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덩굴
집 앞 골목길 건너편 전봇대에 인동덩굴이 붙어 산다. 이 인동덩굴은 11월인 지금도 꽃이 피고 진다. 5-6월에 꽃이 핀다고 봄꽃으로 분류되는데. 꽃봉오리도 제법 많이 달려있다. 결혼해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1월이었다. 그때도 꽃이 피어있었다. 인동은 겨울을 견딘다 해서 얻은 이름이지만, 겨울을 견디는 것은 꽃이 아니라 잎인 것이다. 근데 이 인동덩굴은 40년 넘게 한 겨울에도 꽃이 피었다.
전봇대 아래에는 동네 텃밭이 펼쳐져 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가 보인다. 조금 떨어진 곳엔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텃밭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 전봇대는 하루종일 햇빛이 내리쬔다. 식물이 살기엔 더없이 살기 좋은 곳이다.
이 인동덩굴이 전봇대 높이 타고 오르는 것도 꽃을 주렁주렁 매단 것도 본 적이 없다. 텃밭 주인이 인동덩굴 가지를 잘라버려서 고만고만 살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겨우 전봇대의 5분의 1 정도 높이지만, 지금껏 본 것 중에 꽃이 가장 많이 피었고 옆으로 뻗은 가지도 튼실해 보인다.
야생식물의 삶은 운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씨앗이 물이나 바위 혹은 지붕이나 흙이 없는 곳에 떨어져 싹을 틔울 수 없다. 싹을 틔웠다 하더라도 흙이 너머무적거나 햇빛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식물의 씨앗이 흙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내고 자라는 중에 홍수에 쓸려가기도 하고 가뭄에 타 죽기도 한다. 초식동물이나 곤충에 의해 뜯어 먹히기도 하고 사람에 의해 뽑히거나 잘려 생을 마감하기도 하는데.
이 인동덩굴은 처음엔 이곳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을 다행이라 여겼을 것이다. 햇빛이 많이 드는 데다 밭둑이라 흙도 그만하면 됐고 가뭄이면 농부가 농작물에게 물을 뿌려 줄 때, 얻어 마실 수도 있었으니까. 농부가 긴 덩굴을 싹둑 잘라냈을 때 실망하고 절망했겠지. 겨우 낙담에서 빠져나와 새롭게 덩굴 가지를 뻗어가는데 농부가 또 덩굴가지를 자른 일이 한두 번이 아니겠지. 그래도 덩굴을 내고 꽃을 피워온 이 식물. 인동덩굴은 이제야 사는 것처럼 보인다. 바람이 분다. 덩굴과 덩굴에 달린 하얀 꽃들과 노란 꽃들이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우리의 삶도 식물과 다른 바가 있겠나. 태어나 보니 이런 부모고 이런 환경인 건데. 인동덩굴이 전봇대 아래서 살아가듯 우리도 태어난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사람은 자연이 던진 돌이란 말이 실감 난다. 인동덩굴은 전봇대 아래 던져진 거고. 우리는 우리 집에 던져진 거고.
우리가 인동덩굴과 다른 점은 마음먹기만 한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이다. 먹기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날기 위해 먹은 갈매기의 꿈 리빙스턴 시걸처럼, 코끼리 동물원에서 코끼리처럼 살면서 안락하게 사는 것을 포기하고, 코뿔소로 살기 위해 야생에 나온 고든처럼. 이 얼마나 좋은가! 맘먹으면 언제든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