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에서 발견한 문장과 시선 #2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2가지 비밀, Up vs Down 에 이어서)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독을 잘 표현한 미국의 국민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첫 개인전이 올해 4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립니다. 2019년 열렸던 '데이비드 호크니'전과 비슷하게 많은 관람객으로 전시장이 가득 찰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어떤 그림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지만, 어떤 작품은 도대체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요?
1. 미술관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면,
눈을 통해 이미지의 정보가 들어오면, 선과 윤곽 등을 의미하는 전기신호로 뇌에 전달되고 조직화에 관여하는 게슈탈트 규칙*과 하향 처리 중심의 사전 경험을 토대로 재구성 및 정교화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지각하는 이미지를 완성하는 거죠.
※ 게슈탈트 원리 : 뇌는 먼저 지각 대상을 세부적으로 파악한 뒤에 전체를 구성하는 게 아니라, 형상, 배경, 유사성, 연속성 등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전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경향
그래서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그림을 보면 우선 건물, 간판, 사람, 테이블, 술잔 등 익숙한 물체나 풍경을 통해 1차적으로 이미지를 인식하고 그다음에 색감이라던지, 사람들의 표정에서 그림의 분위기나 의미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2. 왜 추상화를 포함한 현대미술은 어려울까?
그런데 마크 로스코와 잭슨 폴로로 대표되는 추상화를 마주하면 어떨까요?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추상화는 세계를 보는 전통적인 지각 규칙과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을 의도적으로 깨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낯설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림을 봐도 직관적으로 해석이 안 되는 거죠. '응? 이게 뭐지?'
20세기까지 서양미술은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친숙한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3차원 관점에서 세계를 그려왔다. 그러나 추상미술은 형태, 공간, 색깔 사이를 거닐면서, 세계를 전혀 낯선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그 전통과 작별했다. 이 새로운 표현 방식은 미술을 말할 때 우리가 으레 예상하는 것들에 진지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3. 하향과 상향, 상향과 하향 그 사이 어딘가
하향 처리는 시각 요소 중 무의식적으로 무관하다고 여기는 구성 요소를 억누르며 직관적인 해석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해석이 안되면 관련 있을 법한 구성요소를 찾아내기 위해 주의 초점을 끊임없이 옮기면서 상향 방식으로 다시 에너지를 쓰는데요. 그러는 사이 결국 자신만의 경험을 토대로 그림을 해석을 시도하는데 '감상자의 몫'이라는 창의성은 새로운 정보를 사고의 틀 안에서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향 정보는 이미지를 개인의 심리라는 맥락에 놓음으로써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거죠.
따라서 추상미술가들이 주장하는 것, 그리고 추상미술 자체가 증명하는 것은 인상, 즉 망막의 감각적 자극이 그저 내가 경험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불꽃이라는 것이다. 추상화가는 회화가 만들어내는 세부적 요소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감상자가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토대로 그림을 완성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낸다. 터너가 그린 해 질 녘 풍경을 본 한 젊은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터너 씨, 나는 이런 해넘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러자 터너가 대꾸했다. "볼 수 있다고 바라기는 했나요?"
4. 마크 로스코가 구현하려던 것
저자의 해석을 빌려오면, 피터르 몬드리안은 그림을 선과 색으로 환원한 반면 빌럼 데 쿠닝은 이동성과 질감을 도입했고 잭슨 폴록은 날것 그대로의 창작 과정을 전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마크 로스코와 모리스 루이스는 그림을 오로지 색으로 환원했고요. 이로써 그들은 몬드리안처럼 감상자에게 새로운 영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 거죠.
로스코는 화폭에 놀라운 공간과 빛의 감각을 만들어 낸다. 채도와 투명도가 다양한 물감들을 얇게 겹겹이 칠해서 배경이 간헐적으로 은은하게 배어 나오도록 함으로써, 맨 위 층을 빛이 비치는 투명한 장막으로 바꿔놓는다. 관습적인 의미의 원근법은 전혀 없으며, 색깔들이 배어 나오는 얕은 공간만이 암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직사각형에서 빛이 어떻게 배어 나오는지를 말해주는 아름다운 사례를 본다.
2015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 전시회가 열렸었는데요. 런던 여행할 때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처음 본 이후로 이렇게 대규모로 로스코 그림을 본 적은 처음이라 오랜 시간 미술관에 머물며 그림을 감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미술관 내 재현된 '로스코 채플'이 인상에 크게 남아 그 이후 미국 휴스턴에 위치한 로스코 채플 방문하는 것이 마음속에 버킷 리스트로 남아 있기도 하고요. 이렇듯 어떤 그림은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쌓이면 새로운 그림을 봤을 때 나만의 해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을 많이 만나기도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