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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득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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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Jul 07. 2022

아저씨, 코끼리 라면 주세요

작년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 퇴근하는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 5일 동안 쉬는데 오늘 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뭐 사갈까?”

“음, 아귀찜 어때?”

“그래. 그럼 우리 단골집에서 사갈게."

“응, 알았어. 조심히 와.”

황금연휴 5일이 시작된다는 기대감과 아귀찜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에게도 한결 너그럽게 대하며 남편을 기다렸다.


몇 분쯤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친정엄마였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장 보러 가시면서 전화하셨구나 생각했다.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엄마. 왜?”

“뭐 하니? 저녁은 먹었어? 박 서방은 왔어?”

“아직. 지금 오는 중이야.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야. 왜?”

“어, 갈 데가 있어서.”

“응? 어딜 가?”

“어, 삼촌이 수술을 해서 병원에 있어. 가 봐야 될 것 같아.”

“뭐? 삼촌이 갑자기 왜? 심각한 건 아니지?”

“장례 치르게 될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아귀찜을 사 든 남편이 집에 오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갔다. 그때 그 아귀찜은 학교 다닐 때 슬프게 읽었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김 첨지가 사 온 설렁탕 같았다.


마산에서 태어난 나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가까이 살았다. 외조부모님은 한 곳에 오래 사셔서 이모와 삼촌들도 동네 분들과 가까이 지내셨다. 2남 4녀 중 장녀였던 우리 엄마, 넷째였던 작은 삼촌. 삼촌의 첫 조카인 나.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 데다가 큰 누나와의 나이 차로 삼촌이 아직 학생일 때 태어났으니 얼마나 예뻤을까.

다섯 살 쯤인가. 이제 막 종알종알 얘기하는 모습이 귀여워 삼촌과 이모들이 장난을 쳤다. 코끼리 라면을 사 오라며 심부름을 시켰다. 있는 줄 알았다. 슈퍼에 가서 “아저씨, 코끼리 라면 주세요. 우리 삼촌이랑 이모들이 코끼리 라면 사 오래요.” 하자 없다고 하셨다. 아저씨와도 잘 알고 지냈기에 장난인 걸 눈치채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삼촌, 아저씨가 코끼리 라면 없대.” 하며 울먹거렸다고 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 번씩 얘기하곤 했다. 그때 그 귀여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언제 이리 컸냐고.


중학교 때 딱 한 번 반에서 1등 한 적이 있다. 부모님보다 기뻐하며 여기저기 전화하여 자랑하던 삼촌이었다. 대학교 수시 면접이 있던 날은 바쁜 아빠를 대신해 데려다주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누나와 매형인 걸 알기에 신용카드도 발급해 주었다. 필요할 때 쓰라며. 남자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땐 장인어른이 사위 대하듯 살갑게 맞아주었다. 어색하지 않게 술잔도 기울이면서.

결혼식 날 신부대기실에 있느라, 장부 적느라 서로 바빠 얼굴 한 번 못 보았다. 식 마치고 연회장에서 인사드릴 때 삼촌을 보는 순간 눈물이 터져 버렸다. 삼촌은 그런 존재였다.  아빠보다 가까운.

첫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땐 바쁜 와중에도 한 걸음에 달려와주었다. 아이를 낳았을 때, 두 아이의 백일, 돌도 빠짐없이 챙겨주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상의할 일이 생기면 부모님보다 삼촌을 먼저 찾았다. 힘들 때에도. 그런데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이렇게 갑자기 영영 볼 수 없는 이별이라니.

삼촌과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삼촌 일어나. 일어나.”라는 말조차 하기 힘들었다. 자꾸만 목이 메어서.


그렇게 추석 연휴 5일은 슬픔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엄마와 이모들을 대신하여 조문객들을 열심히 대접했다. 조카인 나도 이토록 허망한데 형제를 잃은 이모들은 오죽할까 싶어. 남겨진 외숙모와 사촌 동생들이 고생해서 어떡하냐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하나도 고생스럽지 않았는데. 오히려 다행이었다. 삼촌을 위해서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받은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아직도 안 믿긴다. 막상 글을 쓰려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쓰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는지 모른다. 그냥 한 번쯤은 얘기하고 자랑하고 싶었다. 대한민국에 이런 외삼촌이 또 있을까.

차고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받기만 하고 조금도 갚지 못했다. 후회된다. 많이. 외숙모에게 문자를 받았다. 눈물이 터져 나와 잘 읽을 수가 없다.


“삼촌은 너희 크는 것 보고 살피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라 했어. 많은 걸 받았다고 했거든. 그러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잘 살아.”


 삼촌. 우리 삼촌. 고마워, 고마워.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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