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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지현 Nov 29. 2023

도마뱀, 21

열아홉 겹



  요새 우리 집에서는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처녀귀신이라도 있는 양 매일매일 해가 지고 밤이 늦으면 불이 꺼진 방 한 켠에 웅크린 검은 형체가 흑, 흑흑흑, 어흐흑, 어찌나 한이 맺혔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내 가슴까지 둥둥 울린다. 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잠을 물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그 굽은 등에 내 등을 붙인다. 그리고 그 등이 편평해질 때까지,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등을 돌려 나의 품에 기댈 때까지 그저 기다린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밤이면 밤마다 아린 심장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것밖에 해줄 수 없다.





-





  큰아이 슬아가 제 배우자를 찾아 혼인식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아 기르는 동안, 둘째아이, 아들 승호는 마흔을 목전에 두고도 결혼한다는 말이 없었다. 그런 승호를 두고 아내는 답답해했고, 때로는 엄마 친구 딸을 만나보겠느냐며 아이를 옥죄기도 했다. 나는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내가 아내라는 운명을 만났던 것처럼, 내 분신 승호도 제 운명으르 찾는 날이 오겠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 아들이 혹 동성애를 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요즘 그렇게 많다는 비혼주의자인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쪽이든 부모는 아무래도 승호보다는 먼저 생을 마감할 것이고, 그 애의 곁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아들이 남자를 짝이라며 데려오는 상상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다. 어떤 아들의 모습이라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승호가 서른아홉 여름, 저보다 다섯 살이 어린 참한 아가씨를 데려왔을 때, 우리 부부는 꼭 승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만큼 기쁘고 설레며 긴장했다. 마주한 여자는 눈꼬리가 쳐지고 입이 커 부드럽지만 야무진 인상이었으며 약간 통통한 체격에 보통 키로 아주 곱고 어여뻐 보였다. 서른넷의 나이, 이름 모를 작은 직장이지만 십 년을 근속했다는 회사, 담담한 말투까지 무엇 하나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 없어 나와 아내는 그 애의 손을 꼭 붙잡고 우리 가족이 되기로 해 주어서 고맙다 말했다.





  문제는 상견례를 이틀 앞둔 저녁에 발생했다. 승호가 저녁을 먹고 어물어물 하다가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결혼한 적이 있고, 아이도 있어요. 열두 살.





  나는 잠시간의 침묵 후 아내의 눈이 흰자를 보이며 까무룩 넘어갈 뻔한 것을 보고 아내의 양 어깨를 덥썩 붙잡았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아내가 입을 떡 벌리고 승호를 쳐다보았다. 아들은 고개를 숙인 채 방금 아내가 깔끔히 훔쳐 낸 식탁을 바라보았다. 그 눈이, 그 침묵이 아내의 분노를 샀던 것일까. 아내는 대번에 아들의 뺨을 후려쳤다. 순식간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승호는 목에 뻣뻣이 철심이라도 박은 듯 그저 식탁을 향해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일단 아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정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기실 진정할 수 없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인지라 말문이 막혔다. 아아아악! 비명 같은 아내의 고함 소리가 들릴 때까지, 셋 중 누구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상견례는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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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로 아내는 밤이면 밤마다 잠자리를 벗어나 가슴을 치고 울었다. 승호는 꼬박꼬박 퇴근 후 딴길로 새지 않고 집에 들어왔지만 아내는 마치 아이가 없기라도 한 듯 보란듯이 우리 둘의 밥상만 차려 밥을 먹었다. 승호는 별 말 않고 인사를 한 후 제 방에 들어갔다. 문도 닫지 않고 제 방 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으며 매일 저녁을 굶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밖에서 밥이라도 먹고 들어오지, 결혼하겠다는 그 여자라도 만나 위로라도 받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애 밥을 굶기는지 아내를 향한 원망도 슬그머니 있었다. 그러나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평소 아무리 화가 나도 밥만은 목숨처럼 챙겨 먹이던 아내가 이렇게까지 행동을 하는 심정을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둘을 둘 수는 없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넨 것은 더 만만한 쪽, 그러니까 승호 쪽이었다.





