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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Nov 26. 2023

저는 바이섹슈얼입니다

사실은 팬섹슈얼이지만요

이제까지 쓰는 글 중에 이 글이 가장 쓰기에 용기를 내야 하는 글 같다. 왜냐하면 이 글은 내 공식 커밍아웃이 되는 글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이 내가 사랑하지만 동성애나 양성애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보였을 경우에 내가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내 죄가 아닌데도 숨겨야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조현병이 그렇고 바이섹슈얼이 그렇다. 지금 당장에만도 이 글이 공개되면 나를 등질 사람들이 떠오르는데 그 사람들은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걸 이야기해야만 하고, 조현병이나 성 정체성이나 둘 다 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글 앞에서는 어느 정도 솔직해질 수 있다. 그래서 제희가 바이섹슈얼이랍니다. 그래서 뭐? So what? 하는 반응이 내가 가장 바라는 리액션이 아닐까 싶다.


바이섹슈얼이란 남자와 여자 둘 다 사귈 수 있는 성적 정체성을 말한다. 하지만 젠더론(언젠가 레디컬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젠더론을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반박에 대한 반박도 쓸 것이다)의 관점에서 성은 남성과 여성 둘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나 기타 젠더들도 상관없이 사귈 수 있는 정체성을 팬섹슈얼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팬섹슈얼이지만, 사람들에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그냥 바이섹슈얼이라고 하고 다닌다. 솔직히 바이섹슈얼이라고 해야지 이해가 쉽지 팬섹슈얼이라고 하면 그게 뭐여? 할 사람들이 많으므로. 그래도 세상이 오픈되었다고 느끼는 게, 나는 적어도 나와 사귄 사람들은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걸 다들 알려 주었는데, 상대방들은 꽤나 그 사실을 흥미로워했지 거부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좀 무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있긴 했지만 그거야 어느 정도의 호기심이 섞였다고 생각하면 대충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고.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걸 알았던 건 중학교 때 이전인 것 같다. 성기의 모양으로 세상에는 연애 대상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결정지어진다는 걸 알고 놀랐던 것 같다. 왜 그렇지? 어째서 그래요? 사랑은 그보다 좀 더 정신적인 영역이 아닐까, 생각했던 나로서는 꽤나 놀라운 지점이었다. 나이를 먹고 나서 이성애자인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물어봤지만 그들은 역시 '그런 걸 생각하다니 네가 더 놀라워'같은 반응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쩌면 네가 옳은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쪽으로 생각이 옮겨가는 걸 지켜봐 왔다.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은 고등학교 때 했다.


이제까지 마음의 방에 썼던 내용 중 첫사랑에 대한 내용은 여성에 대한 것이었다. 02화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 (brunch.co.kr)그래서 처음에 나는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성별 자체가 그렇게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펜섹슈얼(바이섹슈얼)이 될 수 있었다. 내가 굳이 이 내용을 쓰는 이유는 나를 설명하는 데에 바이섹슈얼이라는 것이 정신장애처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험상 이건 선천적으로 태어나는 것이지 주변 사람들이 다 동성애자/이성애자라고 결정지어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당장에 나도 가족들이 이성애자이지만 나 혼자 바이슈얼이 되지 않았던가.


나는 내가 살아가면서 바이섹슈얼이라는 사실이 내 인생에 누가 될까 걱정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게 왠 걸, 이제까지는 아무런 문제 없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만일 이 글을 보고 자녀분이 바이섹슈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문제는 좀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 의외로 세상 무너지는 일은 세상에 잘 없고 경험해 본 동성애자들의 섹스가 그렇게 더럽지도 않았으며 동성애자들은 괜찮은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나는 세상의 자유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을 자유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나도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이 글은 시간을 두고 만약 악플이 심하게 달릴 경우를 대비해서 댓글 비공개가 될 수도 있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좋아요 구독 악플 아닌 댓글 모두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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