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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D 미식가 Jul 13. 2023

[미술의 맛] 미술가들은 왜 소재로 사과를  애용할까?

미술사 속의 사과 이야기

인터넷 검색창에 ‘사과그림’이란 단어를 입력하면, 미술학원의 사과 그리기 열풍과 액자가게의 ‘풍수 그림’이란 단어가 연동된다. 어느새 사과그림은 가정에 복을 주고 건강을 지켜주는 ‘기복성’을 지닌 이미지가 되었다.


그림에 기복성을 부여하는 것은 유럽에서 중세 말기 흑사병의 창궐로 ‘성화’ 판매가 급증했다는 기록에서부터 조선시대 가정의 건강과 부귀를 기원하는 ‘길상화’나 ‘호랑이 그림’까지 동서양을 통틀어 그림에 인간의 기원과 욕망을 투사하는 것으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것이다.


최근의 ‘사과그림’ 열풍에는 우리나라 미술애호가들이 예쁜 장식성이 강조된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2004년부터 사과작품을 선보인 윤병락 작가의 사과작품인 ‘가을향기’ 시리즈가 동력이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윤병락 '가을향기', 자작목판 한지위에 유채, 225*225cm, 2017

강렬한 붉은빛이 뿜어내는 기운과 울퉁불퉁 솟아 나온 공간성을 강조한 사과의 이미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생기 있는 기운과 기분 좋은 ‘쾌(快)’함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런 느낌이 관람자들에게 그림에 기복성을 이입하게 한 까닭이 아닐까 싶다.


인지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욕구 이론에서 인간은 욕망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내적 성장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심미를 추구하는 단계를 최상위에 두었다. 즉, 기본적으로 우리는 ‘심미의 추구’라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기분 좋은 ‘쾌(快)’함이 윤병락의 사과에서는 ‘기복성’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지름 2미터의 대형사과 작품 앞에 선 윤병락 작가


윤병락 작가의 사과는 보통 미술애호가들에게는 예쁜 장식성이 강조된 그림으로 치부되기 쉽겠지만, 작가의 사과이미지 이면에는 미학적 여러 장치들이 내재되어 있다.


먼저 공간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양화에서 애용되던 '부감법'을 그림에 도입했다.

위에서 내려 보는 극단적인 부감법을 통해 이미지가 관람자의 시선과 동일한 선에 위치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캔버스의 틀을 벗어난 그림의 이미지는 작품이 전시된 공간 속에서 하나의 오브제로 인식되게 함으로써 전시공간이 캔버스의 역할을 하게 한다.


그리고 내적으로 감상자들은 강렬한 미적 경험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사과를 통해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감상자들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도구로서의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사과는 단지 정물의 사과가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담은 사과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작품 속 사과는 쾌락, 풍요, 욕망, 평온의 다른 이름이며, 결국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을 대변한다. 관람자의 오감을 자극하여 행복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 이것이 내가 사과를 그리는 이유이다"

- 윤병락, 작업노트 2013


사과 이미지는 인류의 문명사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아담의 사과'가 금기의 상징이라면 '뉴턴의 사과'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사과이며, 스마트폰이란 문명의 이기를 탄생시킨 '애플의 사과'는 문명의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과는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이다.


미술에서도 사과는 오래전부터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사과도 아담의 사과처럼 금기나 욕망을 상징했을까? 아니면 만유인력의 깨달음을 통하여 새로운 법칙을 연 뉴턴의 사과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켰을까? 오늘 이야기는 미술사에 나타난 사과 이야기이다.


사과 때문에 생긴 여신들의 탐욕과 전쟁 '파리스의 사과'

신드로 보티첼리, 파리스의 사과, 목재에 템페라,81*197cm,1485-88


미술사에 처음 중요하게 등장한 사과는 '파리스의 사과'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동 파리스와 관련된 그림으로 그림의 제목은 보통 <파리스의 심판>으로 표기되어 있다.


위의 그림은 <비너스의 탄생>으로 우리에게 유명한 르네상스 초기 작가인 보티첼리의 <파리스의 심판>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3명의 여자는 평범한 여성들처럼 옷을 입은 모습이 낯설기는 하지만 여신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이다. 남자는 목동인 파리스다. 신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들의 결혼식에 모든 신이 초대되었는데,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은 초청받지 못했다. 화가 난 에리스는 연회에 참석하여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는’ 황금 사과를 던졌다. 여신들은 서로 자신이 제일 아름다운 여신이라고 다투게 되었고, 제우스는 이를 중재하기 위해 트로이 왕의 아들로 당시 양치기를 하고 있던 파리스에게 심판을 하게 했다.


여신들은 다양한 선물을 약속하고 파리스를 매수하려고 했다. 헤라는 ‘아시아의 군주’ 자리를, 아테나는 ‘전투의 승리’를, 그러나 결국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주겠다’고 제의한 아프로디테가 승리를 얻었다.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비가 된 헬레네였는데, 이로 인해 파리스는 헬레네의 사랑을 얻었지만, 트로이는 그리스와 전쟁을 하게 된다. 파리스의 황금사과 때문에 트로이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보티첼리 파리스의 심판 그림  황금사과 일부 확대부분


르네상스 시기에 제작된 보티첼리의 <파리스의 심판>은 풍경을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림의 주제가 되는 황금사과가 그림의 중심부에 있기는 하지만, 인물들의 묘사가 두드러지지 않고, 주변의 풍경 속에 대등한 느낌으로 배치되어 있다. 황금사과를 확대한 이미지에서는 글씨가 보이는데, 이는 ‘가장 공정한 사람을 위해’라는 의미이다.


