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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지현 Dec 06. 2023

도마뱀, 22

스무 겹

  아이 둘을 모두 출가시킨 후 맞이한 첫 명절인 설, 아내는 몹시 분주히 움직였지만 그 표정만은 시간이 멈춘 공간과도 같이 변화가 없었다. 이미 삼일 전부터 나는 아내의 뒤꽁무니를 따라 시장이며 마트를 돌며 명절을 맞아 본가를 찾을 아이들을 먹일 채비를 도왔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 것은 이미 그보다 일주일 전이었다. 아내는 이미 열흘 전부터 감정이 없는 사람마냥 얼굴을 판판히 굳히고 있었다.





  그리도 반대하던 승호의 결혼식이 이루어지던 날, 아내는 고운 혼주한복을 차려입은 채 당장이라도 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직계가족과 가까운 친지 몇만을 부른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이라기에는, 언약식에 가까운 어떤 모양새였기에 아내는 바로 하루 전날까지도 뜬금없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예비 며늘아이를 불러다 돈봉투를 건넸다. 신혼여행비에 보태라 말하며. 방바닥에 드라마에서나 보던 가부장적인 시어머니마냥 자세를 잡고 앉아 탐탁지 않은 눈빛을 숨길 생각도 없이 불퉁한 얼굴로 젊은 여인을 내려다보면서도, 아내는 밥을 먹고 가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승호에게 엄마를 기다려달라 부탁했다. 승호는 대답 없이 한숨 쉬듯 웃었다.

  막상 정말 그날이 되니 아내는 크게 심란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슬쩍슬쩍 뒤돌아 가슴을 쳤다. 그런 아내를 내 어머니는 조용히 부르셨다. 두어 마디인가를 나누더니 아내가 굵은 눈물방울을 주룩주룩 쏟았다. 그리고 아내는 붉게 부어오른 눈으로나마 웃으며 손님을 맞았다.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도 진심으로 감사한 사람처럼 보였다. 사돈댁과는 눈도 잘 맞추지 않고 있는 것이 걱정스러웠지만, 그 모든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날, 승호와 승호의 운명의 여인은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결합을 선언했다. 그날 그 자리에는 며늘아이에게 있다던 열두 살 아이가 없었다. 그 자리의 누구도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도, 아내도, 승호의 짝도, 그녀의 부모도.





  그리고 첫 명절 한 달 전, 나는 승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 설날에요, 갈 때, 연승이...... 아들 데려가려고요.





  좀체 먼저 전화하는 법이 없는 녀석이 웬일로 전화를 걸었나 했더니, 제 엄마에게 하기 어려운 이야기라 내게 하려 한 것이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하루나 이틀 전에 찾아와 제 부모 심장에 폭탄을 던지는 짓을 그만두고, 한 달이나 전에 예고장을 날리는 방법을 드디어 배웠다니, 내 아들은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학습을 하는 놈이었다. 참으로 기특한 일이다. 나는 알았노라 대답했다. 아들은 엄마에게 잘 말해 달라는 말을 생략했고, 나는 아비가 돕겠다는 말을 생략했다. 우리는 생략해도 되는-그래도 되는 사이였다.





  다음 달 설에 말이야, 승호가 있잖아, 그......,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하네. 그, 아이 말이야.





  한껏 꾸며 말해도 모자랄 판에 내 모자란 주둥이는 썩 훌륭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아내의 뒤통수에 대고 백치마냥 우물거렸다. 말 끝에 후회가 따르는 것은 괴롭지만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후회를 수습하기 위해 무언가를 덕지덕지 덧붙이는 것은 좋지 않다. 경험상으로 그러하다. 때문에 나는 입을 막는 대신 뒷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굴렸다. 눈알이 데룩데룩 구르는 것을 막을 방도 없이 서있었다. 두부를 썰고 있던 아내는 대답 없이 파를 집어다 어슷 썰었다. 아내에게 반 걸음 다가갔다. 발끝으로, 소리 없이.


  뒷모습은 종종 많은 말을 하고는 하지만, 오늘은 영 감이 오지 않아 슬그머니 고개를 기울였다. 아내의 옆광대가 그리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아 나는 자라가 목을 집어넣듯 어깨 위로 머리를 다시 안착시켰다. 목이 근질근질한 것이 큼큼 목구멍을 긁기라도 하면 시원하련만 눈치가 영 그러기가 어렵다. 눈치를 보고 있자니 억울하다. 내가 잘못한 일은 없는데 왜 내가 눈치를 이리 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울컥하려다 생각해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잘못한 놈이 내 아들이니, 아비인 내가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 옳다. 혼자서 상승기류를 탔다 추락했다를 반복하고 있으니 아내가 도마 한 구석에 파를 칼로 슥 밀어두었다. 칼날이 도마를 문지르는 소리가 꼭 칼을 가는 소리처럼 들려 가슴이 찔끔한다.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어?





  아내의 목소리가 의외로 덤덤해 나는 못 들을 이야기를 들은 양 어, 어? 하고 되물어버렸다. 방금은 아까보다 더 멍청이 같았다.





  당신은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가 않어?





  아내의 목소리에 숨이 섞인 것처럼 들린다. 투명한 듯, 공허한 듯.





