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희 Dec 10. 2023

인생은 각자의 지옥이다

3년 전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했다.


이유를 댈 수 있는 명확한 죽음을 제외하고, 만성적인 자기죽음의 이유란 사실 모호하다. 뫼르소가 왜 총을 쐈느냐, 혹은 고도가 어디에서 오느냐와 같은 이유를 뾰족하게 댈 수 없는 절망의 다발이 머릿속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명확해서, 나는 그 당시 매일매일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몇 일 정도 전화를 하다보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도 인간이고, 자원봉사의 선의 하나로 이 일을 하고 있으며, 때로는 신을 생각해보세요, 같은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부적절한 말을 했다. 어쨌든 그건 행정적인 문제고, 나는 어떻게든 삶의 동앗줄에 아등바등하고 살았다. 한 쪽은 삶이고 한 쪽은 죽음이라 나는 그 진자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추였다.


마포대교에는 한이 서려있다. 나는 왜 마포대교에서만 사람들이 뛰어내리려고 하는지 그걸 모르겠다. 풍수지리적으로 죽음을 불러들이는 뭔가가 있나, 실제로 마포대교를 올라가면 사람들의 키보다 더 높은 철책이 걸려있다. 당장에 건너편에 보이는 원효대교는 그렇지 않다. 어째서 원효대교는 그렇지 않은데 마포대교는 삶을 뛰어내리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드는가.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은 실행에 옮겼다. 사람이 죽기 위해서 마포대교에 올라가면, 진짜로 눈 앞에 뭐가 보이기는 하는데, 눈 앞에 캄캄하다는 걸 사무치게 느낄 수 있다. 일단 신발을 벗은 다음 철책을 비집고 올라가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제희입니다. 이제껏 저 같은 친구를 두셔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뭐 그런 전화를 몇 번 돌리고 이제 죽으면 좋겠다 싶어 철책을 비집고 올라갔다. 여름인데 철책의 철조망은 강바람을 맞아 무섭도록 차가웠다. 그러다가 철책 난간에 서 있는데 마지막으로 중요한 친구에게 전화를 안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화를 거는데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상대방 친구는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뭐라고? 나 이제 죽을건데 네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 뭐? 고려대? 그 친구는 하필 그 타이밍에 정신증적 섬망을 겪고 있었다. 조현이나 조증이 오면 오는 그런 거. 우리는 각자의 지옥을 겪고 있었다. 아이고 나도 정신병자라 그게 뭔지 잘 알고 있었다. 근데 난 지금 죽으러 간단 말이다. 너가 정상이어야지 우리가 건조하든 눈물 콧물을 짜든 헤어짐의 인사를 잘 할 수 있지 않겠니. 네가 그러면 나는 죽지 못한단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문제가 생겼다. 어디선가 왱알왱알하고 경찰차고 뭐고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날 살리기 위한 공권력의 세금 낭비였다. 저기 여성분 내려오세요! 경찰분들과 소방분들이 가득 나를 들러싸고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했다. 나는 미칠 노릇이었다. 발 앞은 한강이고 발 뒤는 사람들이었으며 내 손 위에는 지금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친구가 있었다. 수 십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고 내 전화속 친구는 계속 섬망을 겪고 있었다. 아 몰라. 될 대로 돼라지 생각하면 나는 여기서 그냥 점프를 하면 모든 게 끝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쉬운 문제였다. 문제였는데,


야 친구야.

으응?

내가 너 정말 좋아하는 거 알지? 너가 기억은 못하겠지만 언젠가 밥 한 번 사라.

어어…

일단 네 가족 연락처 아무나 줘 봐.


씨발 내가 오늘 한 번만 인생에 져준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인생과 싸우고 있었다. 나는 결국 수십 번의 고민 끝에 다시 마포대교 철책에서 내려왔다. 내려오자마자 경찰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경찰관님. 제 친구가 위험해요. 아니 위험한 건 당신이잖아. 아니 내가 위험한 건 이제 끝났구요, 아니 미치겠네. 저도 미치겠으니 일단 서로 갑시다. 나는 자초지종도 말 못하고 경찰서에 경찰차를 타고 끌려왔다. 그 사이동안 아까 연락처를 받아둔 친구의 가족에게 이야기를 했다. 저는 이 친구의 절친인데요, 이 친구가 되게 위험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하셔야 할 것 같아요. 가족이 한참 내 말을 듣더니 말했다. 고맙습니다. 내 마음에 깊이 박힌 말이었다.


경찰서에 오니 경찰이 가족을 불러와야지만 집에 갈 수 있다고 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내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 묻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대신에 여러가지 자살 방지 팜플렛을 주었는데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냥 편안하게, 혹은 정상적으로 자기죽음에 성공하고 싶었는데 죽음은 절대 낭만적이지 않았다. 나는 결국 한 것이라고는 추하게 마포대교에 기어올라갔다가 붙잡혀 들어온 것이다. 결국 가족 중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막내 동생에게 부탁을 해서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뭔가가 변했다. 그 친구의 가족으로부터 신년이 되면 신년축하해요 카카오톡 메시지가 온다. 설 잘 보내세요. 추석 잘 보내세요. 그걸 보면 마음이 이상하다. 나는 잘 한 걸까. 그 때 들었던 고맙습니다가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은 그 고맙습니다의 무게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는 성장했다. 나는 친구를 구했고 그것이 결국 나를 구했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오랜만에 쓴 글입니다. 이 글에 나온 당사자 친구에게 허락을 받은 글이지만, 허락을 하려면 정말 잘 쓰라고 해서 수정도 퇴고도 많이 한 글입니다. 좋아요 구독 댓글 모두 감사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바이섹슈얼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