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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un 19. 2023

쓱쓱 싹싹 가을이 오는 소리


"쓱쓱 싹싹"


“응? 무슨 소리지?”


밖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 거실 벽에 붙어서 언제나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시계는 아무 말 없이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다. 잰걸음으로 베란다로 나가 밖을 내다보니 노란색 모자와 조끼를 입은 어르신들이 두 명씩 짝지어 도로를 쓸고 계셨다. 소리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습성이 있어서인지 한강변에 있는 우리 집은 가끔 새벽잠 없는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대화 내용까지도 또렷하게 들려 3층에서도 잠 설칠 때가 많다. 그런고로 어르신들이 도로를 쓸어내는 빗자루, 그 가닥이 몇 개인지 대충 추측할 수 있을 정도라면 뻥이 조금 들어 갔으려나? (웃음)


나는 한참동안 어르신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앞선 한사람이 쓸어 모으면 짝꿍은 낡은 유모차에 파란색 비닐봉투를 싣고 끌고 따라가다가 쓰레기를 쓸어 담아 봉투에 조심스레 넣고 입구를 틀어 꾹 누른 다음 저만치 걸어가는 짝꿍의 동선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쓱쓱 싹싹 경쾌한 빗자루 소리를 들으니 거리도 웃고 내 마음도 웃는다. 이따금 한번씩 허리를 쭉 펴고 깊은 숨을 ‘후’ 쉬면서 일하시는 모습이 안쓰럽기보다는 보기에 좋다. 나뭇잎, 담배꽁초, 지푸라기들이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치기도 하고 빗자루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인간은 누구나 미래를, 아니 내일조차도 보장할 수 없는 삶을 살지만 생명이 주어진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한다. 그래서 저 어르신들도 점점 흐려지는 자신의 기억과 이별하지 않으려고 노란조끼를 입고 움직이는 거겠지. 일주일에 두 번인지 세 번인지는 몰라도, 아침에 빗자루를 들고 하루를 시작하는 어르신들. 아마도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주민센터에 모여 간단한 교육과 당부를 듣겠지, 그리고 지정된 곳으로 흩어지겠지. 

걸음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지만 맡은 곳을 깨끗이 쓸어내는 모습이 감사하다. 덕분에 도로도 깨끗해지고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도 발걸음도 밝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정부에서 노인들에게 돈을 막 퍼준다고 못마땅해 한다. 간혹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시간 때우는 노인들도 있지만, 지금 저 밖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분들은 열심히 일하고 임금을 받는 것 같아 보기가 좋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다. 노인들이 무슨 일을 얼마나 하겠느냐고, 부정적인 생각은 말자. 팔십 평생 살아오신 삶의 지혜를 젊은 사람들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지만, 정부는 노인들에게 적은 금액이라도 그냥 드리기로 결정했나보다. 기초생활수급자와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일 거다. 단순 노동이라도 함으로 인해 긍지를 느끼게 하려는 것 아닐까? 그러니 그냥 드리는 거지. 간단한 약도 사고, 먹고 싶은 것도 사 드시라고, 작은 것에까지 자식들 눈치 보지 말라고 드리기로 한 거지. 명목으로는 노인 일자리지만 빗자루 들고 운동 삼아 청소라도, 라는 이유를 만든 거지. 그래, 그런 거야. 


내일 지구에 종말이 와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유명한 희망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오늘 화분에 예쁜 꽃을 심으며 내일을 기대하는 손놀림에 작은 꿈을 더해본다면 감사하는 오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가을, 고운 옷으로 몸치장하기 바쁜 나뭇잎들을 바라보면서 글 쓰는 사람들은 누구이든지 막힘없이 글이 잘 써지기를 원한다. 그러기에 글쓰기에 재주 없는 사람들보다 조금 나은 감성이 주어졌다면 숙성된 글을 이끌어 낼 수 있을 텐데 꽉 막혀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소재가 많지 않다. 소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매일 나가는 이유를 만들어야겠다. 먼저 눈에 보여야 마음에 담을 수 있을 테니까. 글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집안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왜 이리도 일의 노예가 되었는지.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무력함이나 회의가 찾아오는 것 같아서 일부러 일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된 탓일까? 얼마 전부터 실외 마스크 의무가 풀려 다행히 여기저기 작은 활동과 축제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파란 하늘까지 맑고 하얀 구름을 마구 마구 만들어주며 덩달아 좋아한다. ‘마스크 벗고 가을을 마음껏 즐겨’, 라면서. 


가끔 아침저녁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세상 살맛나게 좋은데, 한낮에는 유난히 심했던 여름 장마로 힘들었을 들녘에 보상이라도 하듯 따가운 햇살을 마구 퍼붓고 또 젊은이들의 종아리는 덩달아 건강하게 뛰어 다닌다. 다행히 노란 조끼 입은 어르신들은 오전에 잠깐 일하시니 따가운 햇살에 노출되지 않아서  고생은 덜 되시겠네.

에휴 근데, 기후위기여서인가? 무슨 이유인지, 요 며칠은 10월인데도 밤에 무덥기까지 한걸 보면 가을이 오다가 안개에 갇혀 열 받았나? 아니면 여름을 만나 수다를 떠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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