  괜찮냐.

  ......미리 말씀 안 드려서 죄송해요, 아빠.





  나는 빈손으로 들어오기 민망해 깎아 들고 들어온 사과 접시를 승호에게 내밀었고, 승호는 선선히 그 접시를 받아들었다. 먹어. 그 말이 끝나고서야 승호는 사과 한 쪽을 베어 물었다.





  임마, 엄마한테 얘기하기가 힘들면 아빠한테라도 미리 말을 했었어야지.

  죄송해요.

  ......말을 안 한 거야, 못 한 거야?




  내 말에 아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린 시절 그대로인 그 눈에 눈물이 맺혔으나, 아들은 조금 컸다고 그것을 떨어뜨리지 않는 데에 성공했다. 눈물은 눈 대신 목구멍에 맺힌 것 같았다.





  정말 좋은 사람인데, 그런데...... 그 사람의 과거 때문에 부모님이 그 사람을 보지도 않고 별로라고 생각하면 답답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랬어요.





  정말이지 어린 생각이다. 그렇다 해도 그것을 미리 상의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그 막연한 두려움을 경험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이의 말은 영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나 참하고 괜찮아 보였던 여인이 이혼과 아이라는 두 단어 이후로 내게도 괘씸하고 이상한 여인이 된 것도 맞는 말이었다.





  어디에 반했는데?





  아들은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나를 힐끔 보았다. 나는 사과를 하나 더 집어 아들의 입가에 갖다 대었다. 아들은 그것을 물지 않고 제 손으로 옮겨 받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결혼이 하고 싶으냐고. 아들은 말없이 사과를 몇 번 베어 물어 입에 욱여넣었다. 나는 아들의 입을 가득 막은 사과가 와삭와삭 씹혀 젖은 목구멍 너머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그 저녁, 나는 실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아들의 만남과 연애 이야기를 실컷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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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밤도 아내는 새벽녘에 등을 돌리고 흐느꼈다. 나도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내의 등에 기댔다.





  여보, 그러지 말고....... 우리 승호 응원해 주는 건 어때.





  아내가 팩 소리가 나게 고개를 돌렸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초리에 데일 것 같아 찔금했다.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 이상의 것을 해야 한다.





  당신 미쳤어! 그 앙큼한 여자의 뭘 믿고 우리 승호랑 결혼을 시켜!





  참한 색시였던 승호의 애인은 '그 앙큼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아내의 사고 구조를 알 것 같았다. 마흔이 다 되도록 크게 모난 데 없던 승호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결혼에 대해 한 선택이, 아내에게는 아마도 배신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또, 믿고 싶었겠지. 우리 아들이 그랬을 리 없다고. 엄마를 이렇게 상처 입힐 일을 할 리 없다고. 그러니 가장 편리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 여자를 원망하고 미워하기로, 모두 그의 탓으로 돌리기로. 그렇게 그 여자는 아내의 적이 되고, 악역이 되어 상상의 나래 속에서 못되고 앙큼한 존재로 되자리매김 했겠지.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실은 나도, 영,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택했다. 승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여보, 나는 그 여자가 아니라 우리 승호를 믿어.





  아내의 팔을 끌어당겨 그 자그만 몸통을 끌어안았다. 아내의 몸이 불편하게 내게 안겨들었다. 평소보다 묵직한 느낌에 편안함이 느껴져 그 뒷머리를 손으로 감싸 안았다. 아내의 축축한 체향이 콧속을 파고들었다.





  우리 승호가 선택한 거잖아. 우리 승호가 선택한 사람이니까, 그 여자 말고, 우리 승호를 믿어주자, 우리.





  아내의 울음소리가 일순 커졌다가 흐느낌으로 잦아든다. 아내는 안긴 채 주먹으로 내 갈비뼈를 때렸다. 매일 밤 아내가 제 가슴을 치던 것에 비하니 전혀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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