고 했다. 그러나 시장은 독미나리를 손에 쥐고 주려고 하지 않았다.

"시장님 왜 이러십니까? 제 삶이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은 논증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저에게 독미나리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자 시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당신이 이 독미나리를 먹고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된단 말입니까? 나는 당신보다 큰 권력을 가져서 당신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보람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이 죽어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뽐내지 못하면, 내 삶은 가치가 없어집니다. 당신이 이 독미나리를 먹는다는 것은 나보고 죽으라는 말입니다."

시민이 답했다. “시장님, 그건 당신의 사정입니다. 제 삶은 제 것이고, 제가 사는 것이지, 당신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 당신이 뽐내고 경멸하고 비웃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계속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것은 저를 단지 수단으로 다루는 것입니다. 저를 당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일종의 노예로 쓰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자유의지로, 모든 시민이 따르는 법칙에 따라, 삶의 가치가 없다고 판명된 제 삶을 끝내기 위해, 독미나리를 청구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나의 관계가 시장과 시민의 관계인 이상, 당신은 도시의 법에 불복종하여 권한을 남용할 수 없습니다. 독미나리 제공을 거부하는 것은 시장의 재량을 일탈한 위법 행위입니다."

시장은 말없이 독미나리를 시민에게 건네주었다. 시민은 독미 나리를 먹고 편안하게 죽었다.

이제 시장은 마지막 남은 독미나리를 들고 사유를 시작했다. 그의 주위에는 삶의 가치가 위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규정된다고 자동 발화하는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생애 최초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삶이 가치 없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필연적인가? 그 결론은 단지 독단으로 제시된 세계관을 전제로 할 때만 성립할 뿐이다. 그 세계관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삶의 구조 자체에 근거한 것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속물 근성의 세계관을 받아들이자 시민들이 전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속물 근성의 세계관은 삶의 구조 바깥에서 허황되게, 허공에서 규정된 것이다. 논리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삶을 종결시키는 결론을 도출하는 세계관은 삶의 참여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세계관은 삶을 사는 것과 수행적으로 모순되는 관념이다. 애초에 그 관념을 따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느 시민도 죽을 필요가 없었으며, 아니 그전에, 시민들이 서로를 깔보고 경멸하고 주눅들 필요가 전혀 없었다.

"우리 모두는 삶을 낭비했구나."
시장은 독미나리를 버리고 도시 밖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출처 : 삶은 왜 의미 있는가 속물 사회를 살아가는 자유인의 나침반, 이한 지음, 미지북스 출판, 2016년 8월 초판 2쇄, pp.340-343




  위 이야기를 읽으며 솔직히 많이 찔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10대 때 공부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성적순으로 인간의 가치가 매겨진다고 생각했다. 무의식적으로 공부 못하는 친구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간주했다. 비록 성인 이후 내 사고가 잘못되었음을 크게 깨닫고 많이 고쳤으나, 나의 카르마는 아직도 내 습으로 남아있고 현재도 사람을 비웃거나 무시하는 습관이 다소 남아있다. (늘 경계 중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 사람들 중 80~90%가 위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비교하고 위계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할 것 같다. 10대 때부터 끊임없이 서열화를 주입받으니 당연지사로 보인다.


  학벌, 재력, 직업, 외모 등 다양한 서열화로 인해 사회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는 것 같다. 서열적인 가치가 나의 가치를 규정짓는다고 생각하고, 이로 인해서 사람들이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출산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자살을 하고, 우울증에 걸려 정신의학과를 방문하는 것 같다.


  이런 서열적인 사회적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어렵게 느껴진다. 나 스스로도 차별당하기는 싫은데 차별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늘 경계하는데 어렵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이렇게 안되면 점차 아침마다 108배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세상 모든 가치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이러다 진짜 절 들어갈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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