  부모라면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야? 내 새끼 맞을 풍파 있으면 그것도 내가 대신 맞고, 내 새끼 맞을 비 있으면 그것도 내가 대신 맞고 싶은 게, 그게 부모 아니야?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애를 지켜보자고 할 수가 있어?...... 여보, 나 미칠 것 같애. 승호 걱정돼서 죽을 것 같애, 여보. 행복만 하기를 바랐는데, 상처 입을 일 없기를 그렇게 그렇게 바라고 바랐는데 내 새끼가 굳이 그 길을 걷겠다고 하는 게 마음이 쓰려서 숨이 막혀. 당신은 어떻게 그래? 당신은 왜 내 새끼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아?





  아내의 목소리가 점점 격양되어 급기야는 아내의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거친 숨소리가 아내의 감정을 지나치리만큼 내게 설명한다.


  아내의 감정은 넘쳐흐르는 해일일까, 타오르는 불일까. 나는 아내가 넘쳐흐르는 차가운 물이라면 끓는 불이 되어 데워주고 싶고, 주변을 태우는 불이라면 타지 않는 돌이 되고 싶다. 그것으로 아내와 함께 있어주고 싶다. 아내의 손에서 식칼을 내려두고 그 손을 잡았다. 아내의 손바닥은 차가웠고, 그 손끝은 뜨거웠다.





  아니야, 여보. 아니야. 나는 우리 승호가, 슬아가...... 우리 아이들이 행복만 하기를 바라지 않아.





  그 손등을 살살 쓸었다. 아내의 손은 아직도 곱다. 삼십 년의 직장 생활을 하고 어여쁜 두 아이를 낳아 길러낸 그 손은 약간 건조하고 밍밍하니 거죽이 얇아졌지만, 아직도 부드럽고 곱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단 맛만 아니라 신 맛, 쓴 맛도 알았으면 좋겠어. 아픔을 마주하지 않길 바라지 않아....... 아픔을 극복하기를 바라. 슬픔을 모를 수는 없어. 당신도 알잖아. 나는 우리 딸이, 우리 아들이 슬퍼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기를 바라. 딛고 일어설 힘이 있기를 바라. 여보, 세상의 풍파를 맞아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보, 들어봐, 그럴 수는 없어. 지금 당장은, 그리고 잠깐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평생, 항상 그럴 수는 없어. 그러니까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은 풍파를 막아주는 게 아니라 풍파가 닥쳐올 때 담대해지는 법을, 맞이했을 때 대처하는 법을, 지나간 후에 마음을 다시 세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어야 해.





  아내의 떨림이 멈추었다. 슬그머니 손을 당겨 마주한 아내의 얼굴은 눈물로 엉망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내는 피곤한 듯 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피로함은 나도 지독하도록 잘 아는 것이었기에 진심으로 아내를 위로할 마음이 들어 아내의 젖은 앞치마를 풀어 내 몸에 걸쳤다.





-





  명절 당일 아침 일찍 찾아온 승호의 손에 한 아이가 등이 밀려 들어왔다. 안녕하세요오. 그다지 크지도 모양이 어여쁘지도 않은 그 눈으로 나와 아내를 번갈아 훑으며 고개를 숙였다 세우는 폼이 영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늘어지는 말꼬리는 꼭 기가 팍 죽은 아이 같다. 뒤따라 들어온 승호의 아내가 아이에게 "인사 똑바로 안 해?" 하며 눈을 흘기는 것을 나는 못 본 체했다.

  내가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다. 아들이 오면 먹이겠다며 새벽부터 종종거리던 아내가 슬그머니 다가와 아이의 손을 잡았다. 나와 아내의 아이가 아니라 조그마한 그 아이의 손이었다.





  밖에 추운데 얼른 들어오지 않구 뭘 하고 서 있어? 애 감기 걸린다. 문 닫어.





  아이는 조그만 눈을 내리깔고 아내의 손에 이끌려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섰다. 아들과 며느리는 현관에 우두커니 선 채였다.

  아내는 그런 자식은 보이지도 않는 듯 등지고 서서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갈비는 좋아하니? 할머니가 너 뭐 좋아하는지 몰라서 갈비랑 잡채 했는데 딴 거 먹고 싶으면 말해. 이따가라도 해 줄게. 조근조근 묻는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승호를 돌아보았다. 무슨 영문인지 묻고 싶었으나 승호의 얼굴이 마치 거울을 보는 듯 내 얼굴과 같아 그저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동안 아내는 아이를 거실 소파에 데려다 앉혔다. 미리 데워둔 조그마한 온열방석이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리모컨을 쥐어주며 무어라무어라 속삭인다. 며칠 전 아내가 뜬금없이 시장에서 알록달록 유치한 전기방석을 사 왔던 것이.......





  침이라도 쏟을 듯 턱을 턱하니 내려놓고 멀건히 서 있는 두 남자를 가로질러 며느리가 아이와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내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니 아내가 빙긋이 웃는다. 아이는 애매한 얼굴로 두 여자를 힐끔거린다. 조그마한 눈이 며느리를 닮아 귀염진 것 같다. 아내와 며느리가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어찌나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려 드는지 들리지 않는다. 아들은 여전히 현관에 서 있다. 아이를 사이에 두고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가 서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기묘하게도 늘 보던 모습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야, 너 결혼 잘한 것 같다.





  승호에게 슬쩍 건넨 말에 아들 녀석이 멍한 눈으로 대답한다.





  아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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