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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Dec 03. 2021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어디까지 가니?

천체물리를 시작한 계기

천체물리를 공부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초등학교 6학년 졸업 즈음까지 거슬러가야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나갈 때쯤 친구랑 집에서 뒹굴 거리며 놀고 있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앞으로 뭐하면서 살아야 하지? "


초등학생이 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원래 어릴 때부터 생뚱맞은 생각을 자주 하던 편이라 친구도 새삼스럽지 않다는 말투로 


"너 과학 잘하고 좋아하잖아. 과학자 해."


그 당시 내가 과학을 진짜 잘했든 좋아했든 중요하지 않다. (사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았던 것 같지만...) 그때 처음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은 느낌이었고 친구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을지 모르지만 난 그 말을 맹목적으로 믿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럼 어떤 과학자가 될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여러 박물관을 다녔고 과학시간에 그 어떤 수업보다 집중력을 발휘했으며 과학 관련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러 다녔다. 


첫 꿈은 지질학자였다. 이유는 단순히 지질 박물관이 즐거웠고 중학교 과학 과정에서 지진에 관한 파트가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3까지 지질 연구원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암석에 대해 큰 관심도 없었고 지질 박물관에 다녀온 것 외에 지질 연구원에 대해 따로 자세히 알아본 것도 아니었다. 


관심사가 바뀐 것은 중3 과학 담당 선생님을 만나고부터였다. 그 선생님은 과학을 정말 재밌게 가르치셨고 그 선생님의 수업만큼은 시간이 금방 지나가서 수업이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과학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게 됐고 선생님의 전공이 화학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나도 화학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다짐은 고2 때까지 지속됐고 선택과목은 무조건 화학으로 할 만큼 화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책을 정말 많이 읽었는데 그 당시에는 책을 가리는 취향도 딱히 없어서 손에 잡히는 데로 모두 읽었다. (지금은 아주 많이 매우 편식한다.) 그중 우연히 손에 집힌 책이 양자론에 관한 책이었는데 표지에 원자가 그려져 있어 관심이 갔다. 무심히 첫 페이지를 넘겼던 나는 길을 가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손에서 그 책을 놓지 않을 만큼 양자론에 푹 빠져버렸고 당연한 수순으로 상대성 이론에 관한 책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상대성 이론까지 책을 읽고 난 뒤 들은 생각은 이거다! 였다. 


이렇게까지 재밌고 흥미가 이는 과학 분야는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이 처음이었다. 연구원이 된다면 이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다. 당연하게도 화학은 이런 내 흥미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고 그렇다면 어떤 분야를 공부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은 게 물리학이었다. 하지만 물리학 전반적인 분야에는 딱히 관심이 가질 않았다. 고전 역학이나 전자기학은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거기다 물리학 전반에서 딱히 양자론이나 상대성이론을 다루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어느 분야를 가야 하는 걸까? 하는 물음에 찾은 답은 천문학이었다. 


하지만 천문학은 별을 관찰하는 학문이 아닌가? 그런 건 싫은데... 하는 고민을 했고 이런 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시에서 주최하는 한 행사에서 천문학자로 나온 연구원분에게 고민상담을 했다. 1시간가량 대화한 끝에 내가 얻은 것은 천제 물리라는 단어였다. 


지금은 천문이든 천체물리든 그 경계를 굳이 나누는 게 불필요하지만 그 당시에는 드디어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찾은 기분이었다. 딱히 물리 전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천문학 전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둘을 합친 어느 분야가 나와 딱 맞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천체 물리과가 있는 대학을 찾아봤지만 딱히 내가 원하는 커리큘럼을 가진 대학이 없었다. 그나마 서울대가 가장 비슷했으나 서울대 근처는 쳐다도 못 보는 나의 성적표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래서 찾은 나의 합의점은 성적에 맞는 대학의 천문학과나 물리학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원을 천체물리가 제대로 있는 해외의 대학에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일찍 해외에 나가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지만.)


시작은 친구의 지나가던 한 마디였고 방향성을 잡아준 건 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은 책 한 권이었다. 우당탕탕 생긴 계기들이고 막연한 계획을 가지고 있던 길이었지만 어느새 학사,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준비 중인 천체물리학도가 되었다. 사소한 사건들이 모여 나의 인생을 결정해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다. 지금도 처음엔 생각도 못했던 행성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시작은 분명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이었던 것 같은데.... 이런 거 보면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미래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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