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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Apr 14. 2024

다시, 시작이다

아이들에게 받은 상처는 아이들로 인해 치유된다

'3월에는 웃지 마라!'

교직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진 룰이다. 난 이 룰을 가볍게 여겼다. 미소가 있는 친절한 교사가 되고 싶었다. 작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생긴 습관이었던 것 같다. 작은 학교란, 한 학년에 한 학급, 한 반에 10명 남짓, 전교생 100명 안되는 소규모 학교를 말한다.


5년 만에 옮긴 학교는 한 학년에 4-5반 정도 되고, 한 반에 25명이었다. 몇 몇 아이들은 미소 띈 친절한 교사를 우습게 여겼다. 교사의 지도에 반항하고 급기야 교사를 공격하는 행동으로 발전(?)했다. 1-2명의 남학생들의 무례함은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아이들에게 도전 정신을 불러 일으켰고, 도전 정신을 교사에게 반항하는 데 사용했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교실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었고, 내 마음도 같이 무너졌다.


결국, 학교를 쉬었다.


3월, 다시 돌아온 학교는 내게 참 낯설었다. 그래도 모든 게 새로 셋팅되어 새로 시작하는 곳이 학교라서 감사했다. 나만 이 낯설음을 경험하고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새로 만난 4학년 25명의 아이들에게 우습게 보이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올해 컨셉은 '저승사자'라고 아침 식사 중에 가족들 앞에서 공표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내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옆에서 지켜봤던 터라 힘껏 응원해주었다. 고마웠다.  검은 폴라티에 검정 바지, 검정 코트를 입고 출근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


첫 날,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굳은 표정으로 지켜할 규칙들을 나열했다. 바르게 앉아 조용히 나의 말에 귀 기울여 듣는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자꾸 작년에 난장판 같았던 교실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신경을 바짝 곧추세웠다.


한 달이 지났다.


나의 컨셉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올해 만난 아이들은 마음밭이 달랐다. 수업 중 모든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교사의 지도에 따라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잘 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렇진 않았지만, 학급 분위기가 잘 유지되도록 아이들끼리 서로 돕고 배려했다. 함께 살아가는 작은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가는거구나, 싶었다.


한 달동안 절대 웃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학습 활동에 몰입해 있는 표정을 보거나 기발한 질문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에게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뒤돌아 서서 웃기도 하고, 올라가는 입꼬리를 힘겹게 잡아 내리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고민이 될 때마다 질서있는 교실이 결국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고, 일년동안 아이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베이스가 된다는 마음으로 나를 다잡았다. 그동안 굳이 하지 않아도 됐던 생활지도는 낯설고 힘들었지만, 애써서 하다보니 내가 꽤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일종의 성공 경험을 한 기분이랄까.


4월이 되면서 아이들도, 나도 조금씩 긴장이 풀리면서 웃으며 이야기도 하고 조금은 덜 엄격하게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이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 뭐든 열심히, 즐겁게 하려는 아이들을 어떻게 더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날 발견한다.


나를 위로해주며 '아이들에게 받은 상처는 아이들로 인해 치유된다.'고 했던 선배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밤이다.

올 한해, 다시 교사로 살 수 있는 힘이 생기게 해 준 아이들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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