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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수도 죽일수도 있는 것

by 재홍

검정치마의 앨범 <Team Baby>는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앨범입니다. 검정치마를, 조휴일을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이 앨범의 곡으로 입문하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의 감성적인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EVERYTHING', 신나는 멜로디의 '한시 오분' 등은 검정치마를 모르는 분들도 아실 것 같습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너랑 아니면'도 역시나 사랑받는 노래인데요, 제목은 그 안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실 '너랑 아니면'은 원래 앨범의 타이틀곡이 아니었다고 하죠. 다른 곡들을 고민하다, LA 한인 타운을 배경으로 누아르 스타일의 뮤직 비디오를 찍자고 친구인 뮤직 비디오 감독과 얘기해서 결국 타이틑곡으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전체적인 앨범의 분위기를 고려했을 땐 저도 'Love is all'이나 'Big love'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생각했을 때도 그렇고요.


야, 나랑 놀자 밤늦게까지 함께 손뼉 치면서

난랑 마셔 너와 나의 몸이 녹아내리면

나랑 걷자 저 멀리 까지 가다 지쳐 누우면

나랑 자자 두 눈 꼭 감고 나랑 입 맞추자


나랑 아니면 누구랑 사랑할 수 있겠니

나랑 아니면 어디에 자랑할 수 있겠니


자기가 아니면 사랑과 자랑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하는 화자. 가끔 연인에게 그런 소리를 할 때가 있죠. "나 아니면 다른 사람과 어떻게 연애할래?" 이런 말들이요. 상대방의 다른 연애가 정말 걱정되어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달라.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생각해 달라.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랑'과 '자랑'은 모음만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기꺼이 말할 수 있는 감정도 닮았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넌 내게 말했지

날 위해 죽을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알아, 나도 언제나 같은 마음이야 baby

아마도 우린 오래 아주 오래 함께할 거야


사랑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까요? 죽는 일보다 죽이는 일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은 그 용기로 누군가를 죽인다면 좀 무섭고 두렵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담력이 좋고, 대단한 사랑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한다면 찌르고 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잠시 여자친구의 지병 때문에 콩팥이 필요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이 된 상상을 했습니다. 수많은 경찰들과 총격전을 치르고, 검은 비닐봉지에 담은 콩팥을 내밀었는데, 이미 죽어버린 사랑하는 사람... 3류 드라마 각본 한편이었죠. 이 이야기를 애인에게 해줬더니 막 웃더라고요. 은행대출과 사채를 먼저 알아보라는 말에 저도 웃었습니다.


노래를 들을 때 마지막 줄이 굉장히 여운이 남습니다. 오래오래, 아주 오래 함께할 것이라는 확신에 차서 내뱉는 말들 말이에요. 사랑할 때 수많은 약속을 남깁니다. 지켜지기도, 이루어기도 힘든 넷째 손가락을 꺾는 일들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너를 위해 죽겠다고, 너를 위해서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맹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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