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톨스토이, 창비)
참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 조만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모두 쉬쉬하며 덮어두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숨기려고 한다. 의사에게 몇 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사람이 점점 상태가 악화되어 누가 봐도 얼마 못 살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곧 죽게 될 것 같아."라고 말한다고 하자. "그래 그렇게 될 것 같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그 말을 부정하고 희망적인 말을 할 것이다.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나갔다. 물도 삼키지 않으려고 도리질했는데. 어떻게 해서 몇 년을 더 살 거라 생각했을까? 침대 위의 쇠락한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버지 역시 아무 말도 안 했다. 한 번도 서로 마음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죽음 앞에서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었겠나.
아버지는 이반 일리치처럼 자신이 곧 죽으리란 걸 알았을까? 자신이 곧 죽을 것이란 걸 알아차렸을 때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 이반 일리치와 달리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 같긴 하다. 친구들을 하나씩 먼저 보낼 때마다 곧 내 차례가 오겠거니 했을,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였으니. 그래도 삶을 돌아는 보셨을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직 젊은 그는 일을 하면서 죽음을 외면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죽음과 대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과 혼자 대면하고 보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두려움에 젖는 일말 고는.
이반 일리치는 알고 있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고통이 점점 심해져 갈 뿐이고 결국엔 자신이 죽게 되리란 걸.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려고 했으며, 이반 일리치에게도 인정하지 않게 하려 했다. 다른 사람들만 아니라 이반 일리치 자신도 본심을 숨기고 거짓말을 했다. 이런 거짓말들은 그의 마지막 순간을 고통스럽게 보내게 하는 독이었다. 그의 본심은 소리 내 울고 싶었으니까. 그가 소리 내 울면 누군가가 그를 어루만져주며 함께 울어주길 바랐으니까.
죽음을 꽁꽁 숨기기보다 드러내놓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반 일리치가 삶을 돌아보고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죽음 앞에서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이반 일리치를 상상해 보자. 아니 자신을 상상해 보자. 이반 일리치가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이 죽어가는 그를 친절하게 돌봐줘서, 그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누구라도 자신에게 게라심 같은 자가 있기를 바랄 것이다.
가족이 그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이반 일리치 자신이 가족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가족들이 안쓰럽고 아프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이때 그를 괴롭히던 통증이 사라졌고 죽음의 공포도 사라졌고 빛이 있었다. 죽음 앞에서가 아니라 지금 살아오면서 한 잘못을 받아들이고 만회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하면 죽음을 앞두고가 아니라 지금 "아. 이렇게 기쁠 수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죽음은 혼자 겪기 때문에 이미 겪은 사람은 세상에 없기 때문에 죽음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려 줄 사람이 없다. 무엇이나 그것에 대해 감을 잡으면 마주 할 만한데. 죽음은 어떤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야, 덜 고통스럽겠지만. 더 살고 싶은 본능이 있으니, 얼마나 불안하고 무섭고 싫기도 하겠는가. -죽어가는 일이 외롭고 고통스럽고 두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이나 친구가 외롭게 무섭게 혼자 죽어가게 두고 임종에 가서야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실은 누구도 죽음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니, 쥭음이 무엇인지 몰라서 일 수도 있겠다.
죽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죽지 않을 거야." "넌 나을 거야." 라며 그의 죽음을 외면하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래,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은 어때? "물어보고 그가 죽음을 마주하고 죽음을 슬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마음도 이반 일리치의 본심 같지 않을까.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 울도록 해주고 그가 소리 내 울 때 어린아이처럼 어루만져주며 함께 울어야 하지 않을까? 죽음을 함께 겪을 수는 없지만, 그가 죽어가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