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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현 Apr 11. 2022

뭐라도 좀 해보기

게으르기 좋은 시절에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싶다

요즘 세상은 편리함이 가득하다. 이보다 내 삶을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기술이 또 나올까 싶을 때마다 새로운 편의성이 나타나 소비욕을 들끓게 한다. 냉장고, 세탁기 등 수십 년 전에 나온 제품부터 전기차, 에어 프라이기, 스마트폰 등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제품들 모두 발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하루하루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과학의 힘 덕분에 개인의 시간을 효율적이고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좋은 환경을 매끄럽게 쓰지 못한다.


인간의 창의성은 위대하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은 높아서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잉여로움을 배출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켜고 온갖 SNS를 순회하고 뉴스를 보고 댓글을 보고 유튜브에 새로운 게 있는지 보다가 릴스나 쇼츠에 눈이 가면 한 시간은 뚝딱이다. 멍하니 시간 보내는 게 싫다며 신혼집에 TV를 두지 않은 패기가 무색하게끔 작은 아이폰 하나에 시간을 들이붓고 있다. 이런 방만한 시간 소비 행태 과정에서도 그 사실을 인식하면서 쓸데없이 '5분'단위에 집착한다. 만약 현재 시각이 41분이면 '45분까지 봐야지'라고 생각하다가 47분이 된 사실을 알았을 때 '50분까지 봐야지'하며 반복한다. 아무 의미 없는 시간제한 기준을 스스로 어겨가며 알 수 없는 누군가와 끊임없는 합의점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런 협상가가 없다.


비싼 돈을 내며 PT를 등록했을 땐 억지로라도 주 1~2회씩 운동을 나갔다. 근육들이 쑥쑥 자라고 있는지 전기충격처럼 자극만 주고 있는지 몰라도 스스로 고급 운동을 하며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럴 때면 더 부지런하게 살고 싶다며 남는 방에 파워렉이나 벤치프레스를 구비해두고 트레이너를 불러내는 부르주아의 홈짐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 잡히는 한 명의 프롤레타리아가 된다. 겨우 일주일에 두어 번 '쇠질'하러 가는 주제에 느닷없이 더 편하고 부지런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을 부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정작 지금은 전염병 탓을 하며 운동화 한번 꺼내지 않는 주제에 말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 좀 멍하니 보내면 안 되냐고도 한다. 서점의 가판대만 봐도 심플한 일러스트 표지에 뭐든 다 괜찮다는 제목의 에세이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 치열한 사회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만든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는 제자리에 머물지도 못하고 흘러내려간다. 그렇게 흘러 내려가다가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몸부림 좀 친다고 앞으로 나아갈 보장도 없다. 헤엄이라도 치면 뭐라도 되겠지 싶다가도 이보다 더 게으름을 피우기 좋을 때가 없다. 소파에 몸을 사르르 녹이며 유튜브에 들어간다.


그래서 뭐라도 좀 해보려고 한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켜기보단 우선 침대에서 벗어나는 것을 먼저 하려고 한다. 저녁 시간이 비었을 때 소주 마실 안주거리를 찾기보단 공원 한 바퀴라도 걷고 오려고 한다. 책 한 페이지라도 더 읽어보고 영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보려 한다. 텍스트가 뇌에 안 들어온다면 차라리 영화라도 한 편 보고 '본 영화' 리스트에 하나라도 추가해보려 한다. 누군가가 보기엔 그다지 영양가 있는 부지런함은 아니라고 비칠 수 있지만 뭐라도 좀 해보려고 한다. 뭐라도 좀 하다 보면 뭐라도 좀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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