시대를 지나  <파리스의 심판>을 가장 즐겨 그렸던 작가는 17세기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이다. 루벤스는 '파리스의 심판'을 소재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아래의 작품은 그중에 대표작이다.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캔버스에 유채, 194*145cm, 1636


루벤스의 작품에서도 오른쪽에 황금사과를 든 목동 파리스가 보이고, 왼편 아래에는 아기 큐피드가 있다. 그리고 가운데 자주색 천을 감싼 여신은 헤라이다. 중심부에 헤라를 둠으로써 헤라의 힘을 비중 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보티첼리의 작품과는 달리 인물이 그림의 주제로 부각되어 있으며, 여신들을 서로 미모를 자랑하는 풍만한 모습을 나신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파리스의 심판>에 나오는 사과는 공정한 심판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황금사과를 차지하려는 여신들의 불화의 사과이다.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가 이들 여신들에게 황금사과를 던지는 순간 사과는 탐욕의 상징이며, 불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새로운 미술사를 연 '세잔의 사과'

두 번째로 미술사에 사과를 유명하게 한 인물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이다.

폴 세잔, 사과바구니, 캔버스에 유채,65*80,1893


19세기 후반 폴 세잔은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사과는 조잡하게 그린 사과였다. 세잔이 사과그림을 전시했을 때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기존의 정물화에서 느꼈던 아름다움은 찾을 수 없고, 대충 그린 듯한 성의 없는 그림은 기존 아카데믹 화풍이 주류를 이루는 시기의 기준에서 보면 조롱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중앙의 유리병은 구도를 벗어나서 기울어져 있고, 접시에 담은 과자는 윤기 잃은 모습이다. 바구니에 담긴 사과는 사과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이고, 흩어져 있는 사과는 균형과 조화를 상실한 채 제각각 분리되어 보인다. 조화와 균형미, 원근감을 강조하던 기준에서 보면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왜 이러한 조잡한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일까?

그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파리 화단의 주류로 인식되던 아카데믹 화풍에 대해 일부의 예술가들은 신선하고 다른 방식의 표현 방법을 찾고 있었다. 사진의 발전으로 조화와 균형미를 재현하는 회화의 역할은 그 수명을 다하고 있었다. 사진이 가지지 못한 또 다른 표현방식은 화가들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절박한 수단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세잔의 사과는 미술사의 시각을 넓히는 새로운 장을 미술에 제공했다. 그림에 묘사된 테이블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그 위에 놓인 사과와 유리병도 기울어져 있다. 이는 실제상황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사진이라면 찍을 수 없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기울어진 테이블 위의 물체들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세잔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세잔은 또한 테이블 위에 놓인 개별 대상들이 전혀 개별화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정물화를 그렸다. 정물화에는 여러 대상들을 연동하여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잔의 정물화에서 사과는 단순한 사과가 아니다. 그것은 또한 다른 모든 사과이다.

세잔의 사과와 함께한 자화상, 종이에 흑연, 신시내티 미술관


그가 주목한 것은 개별화된 개개의 사과가 아니라, 사과라는 하나의 인식된 본질의 사과다. 그러므로 그의 사과는 조잡하거나 잘 그린 것이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고, 그저 사과로서 존재하는 구조적 사과인 것이다.


초기 르네상스 이후, 예술가들은 통일된 공간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원근법의 소실점을 사용했다. 하지만 세잔은 인간의 관점은 사진이 보는 관점보다 대상을 보는 데 있어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는 다양한 관점에서 대상을 인식했고, 사과를 통하여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바로 미술사의 새 장을 여는 입체파의 기원이 된 것이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사과가 아닙니다

르네 마그리트,The Listening Room, 캔버스에 유채, 55*45cm, 1952


마지막으로 사과를 회화에 가장 많이 차용한 작가는 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작가인 르네 마그리트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봤을 중절모와 사과로 대표되는 이미지를 가진 초현실주의 작가이다.


위의 작품에서 사과는 방 전체를 채울 만큼 충분히 큰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방을 거의 채우다시피 하는 사과는 공간을 질식시킬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흰색으로 장식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사과의 왼쪽 면을 강조한다. 괴물 같은 사과의 그림자가 창문 건너편 벽에 뚜렷하게 보인다.

그림의 제목은 The Listening Room이다.


그림을 보는 감상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상황인지가 궁금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사과가 정상 크기이고 방이 미니어처일까?

 이것이 르네 마그리트가 감상자에게 그의 그림에 대해 질문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초현실주의 운동의 일부이다. 그들은 비정상적인 환경이나 맥락에서 일상적인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그리트도 그림에서와 같이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사과라는 일상적 대상을 이입시킴으로써, 대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방 밖에서 생각하도록 하는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무게감과 돌처럼 변화하지 않는 부동적인 특성을 사과에 부여하여, 일반적으로 부패하기 쉬운 사과에 대해 영속성을 부여하고 있다.


마그리트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과일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대상으로 차용된 것일 뿐이다. 이 대상(사과)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과 존재하는 현실 사이 긴장의 매개체로 사용된다.


 대표작인 ‘사람의 아들’에서는 숨겨진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하나의 연결적 존재로 사과를 차용했다. 그러므로 그에게 사과는 초현실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지 이것은 사과가 아닌 것이다.


세잔과 마그리트가 그들의 작품에 사과를 차용한 것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과가 우리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친숙한 과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사과는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과일이다.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을 생각해 보며,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사과나무가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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