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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Jul 14. 2022

7년간의 사랑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    

얼마 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된 KBS 프로그램이다.

요약하자면 이별 후에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재회의 장을 마련해주는 방송이다.


보는 내내, 아니 끝난 후에도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가 쉽지 않았다.

멋쩍은 미소로 “에휴.” 하고 괜한 한숨만.    

시간을 거슬러 13년 전쯤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나 또는 ‘그’가 용기 내어 한번쯤은 사연 신청을 하지는 않았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과 함께.    


가수 규현의 노래 ‘7년간의 사랑’을 틀었다.

‘7년을 만났죠. 아무도 우리가 이렇게 쉽게 이별할 줄은 몰랐죠. 그래도 우리는 헤어져 버렸죠. 긴 시간 쌓아왔던 기억을 남긴 채.’    

제목은 물론이고 가사 처음부터 끝까지 그때의 ‘우리’와 너무나도 닮은 노래다.    


7년을 만났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만하자’라는 네 글자만이 선명한 한 통의 문자와 함께.    


‘언제 처음 만났더라? 대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만났음에도 희미해져 버렸다. 언제 처음 만난 지조차도.

이별 후에는 꽤 오랜 시간을 인생이 끝난 것처럼 아파했으면서도.     


방송국 동아리 동기의 소개로 인생 첫 ‘소개팅’을 했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대학교 1학년 때.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있던 ‘그’의 첫인상과 외모는 나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

자리를 옮겨 맥주 한 잔과 함께 진솔한 얘기를 나누면서 설레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늦은 시간에 극장에서 영화도 같이 봤으니 ‘그’도 나에게 호감이 있었으리라.    

소개팅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물론 소개팅 후 연인이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기억에서 지워진 지 오래.

잊지 말아야 할 비밀번호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것까지 마음에 간직하던 시절도 있었건만.    


학교 다닐 때는 자취와 기숙사 생활을 했기에 거의 매일 만났다.

사는 지역이 멀어 방학이 되면 자연스레 장거리 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틈틈이 해온 장거리 연애로 단단해진 마음도 소용없었다.

졸업과 동시에 찾아온 어쩔 수 없는 생이별 앞에서는.    


‘군장학생’이었던 그는 졸업과 동시에 ‘직업군인’이 되었다.    


임관 전 훈련소에 있는 4개월은 눈물로 지새운 날들이 많았다.

4개월 동안 거의 백 통에 가까운 편지와 함께.    

임관 후 강원도로 자대 배치를 받고 장거리 연애는 계속되어만 갔다.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었는데.    


막내였던 그와 첫째였던 나.

‘서른’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나이.

‘소위’라는 계급으로 군 생활을 마무리해야 하는 그.

이후에 헤쳐나가야 할 현실.    

그 모든 것이 군대라는 갇힌 공간에서 감당하기 버거웠던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었던 걸까.

천리행군을 떠나는 날 아침 그는 ‘그만하자’라는 네 글자로 이별을 고했다.    


그렇게 7년간의 사랑이 끝이 났다.

제대로 된 이별 이유도 모른 채.    


노래 가사처럼 몇 년이 흘러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심장이 터지는 듯했다.

아쉬움과 후회가 짙은 목소리였다.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도착한 한 통의 문자.

서로 가는 길은 다르지만 응원한다는, 행복하라는.

그 당시에는 문자를 받고 가슴이 미어져 펑펑 울었지만 지금은 대충 기억나는 정도다.    


7년간의 사랑을 떠올리고 싶어도 이제는 애써 생각해야 기억날 정도로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시간’이라는 건 정말 위대하다. 모든 걸 담담하게 만들어주니까.    

괜찮다. 다 괜찮다.

온 마음으로 예쁘게 사랑했고 그 시절 우리가 아름다웠으니까.

그걸로 된 거다.

젊은 날의 구구절절한 사랑 얘기 하나쯤은 누구나 다 가슴에 품고 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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