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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Dec 10. 2024

울컥하게 만든 콩자반

한글교실에서

  복지관 구석에 놓인 테이블 위에 조그만 쇼핑백이 놓여있었다. 누가 잊고 가져가지 않은 것 같았다.  한글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살 때 교육생 중 한 분이 말했다.


  "선생님, 저거 가져가세요."

  "네?"

  "선생님, 제가 만든 거예요."


  이번엔 아흔한 살, 가장 나이가 많은 교육생이 말했다.

  

"어머, 이런 걸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선물은 기쁜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사양의 말은 하지 않는다. 집에 와서 보니,  땅콩, 검은콩, 흰콩을 볶아 만든 콩자반이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콩자반은 내 입에도 남편 입에도 딱 맞았다. 콩자반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남편이 콩자반을 맛보며 한 말이다.


  "참 맛있네. 간도 달기도 알맞고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아 먹기 참 좋아. 정성이 느껴지네. 당신 진심이 통한 것 같아"


 이분은 긍정적이고 웃음이 많다. 내가 처음 한글교실 강의를 시작했을 때였다. 수업이 끝난 뒤 가방을 들고나가면서 두 팔로 하트를 만들며 말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이 말에 모두 소리 내 웃었다.  이 분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나이가 많아서 혹은 머리가 나빠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도 웃으며 열심히 참여하고 숙제도 꼬박꼬박 해온다. 교육생들이 함께 점심을 하자고 할 때가 있었다. 번번이 거절했다.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복지관 주변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없다. 걷는 것이 힘든 분이 많은데 내가 갈만한 식당을 찾아 멀리 가는 것은 무리니까. 이유도 모른 채 거절당하면 서운한 생각이 들 것이다. 수업 중에 왜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없는지를 말했다.


  "저는 고기와 해산물 모두 안 먹습니다. 그리고 맵고 짜고 시고 단 것도 안 먹어요. "

  "선생님, 그러면 뭐 먹고살아요? 고기도 안 먹고."

  "나또를 매일 먹습니다. 두부도 먹고요. 흰콩, 검은콩, 강낭콩, 병아리콩, 렌즈콩 등등요."

  "아이고, 그래도 고기 좀 드세요."

  

이런 대화가 몇 번 오갔다. 그때마다 결석하신 분이 있다 보니, 비슷한 대화가 오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 집  음식은 제사음식과 거의 비슷해요. 음식에 고춧가루 넣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오이를 무칠 때는 소금과 참기름, 상추에는 소금과 올리브유만 넣고요. 오이나 상추를 잘라서 아무것도 안 뿌리고 먹을 때도 많아요."

  "그러면 무슨 맛으로 먹어요. 음식맛은 양념맛인데."


나는 양념맛보다는 채소에서 나오는 시원한 물맛을 좋아한다. 달콤하고 상큼한 유자 소스, 마요네즈와 케첩으로 버무린 진한 소스를 뿌린 음식은 먹기도 괴롭고 먹고 난 후에도 괴롭다. 이 분은  내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떤 선물을 할까 생각하다가 수업 중에 들은 것을 바탕으로 콩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주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맞춰 선택한 것이다. 이분은 걷는 게 자유롭지 못하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몸이 흔들리고 다른 발을 내딛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분이 정성 들여 콩자반을 만들고 빈 꿀병에 담아 복지관까지 기우뚱기우뚱 들고 오는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또 울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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