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린 나의 귀와 눈이었다. 나는 세상을 채 알기 전에 엄마의 눈과 귀로 세상을 알았다. 엄마는 힘든 삶의 원흉이 돈 없고 살갑지 않는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변변찮은 부모 중 엄마는 아이를 낳고 도망쳐 버렸고 아빠라는 존재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사내 아이를 친척 집에 이리저리 굴렸다. 시쳇말로 불알 두 쪽 달랑 들고 태어난 사내는 누군가의 사랑은 사치였고 어쩜 옹아리를 욕으로 배웠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강한 사람들의 험한 대우에 안 들리는 척, 모르는 척 시늉하던 게 사내가 배워 나간 세상이었다. 버젓이 두 부모가 있고 두 오빠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던 엄마는 그런 아빠가 이해가 가지 않아 멍청이 바보라고 표현했다. 그런 아빠의 과거를 모르는 나는 어리석고 바보같은 나쁜 남자라고 엄마의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반은 남자의 책임이지만 그런 사람을 선택한 엄마 본인의 나머지 반의 책임은 언제나 쏙 뺐다.
이기적인 여자와 멍청한 남자가 사랑 비스무리한 것을 해 미운정 고운정을 쌓으며 한평생 살았다.
어쨌든 시간을 또로록 돌려 그 날 새벽이 왔다.
부모가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데 딱 사춘기 마냥 힘든 아이들 둘과 2박 3일 일본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로 하는 마지막 날의 새벽.
새벽에 일찍 일어나 부스럭 거리는 아빠를 불렸다.
"아빠 라면 먹으러 갈래?"
오래된 영화에서 여자가 남자를 꼬실 때 하던 '라면 먹고 갈래요?' 를 신새벽에 내가 멍청한 사내에게 하고 있었다. "어어어 어어?? 지금 라면 집이 하나?"
"해장 라면이라고 밤에만 문을 여는 집이 있어. 우리 갔다 오자."
몸이 먼저 답을 한다. 허둥 지둥 어둠 속에서 옷가지를 챙기며 주섬 주섬 옷을 입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엄마는 연신 나도 가고 싶은데, 가고 싶은데... 를 연발했다.
"엄마 거기 멀어. 한참 걸어야 해. 다리도 너무 아프고, 우리는 빨리 걸어야 하는데 엄만 그 만큼 못 따라오잖아. 내가 아빠랑 언능 갔다 올께. 와서 맛있는 거 사다 줄께."
어둠이 엄마의 아쉬운 표정을 가려 다행이었다. 예민한 내가 그 표정을 봤다면 덜컥 발목이 잡혔을 것이다.
"걸어야지. 운동을 좀 해야 해."
기분이 좋았는지 자동차로 7분 거리를 잘못 봐 걸음으로 20분 거리라고 말했을 때 아빠가 그랬다. 내가 다시 돌아가자고 말이 나올까 언능 선수를 친 듯한 느낌은 아마 나만 느꼈을 꺼다.
새벽의 적당한 밝음과 드문 드문 켜진 주황색 가로등, 그 아래 오밀 조밀한 작은 상점과 걷기에 딱 적당한 온도, 공기 중의 물방울 마져도..... 나는 마치 일본 애니매이션 속으로 멍청한 사내와 같이 들어간 느낌이었다.
서로의 표정을 감출 수 있게 앞만 보고 걸었던 아빠와 나는 그 덕분에 어색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다면 언제로 가고 싶어?"
쓸데 없는 소리한다는 타박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아무 말이 없다. 어색한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날이 없어. 사람들은 젊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난 10대도 싫고 20대도 30대도 싫드라고..... 굳이 따지자면 40대?"
"힘들어서 그렇지 뭐. 힘들었으니까....."
차라리 쓸데 없는 소리한다고 타박을 하지. 갑자기 훅 돌아온 대답에 순간 중심을 잃었다. 누군가의 삶들은 다 힘들었고 모든 누군가는 '힘들었구나'를 듣고 싶었던 게다. 주책없는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조금 짜증이 났다.
"아빠는 뭐 돌아가고 싶었던 시절..... 이런거 없나?"
"나는 다시 태어나야 해. 그 때는 돈이 너무 없어서 어려서 부터 일을 했으니까... 나는 인생이 힘들었어. 힘들어서 돌아가면 다시 태어나야 해. 아주 아주 처음부터.... 처~~음부터 다시 태어나야지"
"에이..... 그럼, 어려서는 그렇다 쳐도 20대는 힘도 있고 마음데로 할 수 있잖아. 그 때는 그나마 낫지 않나?"
"20살에는 광산에 있어지"
"근데 왜 거기에 갔어? 힘들지 않나?"
"그 때는 할 게 없었어."
"거기 돈을 많이 주나?"
"목숨 값이니까 많이 주지. 하는 만큼 주는 거니까."
"그럼 그 때 돈 많이 벌었겠네."
