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Nov 26. 2021

제로 웨이스트 3년 차의 시작

작은 계기들이 모였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다. 수업이나 여러 매체에서 환경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관심 있게 봤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쨌든 결국 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건 내 능력 밖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은 일상생활에 변화를 일으키기엔 너무 미약했다.


환경문제에 대해 나의 암흑기는 미국에서의 생활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선 플라스틱 물병이 아닌 이상 재활용을 하지 않았고 남은 음식도 일반 쓰레기로 모두 버렸다. 마트에서는 너도 나도 강력한 세정력을 자랑하는 세제들을 판매했고 이제 막 스스로 돈을 쓰며 쇼핑하는 것을 배우던 나는 경제력이 되는 한 사고 싶다면 최대한 사는 쪽으로 생각하며 지냈다. 미국에서 잦은 이사로 물건을 버릴 때도 누군가에게 나눠 주거나 중고로 판매하는 선택지는 없었다. 귀찮았고 어차피 안 쓰는 거 그냥 버리는 게 간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환경 문제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저거 참 문제네... 걱정이다..."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유지했다.


그런 내가 서서히 환경 문제를 나의 생활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건 한국에 돌아오고 1년을 쉰 다음부터였다. 시작은 빨대였던 것 같다. 딱히 거북이 사진 하나를 가지고 마음가짐이 바뀐 건 아니었다. 처음 빨대와 비닐로 고통받는 거북이를 봤을 때도 "저거 참 문제네... 걱정이..."정도였다. 이 이상의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여러 번이 되니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마침 나는 다회용 플라스틱 빨대가 포함된 스타벅스 여름용 텀블러가 있었고 이후 항상 들고 다니면서 커피나 음료를 받았다. 생활의 작은 변화가 생기는 뭔가 재밌기도 했고 카페에서 할인을 해주는 것도 뭔가 대우를 받는 기분이라 뿌듯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 이상 뭔가를 바꾸진 않았다. 이미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충분히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나를 바꾸기 시작한 건 이 텀블러가 깨졌을 때였다.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이미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상황이었고 나는 멀리서 그 버스를 타기 위해 한 손에 텀블러를 든 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실수로 텀블러를 떨어뜨렸고 엄청난 소리를 내며 텀블러가 깨져버렸다.


텀블러가 깨졌으니 나의 당연한 사고 회로는 새로운 텀블러를 사야겠다 였다. 생각보다 오래 못 썼지만 일부러 깬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하며 새로운 텀블러들을 검색했다. 그러던 중 관련 검색에서 텀블러를 일정 기간과 횟수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오히려 환경에 해가 된다는 글을 봤다. 아차 싶었다. 환경을 위해 시작했는데 나는 지금 오히려 전보다 더 환경에 민폐인 거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텀블러를 안 사는 것도 문제였다. 그럼 나는 다시 일회용 컵을 써야 하는 건가?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생각난 게 비싸게 주고 쓰지 않고 있던 또 다른 스타벅스 스테인리스 텀블러였다. 살 때는 너무 이뻐서 샀는데 무겁기도 하고 완전 밀패가 안 되는 기분에 (기분일 뿐이었다) 들고 다닌 적이 없었다. 플라스틱 텀블러는 깨졌지만 다회용 빨대는 무사하니 스테인리스 텀블러에 이 빨대를 사용하면 딱이겠다 싶었다.


집의 한 구석에서 텀블러를 꺼내고 빨대를 꽂는 순간 다 시 아차 싶었다. 텀블러의 입구는 너무 작았고 빨대는 단단한 플라스틱이라 구겨 들어가지도 않았다. 빨대를 사용하려면 뚜껑을 완전히 열어야 했는데 그건 이쁘지도 않고 밖에서 사용하기 불편했다.


그래서 찾은 게 실리콘 빨대였다. 원래는 텀블러를 하나 사려고 했는데 그걸 실리콘 빨대로 대체하는 거니 나는 환경을 위한 소비를 한다고 생각했다. 실리콘 빨대도 종류가 많아서 즐겁게 쇼핑했고 예상대로 좁은 텀블러 입구에 구겨져서 잘 들어갔다. 음료를 마실 때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실리콘 빨대를 살 필요가 있었나 싶다. 말 그대로 텀블러의 입구가 좁아서 굳이 빨대 없이도 음료를 쉽게 마실 수 있었고 밖에서 먼지가 잘 묻는 실리콘 빨대를 꺼내서 텀블러에 끼우고 음료를 마시는 게 너무 불편했다. 빨대를 사용하는 것보다 그냥 마시는 게 훨씬 편했다. 거기에 최근에는 친환경 빨대가 많이 보급이 되어 있기도 하다. 심지어 5개를 세트로 구매해서 혼자 사용하기에 너무 많았다.


약간의 후회가 있지만 그래도 실리콘 빨대가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실리콘 빨대를 검색하면서 다양한 제로 웨이스트 제품들을 알게 되었고 조금씩 조금씩 생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암흑기를 지나 작은 계기들이 모여 벌써 제로 웨이스트 3년 차이다. 아직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도 과정 중 하나이겠거니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지금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건 김치를 만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