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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현 Dec 17. 2023

작고 소중한 12.12 기념일

 어김없이 12월의 1/3이 지나며 12.12사태가 회자된다. 특히 올해의 경우에는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에 성공하며 전두광 역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 괴롭히기 밈이 흥할 정도로 많은 관객이 12.12사태에 몰입하고 분노하며 새로운 세대까지 동참하는 모습을 자아낸다.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하나의 목소리로 만드는 역사의 빌런들에 대한 성토는 당분간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년도에 시작한 겨울이 아직 가시지 않은 2014년 초였다. 안양 구시가지에 있는 깔끔하게 관리된 강아지 분양샵에 방문하여 3마리의 갈색 푸들을 마주하였다. 견종, 출생일, 특징과 가격표로 이루어진 도표로 그들의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본인이 강아지 분양샵 한가운데 서서 3마리의 푸들을 바라보게 된 이유는 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고 환절기 비염을 앓고 있는 본인의 상태를 이유로 내세운 어머니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셋이 살던 시절이고 아직은 부모님의 영향력이 강하던 때이기도 했지만, 고양이 양육과 관련된 도서의 첫 장에 쓰여있는 ‘고양이를 키우면 안 되는 사람들’에 해당되는 사항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는 반대라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강아지를 키우는 게 어떻겠냐는 대안점이 나왔다. 아버지도 ‘호동이’라는 이름의 진돗개를 죽기 직전까지 키운 경험이 있고 어머니도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에 의해 여러 강아지와 함께 지낸 적이 많았기 때문에 개에 대한 호감이 높았다. 다만 두 분이 개와 살던 시절과는 생활환경이 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고 잔반을 주며 치안을 책임지던 역할에서 남성호르몬을 완연하게 내뿜는 장성한 아들 대신 귀여운 역할을 수행을 해야 한다는 변화를 고려해야 했다. 어머니는 주변 지인들에게 수소문을 해 얻은 정보를 베이스로 털이 잘 안 빠지며 지시사항을 잘 따르는 푸들이라는 견종 중 적정 수준 이상의 금액을 지불해서라도 족보가 있는 순수혈통으로 분양받아야 할 것이라는 조건을 설정했다. 그 이후 반년 간 감감무소식이던 그 아들은 반년이 지난 겨울에 한 분양샵에서 구매를 위한 최종 컴펌을 받기 위해 전화 연결을 했다.


 20만 원, 50만 원, 90만 원대의 갈색푸들이 각각 있었고 가격 순서대로 외모가 순서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철저한 시장논리로 이루어진 가격정책이 아닐까 싶었다. 셋 중 유일하게 차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소비자 입장에서 적정가격으로 느껴진 50만 원대 푸들을 선택하였고 몇몇 사은품과 함께 품에 안았다. 젊은 분양샵 사장은 직원에게 본인 아우디 차키를 건네며 집까지 바래다주는 친절함을 베풀었다. 난생처음 타보는 외제차의 승차감을 즐기며 품에 안긴 푸들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려보는 것을 보아하니 첫 만남부터 좋은 기운이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그렇게 이 푸들은 ‘두리’라는 이름이 지어지고 나와 내 가족과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견종을 보증한다는 족보 성격의 서류에는 2013년 12월 12일 생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근현대사에서 보던 12월 12일이라는 날짜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두리와 함께한 이후로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각자의 사회생활을 하던 세 식구의 구심점이 되었고 삭막했던 집 분위기는 두리 주제로 대화거리가 끊이질 않게 되었다. 귀여움에 대한 찬양이 아니더라도 산책, 배변패드, 사료, 물, 간식 등의 주제로 정보를 강제로 교환하게 되었고 관련된 에피소드를 다른 식구들에게 전파하기에 바빴다. 아들이 결혼을 하며 출가한 이후에 아버지가 주로 산책을 맡게 되며 유산소 운동량이 증가하여 자연스럽게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기견이나 강아지공장에 대해 의식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크다. 두리도 분양샵에서 데려왔지만 애견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며 유기견, 강아지공장 이슈에 대해 많은 뉴스를 접하게 되었고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기 시작했다. 아직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은 못하지만 두리와 함께 산 이후로 소액이나마 동물보호단체에 기부를 꾸준히 하고 있고 여건이 된다면 언젠간 대형 유기견, 유기묘 보호소를 차리겠다는 꿈이 생기기도 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으로 인간에 의해 고통을 받는 존재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지 고민이 이어진다.


 최근 만 10세가 된 두리는 머리가 조금 컸다며 자기주장도 강해지고 성질도 낼 줄 알지만 여전히 귀여움을 빌미로 기쁨을 준다. 강아지와 함께 지내며 느끼는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앞뒤 잴 것 없이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는 존재라는 점도 있다. 회사에서 어떤 잘못을 해서 잔뜩 깨지고 오던 고주망태가 되어 비틀거리며 들어오던 언제나 보고 싶었다며 환대와 함께 맞이해 준다. 아마도 살인자가 되어 들어와도 반겨줄지 모른다. 인간 사회의 복잡한 관계에서 벗어나 언제나 내 편이 되어 반겨주는 존재라는 것은 너무나 감사하고 기쁘기 그지없다.


 두리도 그 만의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로 식탐이 굉장히 강하다. 선천적으로 쓸개골이 좋지 않아 평생에 걸쳐 체중 관리를 해왔는데 그 영향일 수도 있다. 산책만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먹다가 버린 닭뼈(나는 여전히 공원에 닭뼈가 왜 많은지 모르겠다)나 음식물을 찾기에 바쁘다. 결국 이런 습관 때문에 먹으면 안 되는 물건을 먹어 두 번이나 병원에 입원했고 두 번 모두 개복수술 위기까지 왔으나 다행스럽게 한 번은 배변으로, 한 번은 구토로 살아남았다. 최근에는 아무거나 주워 먹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입마개를 하고 다닌다. 두 번째로 여성을 상당히 좋아한다. 이런 기질 덕분에 내 아내에 대한 호감도 상당히 높다. 최근에는 나보다 아내를 더 반기는데 돌아가는 꼬리로 헬리콥터처럼 날아갈 기세다. 여성에 대한 취향도 확고한데 어릴수록 좋아하고 낯선 여성은 더 좋아한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여성은 처음 본 10대 여성이다. 그 다음은 아마도 처음 본 20대 여성일 거다. 그래서 두리랑 산책하다 보면 강아지로 여자 꼬신다는 얘기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 싶었다. 물론 나는 어떠한 시도도 해본 적이 없다. 세 번째로 다른 강아지를 상당히 싫어한다. 원래는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다른 강아지들에게도 호의적이었는데 몇몇 말티즈나 치와와 같이 앙칼진 녀석들이 아직 어린 새끼였던 두리를 죽일 듯이 달려들었고 그들에게 반갑게 다가갔다가 나름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몇 번 반복되었다. 이러다 보니 다른 강아지가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자꾸 돌아가려고 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어머니는 여전히 내가 2014년 2월에 두리를 데려온 배경에 대해 의구심이 있다. 당시 교제하던 여자친구도 푸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것과 술에 취해서 즉흥적으로 판단했을 것으로 의심한다. 하지만 이미 반년 전에 합의한 사항에 대해 이행했을 뿐이며 거론된 사유에 대해 근거가 없다며 일축했다. 다만 두리의 존재로 당시 교제 중이던 여자친구는 아내로 발전하게 되었고, 분양일 당시 소량의 음주를 마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가족 내 합의사항을 이행한 것일 뿐이며 결과적으로 가족과 두리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발현된 상황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내 입장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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