"그래서 소를 샀지"
"ㅎㅎㅎ... 현명한 선택이네. 그 때 소를 산거면 돈이 많았던 거잖아."
"그래서 소를 사서 사촌 형한테 맡기고 군대를 갔지."
"군대 갔다와서 소를 팔았으면 돈이 많았겠네."
"그래서 택시를 샀지. 근데 택시를 몰다가 사고가 엄청 크게 났사. 그거 때문에 돈이 하나도 없어졌어. 그 때 사고가 어마 어마하게 났거든."
"허.. 헉 아빠 팔자도 참 그렇다."
"어이구야..... 라면 국물이 찐하네. 아주 찐해. 맛있다. 이 시간에 이런 데가 다 있네.ㅎㅎㅎ"
"진짜 맛있지? 국물이 하나도 안짜고 고기도 냄새도 하나도 않나. 진짜 우리 잘 왔다. 그치?"
"응... 그러네.. ㅎㅎㅎㅎㅎ"
"근데 아빠~~~ 그럼 아빠는 선택을 잘못 한거야. 돈이 없으면 아이를 이렇게 많이 낳지 말아야지."
"그 때는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그래도 그렇지."
"아들이 하나 있었어. 태어났는데 그 때 무슨 코로나 처럼 염병 같은 게 돌았어. 걸리면 설사가 엄청 나. 그거 걸려서 사람들이 막 죽어나갔어. 그 애가 그게 걸린거야."
"그럼 빨리 병원엘 갔어야지. 가면 살지 않았을까?"
"그 때 돈이 너무 너무.. 없었어."
"그래도 병원을 갔었어야지. 병원비가 그렇게 비쌌나?"
"그 때는 병원비가 어마 어마하게 비쌌어. 엄마가 사촌 고모네 가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안빌려줬잖아. 그래서 아예 발을 끊었어."
"그래서 병원을 못가서 죽었어?"
"아니... 아니... 어떻게 어떻게 갔어."
"그런데..... 갔는데.... 뭐래?"
"그 돌림병에 걸렸다지. 안된댔어. 안된데서 그냥 집에 왔지. 걔 생일이 4월 초파일이야."
"그 부처님 오시는 날?"
"응... 걔가 부처 였나봐."
"에이.. 말도 안돼."
"아냐.. 아냐.... 걔가 힘줘서 우왕 울면 얼굴 이마 중간에 동그랗게 멍드는 것 처럼 그런게 생겼어. 부처처럼....... 부처, 부처였나봐."
"에이 참.. 그런게 어딨어. ㅎㅎㅎ 그럼 그렇다 치고, 솔직히 아이 5명은 너무 하잖아. 그렇게 가난했는데.. 둘만 낳지."
"나도 그럴려고 했는데, 근데 네 엄마가 그 뒤로 계속 아들 아들 했어. 난 넷째는 생긴 줄도 몰랐어. 사우디 갔다오니까 걔가 있드라고......"
"우리 세븐 일레븐 커피 한 잔 사서 들어가자."
"응 그래..."
"근데 아빠.. 아빠네 아빠는 나쁘다 바람둥이 였나봐. 이 여자 저 여자 만나서 아이 낳고. 나쁜 남자였네"
아빠는 아무 말을 안했다. 그 여자... 엄마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던 게다. 연신 내 엉뚱한 질문에 답을 해 주던 아빠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삼 궁금했다. 이 순간 아빠는 뭘 생각하고 있는걸까? 그 여자, 얼굴도 느낌도 없는 그 여자.... 엄마를 생각하는 걸까? 살짝 본 아빠의 얼굴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주책시리 괜히 말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 뜻은 그런게 아니였는데...
"아빠 탓이 아니야. 아빠 참.. 힘들었겠다."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괜히 잘못 얘기했다 싶었다.
그렇게 다시 없을 만화 같은 일이 순간 생겼다 사라졌다. 항상 나쁜 남자라고 생각했던 한 남자의 인생은 좀 많이 구차하고 기구했다. 처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만큼...
한국에 돌아와 비행기에서 내렸다. 외국에서는 항상 내 뒤만 따라 오던 아빠는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본인의 길을 갔다. 그 뒤를 나는 총총 뛰어갔다.
"아빠. 이번 여행 좋았지?"
"응 좋았어. ㅎㅎㅎ."
"나도 너무 너무 좋았어. 일본 너무 가고 싶었는데 내가 또 언제 올라나. 그치 진짜 좋긴 좋더라."
"그래 이번엔 정말 좋드라. ㅎㅎㅎㅎ."
"근데.. 아빠 오늘로 하자. 아빠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날. 만약에 다시 돌아간다면 그냥 오늘로 해. 이번 여행 좋았다면서. 오늘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 알았지?"
또 쓸데 없는 소리라고 타박할 줄 알았는데 아빠가.... 기구하고 구차한 인생을 살았던 아빠가 말했다.
"그래. 그래. 그냥 오늘이다. 오늘.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