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수 Nov 16. 2024

산책길에 만난
참빗살나무의 존재감에 대해서

공원에서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한 나무에게 눈길이 간다. 3m 정도 높이 달린 잎사귀들이 햇살에 반짝인다. 자세히 살펴본다. 햇살에 반짝이는 것은 잎이 아니라 자잘한 연한 녹색 꽃이다.  참빗살나무다. 걸어가면서 보니까 참빗살나무가 몇 그루 더 있다. 하나 둘 세어본다. 열 그루가 넘는다. 하나같이 모두 녹색 잎들이 햇빛에 반짝이고, 자잘한 연한 녹색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몇 년 동안 이 산책로를 걸어 다녔건만, 눈에 띄지 않았더니!  오늘에야 줄지어 서 있는 이나무가 눈에 들어온 것은 드러나지 않은 존재감 때문이리라.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이 달려 있는 이 연녹색의 꽃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꽃이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녹색 잎이 햇빛에 반사되어 연하게 보인다고 여길 것이다. 참빗살나무는 느티나무나 튤립나무에 비해서는 작고 해당화나 장미에 비해서는 크다. 지금 이 나무는 키가 어중간한, 중간은 하는 나무인 것이다. 꽃 색이  잎 색과  구분이 잘 안 되는 연한 녹색이라  자신의 잎사귀 녹색에 꽃이 묻혀버려 존재감이 없었던 것이다. 장미 같은 다른 화려한 꽃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원을 나서는데, 참빗살나무가 발바닥에 붙은 그림자처럼  바짝 따라온다.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서 녹색 불빛이 깜박인다. 재빨리 횡단보도를 건넌다. 헥헥 숨을 몰아쉬면서 걸어간다. 참빗살나무가 계속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 나무가  왜 쫓아오는 걸까?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면 참빗살나무도 오른발을 앞으로 내만다. 팔을 흔들면 참빗살나무는 가지를 흔든다. 이 나무는 결코 앞서 가지 않는다.


생각해 본다. 어중간하다는 것은 이편도 저편도 아니라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개성이 없다는 말인 것을. 참빗살나무가 쫓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로 참빗살나무인 것이다. 일을 잘해서, 일을 너무 못해서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닌, 중간은  가는 사람,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무루 뭉실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내가 바로 참빗살나무인 것이다.


참빗살나무야 꽃을 피웠으니 곧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사람의 눈에 띄든 안 띄든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무는 그러면 된 것인데. 사람도 다른 사람 눈에 띄든 안 띄던 상관이 없겠지만. 자신 속에 자신이 매몰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다른 사람이 저 좋을 대로 하도록 자신을 버려두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나?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묻어 놓지만 말고 때로는 다른 사람 앞에 꺼내 놓아야 하지 않겠나? 존재감 있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