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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지현 Dec 13. 2023

도마뱀, 23

알껍데기(1)

  그녀, 수미는 고등학교 졸업 직전 고아가 되었다. 사고였다. 어머니는 아주 일찍이 딸을 낳다 세상을 떠났다고 했고,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다 작은 폭발에 휘말려서 그렇게 되었다.


  아주 운이 나빴다. 아버지는 현장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건축 장비를 빌려주는 일을 하는 업자였다. 종종 어떤 필요에 의해 공사 현장에 나가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하필 그때 그 순간에 그 용접공 곁에 서있던 것은 운이 나쁘다는 말로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사고를 일으킨 용접공은 충분한 보호구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피 등에 회복 가능하지만 흉이 남는 정도의 화상만을 입었다. 수미의 아버지도 목숨을 잃을 만큼 다쳤던 것은 아니었으나 폭발에 놀란 나머지 그만 뒤로 넘어졌는데, 그곳에 하필이면 아직 시멘트를 다 덮지 않은 철근이 세워져 있었고, 하필이면, 그렇게 되었다. 아버지는 수미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숨을 쉬고 있었다. 연락을 받은 수미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달려 아버지의 손을 잡았을 때, 아버지는 허어어- 마지막 큰 숨을 내쉬고는 수미의 곁을 떠났다. 사고 현장의 사망자는 수미 아버지 한 명뿐이었다.





  수미는 아무런 보상금도 사과도 받지 못했다. 위험할 것이 당연한 현장에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고 있던 아버지의 잘못이라고 했다. 차가운 눈살에 더해 뒤돌아서며 재수가 없으려니까, 라는 나직한 말과 함께 왼쪽에 퉤 침을 뱉고 나서는 현장 책임자에게 수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수미는 고작 스무 살이었다. 스무 살, 다 큰 고아였다.






  그렇다 해서 수미가 가난하고 살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다. 수미는 외동딸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아 여자의 몸으로 지역 명문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졸업식만 치르고 나면 지역에서 가장 큰 공장의 경리가 되기로 자리를 맡아 둔 상태였다. 아버지가 남긴 적당한 재산과 자그마한 마당이 달린 18평짜리 방 두 칸짜리 집, 그리고 삼촌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 회사를 판매한 돈까지 하여 수미는 걱정 없이 외로운 고아가 되었다. 수미는 그것이 사무치게 외로웠다. 아무도 걱정해주지 않고 공감해주지 않는 외로움은 뻥 뚫린 가슴에 칼바람이 새는 듯 아렸다.






-





  그런 수미에게 다가온 것이 헌석이었다. 헌석은 수미가 취직한 공장의 직원으로, 수미보다 일곱 살이 많았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 후 바로 군복무를 마치고 이 공장에 들어온 지 사 년이 되었다는 그는 눈이 둥그렇고 어깨가 두꺼워 사람 좋고 든든한 인상을 주는 사내였다. 수미는 첫눈에 헌석이 마음에 들었다. 헌석도 때 탄 데 없이 어여쁘고 고운 수미가 좋았다. 둘은 순식간에 눈이 맞아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둘의 연애는 대체로 순탄치 못했다. 헌석의 부모는 부모 없고 형제 없는 수미가 마음에 차지 않았다. 수미의 주변인들은 노총각에 수더분하니 미남도 아닌 헌석이 얼굴도 예쁘고 돈도 많은데 세상 물정은 전혀 모르는 순진한 수미를 꼬드겨 그 재산을 취하려는 것은 아닌지 조심하라며 속살댔다. 수미에게 부모형제가 없는 것은 수미의 의지가 아니었고, 헌석이 수미의 재산에 대해 전혀 모르고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들에겐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 해서 그것이 그들의 사랑에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아니라 만남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둘은 서로에게 충실한 반쪽이고자 했다. 서로가 제게 과분하다 여겼다. 이런 사랑을 하게 된 것은 인생의 행운이라고, 그들은 서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일어날 비극의 이유가 될 줄은 몰랐다.





