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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현 Jul 16. 2023

그 시절 마부 이야기

이탈리아 여행을 비틀어 기억하기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과천경마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경마장 아르바이트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귀한 아르바이트였다. 서울 남부에서 경기 서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20대에게는 최고의 주말 아르바이트 소재였는데, 업무시간이 주말 주중으로 한정되어 있고 최고 수준의 일당을 수취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리가 쉽게 나지 않아서 낙하산이 아니면 합류하기 어렵다는 루머도 돌았는데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다. 어쨌든 경마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회는 쉽지 않았다.  물론 이 경우에도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공원(최근에는 렛츠런파크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의 정직원에 해당하는 경우다. 경마장 주변에는 많은 돈이 흐르다 보니 연계되어 있는 사업체와 일자리가 이곳저곳에 있었다.

 구인공고를 어디선가 보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친구와 함께 무작정 찾아갔다. 목소리가 크고 호방한 느낌을 품기는 서른 내외의 남성은 우리를 쓱 보고는 한 명만 불렀는데 둘이나 왔냐고 한숨 쉬고는 곧바로 우리 손에 어떤 책자와 컴퓨터사인펜 여러 자루를 쥐어줬다. 그리고는 판매용 멘트를 알려주고 나는 경마공원 1번 출구, 친구는 2번 출구 계단에 서서 한 부에 천 원씩 판매하라고 했다. 어리둥절하기에는 우리 둘 다 마찬가지였지만 노래를 잘하는 내 친구는 시원시원하게 판매용 멘트를 질러줬고 판매 성과도 제법 좋았다. 그에 비해 쭈구리 기질을 버리지 못한 채 판매에 나선 내 성과는 보잘것없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그 호방한 사내에게 나는 하루 만에 쫓겨났다. 그는 나를 곧바로 지하철 개찰구로 보내지 않고 경마장 입구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꽃으로 장식한 마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고 마차 위에 앉아 카우보이모자를 쓴 중년 남성과 형님, 동생 하며 깔깔 웃고서는 나를 인계했다. 그날부터 매주 주말마다 ‘꽃마차’의 운영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에는 말이 쉬는 공간에서 변을 치우거나 모래를 정리하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것으로 시작하였으나 사장과 다투고 잠적한 마부 한 분의 몫을 채우기 위해 마차를 직접 운전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오랜 기간 조련받은 말의 역량 덕분에 금방 적응하기도 해서 태울 사람이 없는 퇴근길에는 몽골 초원 마냥 신나게 달려보기도 했다. 일당도 낮지 않았으나 마초적인 기질이 강한 꽃마차 사장님은 종종 인센티브를 더 뿌리기도 해서 수입 면에서도 한국마사회 소속 부럽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 순간이 많았는데, 마차를 끄는 말들은 은퇴한 경마 출신이다 보니 질주에 대한 본능과 노쇠에 대한 한계를 함께 느끼는 포지션에 있었다. 게다가 더운 여름에는 펄펄 끓는 아스팔트를 달리며 몸이 하나씩 망가지기도 하고 말굽은 언제나 말썽이었다. 통제하기 힘든 어린아이들과 취객, 분노에 휩싸인 경마 참여자, 엉뚱한 길에서 난폭 운전하는 차량 등은 말에게 많은 불안감을 안겨주며 마차의 탑승객의 안전에 위협을 주기도 했다. 마차를 끌던 말이 병들고 삶을 정리할 때가 되자 주변 관계자들은 말고기 파티를 준비했다. 도축할 수 있는 사람과 이동할 사람들을 조용히 섭외해서 파티의 참여자를 프라이빗 하게 모은다. 그런 말을 보며 고맙다는 마음보다는 씁쓸한 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최근 이탈리아 여행에서 방문하는 도시마다 마차를 볼 수 있었다. 아래 사진에 있는 피렌체, 로마는 물론 밀라노 같은 대도시와 볼차노 같이 작고 조용한 도시에도 중심가 주변으로 마차를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승객이 타고 이동하는 모습은 두 번 정도밖에 못 보기는 했으나, 뜨거운 태양 아래 거친 이태리 운전자들 사이로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위를 뛰어다니는 말들을 보니 오래전 은퇴한 경마들이 떠오른다. 유럽의 말이라도 아주 다른 삶을 살진 않는 걸까, 혹은 겉으로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환경이 있는 걸까.


피렌체에서 만난 마차와 마부
로마의 주요 관광지 주변에서 마차를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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