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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살을 발라주는 것

by 재홍

고향에 내려가면 내가 제일 먼저 들리는 곳이 있다. 현관을 열면 맛있는 음식 냄새 때문에 곧장 부엌으로 가게 되는 곳. 내가 온다는 소식에 냉장고 속 어딘가에서 생선과 고기를 기어코 찾아내 굽는 장소. 바로 외갓집이다. 오늘도 할머니가 차려주는 친절한 고문. 내가 장난스레 식폭행(?)이라 부르는 것이 시작됐다.


어릴 적 외할머니는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까지 밥을 드시질 않았다. 프라이팬에서 뜨거운 생선을 뼈와 살을 가르며 가시를 골라냈다.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레 훑어 가며 뼈를 추려내고, 가장 두툼하고 맛난 조각을 골라 내 밥 위에 올려주셨다. 당연한 듯이 나는 숟가락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배가 불러도 내 밥공기 속에는 생선 조각이 가득했다. 밥이 모자라면 밥을 퍼주셨고, 생선이 모자라면 생선을 더 구워주셨다. 외갓집 주방은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자꾸 뭐가 나오고 또 떨어졌다.


외갓집에 들어서자 현관에서부터 생선 냄새가 촤악 퍼진다. 주방 뒤집개를 들고 나를 맞이하는 할머니를 보고 그만 웃어버린다. 투명하게 나를 좋아하는 할머니. 할머니처럼 나도 누군가를 무작정 좋아해 버릴 수 있을까. 무작정 배고프다고 집을 찾아오는 누군가를 반겨줄 수 있을까. 가득가득 들어찬 냉장고 안에서 고기를 찾아 구워줄 수 있을까. 나는 할머니의 떠먹여 주는 일방적인 사랑 속에 자랐다.


오늘도 할머니는 식탁에서 생선살 발라주기에 빠져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옆으로 빼둔 채 뼈와 가시를 제거하고 순수한 생선살을 집어 내 숟가락 위에 얹는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김치 속에 있는 마늘 향이 눈에 닿아서 일지 모르겠다. 혹은 언제까지 할머니가 나한테 생선살을 발라줄 수 있을지, 할머니가 나에게 보여준 사랑만큼 내가 사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그런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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