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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Feb 20. 2024

과거에 천착하는 삶

사람들은 과거를 바라보면 미래로 갈 수 없다고 한다

지옥 같은 밤이 끝났다. 곧 동이 틀 것이다.


조울증의 밤은 사람을 할퀴어 놓는다. 나는 밤 새 핸드폰으로 지나간 사람들의 연락처를 뒤적거렸다. 아 당신은 결혼했군요. 당신은 애를 낳았군요. 당신은 애도 낳고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군요. 나이가 나 정도가 되면 연락이 10여 년 동안 되지 않은 상대가 애를 낳는다고 해도 그렇게 놀라지 않게 된다. 20대 때야 처음으로 다녀온 부고 소식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지지, 이제는 제사상 화투짝 판에 들어가 무덤덤하게 고도리를 내려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게 삶이지, 싶으면서. 따닥.


나는 아주 오래된 인연까지도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마음의 방> 콘텐츠도 어떻게 보면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박체처럼 전시해 둔 것 아닌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시리즈는 지금 쓰고 있지 못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중요한 건 내가 과거에 천착한다는 것이다. 나는 과거를 아주 귀히 여겼다. 밤이 되면, 시간이 나면, 책을 펼쳐볼 때, 음악을 들을 때, 온갖 사소한 시점마다 도돌이표처럼 외는 몇몇의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친구이기도 전 애인이기도 했으며 혹은 죽은 내 지인이기도 했다. 그들에 대한 마음 자체가 허물어지지 않고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내 삶을 빙빙 돌았다. 나는 주기적으로 나에게 가까워지는 그 궤도들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왜냐하면 그 궤도는 나에게 가까워질 뿐 내 인생에 다시는 포섭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사람은 오고 가는 것이라 잊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를 비롯한 어떤 사람들은 도저히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기적이지만 인생은 딱 한 번뿐이니까, 정말로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같이 가자고 해야 한다고. 그렇지만 인간관계란 네가 손을 내민다고 해서 그 상대가 받아줄 리 없으며, 한 번 끝난 인연은 다시 이어 붙일 수 없다는 현자의 말에 나는 시무룩해진다.


그렇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용기가 없어서, 다시 이어 붙일 수 있는 좋은 관계에 대해 미리 포기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람을 기억하고 가는 법이라 도통 포기가 안 된다고.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평생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요. 나는 현자의 말은 엿 바꿔먹으라 하고 싶다. 내 인생은 딱 한 번뿐이라 관계에 대해서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더 사랑한다고, 더 알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요. 내 인생이 변화할 때부터 계속 늙어 죽을 때까지, 저는 사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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