  수미 씨, 나 대학에 들어가려고 해.





   연애한 지 2년이 넘어가던 때 자주 가던 백반집에 마주 앉아 메추리알을 하나 까서 수미에게 건네며 헌석이 말했다. 수미는 번쩍 놀라 고개를 들었고 헌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표정은 단단하고 빛났다. 그 눈은 수미가 첫눈에 반했던 것이었다. 반짝이는 그 눈에 대고 수미는 입을 열 수 없었다. 굳어 있는 수미에게 헌석이 입꼬리를 단단히 동여매며 메추리알을 쥐어주었다. 수미는 손끝에 쥔 싸늘한 메추리알을 바라보았다. 손님 상에 내어오기 전까지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었을 메추리알은 손톱 밑을 시리게 했다.


   헌석은 수미의 부에 기대려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잘난 사내가 되어 그녀를 '호강'시켜 주고 싶었다. 그는 제 연인이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착한지, 얼마나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얼마나 큰 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곁에 서기를 갈망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 옆에 선 제가 얼마나 초라한지까지도. 그는 사람들이 저를 두고 '노총각'이라 손가락질하며 순진한 수미를 꼬여낸 '도둑놈'이라고 하는 것이 다만 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렇다 해서 수미를 놓기에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크니, 수미만큼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되어 그 주변인들로부터 인정받아 당당히 곁에 서고 싶었다. 그런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대학을 나와 성공하는 것'이었다.





  수미는 그것을 바란 적이 없었기에 그만 입을 다물었다. 수미는 헌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그녀에게는 과분한 사내였기에 그가 더 잘난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란 적이 없었다. 헌석은 그 누구보다 다정한 눈을 가졌고, 따뜻한 목소리를 가졌다. 너그러운 성품이나 섬세한 돌봄도 그녀는 가지지 못한 헌석의 대단한 장점이었다. 공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도 군소리 없이 허허 웃는 그의 너른 마음은 누구에게나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는 수미가 갖지 못한 이타적인 마음과 큰 사랑을 가진 멋진 남자였다.


  또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 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아무리 괜찮다 해도 그녀는 늘 외롭고 공허했으며, 또 그들이 괜찮지 않다 떠들던 그 순간이 수미에게는 유일하게 위로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녀가 사랑한 그 두 눈을 빛내는 남자의 눈을 보고 수미는 반대의 말을 낼 수 없었다.





  수미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헌석은 수미의 두 손을 모아 제 두 손으로 모아 감싸고 꼭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해서 그녀를 '사모님' 소리 듣게 해 주겠다며 힘찬 희망을 이어나갔다. 수미는 밭은 숨을 삼키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되고 싶은 것은 사모님이 아닌 단단한 남자 장헌석의 반쪽이었다. 헌석이 곁에 두고 싶은 것은 수미일까, 사모님일까. 얼음처럼 차갑고 뾰족한, 자그마한 어떤 것이 명치 틈새를 비집고 나오려 했지만 수미는 침을 삼켜 그것을 눌렀다.

  그래, 꿈을 꾸게 두자. 남자들이란 본디 성공에 대한 욕망을 가지기 마련이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었다. 어차피 공부에서 손을 뗀 지 근 십 년이 된 헌석이 대학에 합격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도전하게 두어 보고, 실패한 후 그를 위로해 주어도 늦지 않으리라. 육 년을 꼬박 성실히 근무한 공장에서는 아마도 후회하고 돌아온 헌석을 다시 받아줄 것이다. 혹 받아주지 않는다면 지난번 헌석을 탐내던 옆 공장으로 옮겨 취직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그가 길을 돌아오면 그때, 그때 이야기해야지. 이 뱃속에 움튼 작은 생명을.


 수미는 손의 온기에 제 심장만큼 미지근해진 메추리알을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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