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쓰다
(쇠똥구리 청년, 문인수)
문인수 시인의 시 ‘쇠똥구리 청년’의 일부분이다. 청년이 고물 트럭을 몰고 좁고 구불구불한 비포장 산길을 올라 집으로 돌아간다. 서쪽 하늘에는 해가 지고 있다. 이 장면을 시인은 청년이 해를 트럭에 매달고 집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였다. ‘내 등에도 무엇이 달려 있겠구나. 그것을 끌면서 지금에 이르렀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등을 힐끔 돌아보았다. 무엇이 달려 있긴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쇠똥구리 청년, 문인수)
시인은 해리포터가 다니던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변신술을 배우고 온 듯하다. ‘돌연 몸을 돌린 청년의 희한한 정체가’란 말 한마디에 좁은 산길에서 트럭을 주차하기 위해 후진, 또 후진하는 청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쇠똥구리가 나타나 쇠똥 경단을 굴린다
쇠똥구리는 경단을 빚을 때 사용할 재료로 소똥을 선택했다. 세상에는 경단을 만들 재료는 많고 많다. 경단을 빚을 재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 있는 반면에 경단을 빚을 재료를 선택할 자유가 없고 주어진 재료로 경단을 빚어야 이들도 있다. 경단을 빚을 재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이들은 선택한 재료를 원하는 만큼 양껏 사용할 수도 있다. 이들은 의사,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판사 혹은 잘 나가는 연예인이나 사업가 같은 사람들로 크고 화려한 경단을 만들 재료를 많이 갖고 있다. 이들은 대개 경단을 빚을 재료를 물려받은 경우가 많은 데다가 경단을 빚는 데도 방해되는 걸림돌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들이 빚은 경단은 크고 화려하고 밝게 빛까지 난다.
이와는 다르게 주어진 재료로 경단을 빚어야 하는 사람은 재료의 양도 매우 적어 원하는 양에 모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빚은 경단은 초라하고 빈약하기 그지없다. 어떤 이들은 주어진 재료를 사용하여 경단 빚기를 거부한다. 이들은 경단을 빚을 재료를 구하기 위하여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새로운 재료를 구하여 크고 화려하고 빛나는 경단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들을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한다.
소똥은 쇠똥구리의 삶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쇠똥구리에겐 소똥은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내 경단의 재료도 역시 내가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뿐이다. 있으면 좋은 것들이 없다는 말이다. 쇠똥구리의 소똥과 나의 경단 재료는 같은 격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려하고 빛난 경단을 빚은 재료가 더 높은 격에 있는 것이 아니다. 화려하고 빛난 경단을 빚은 재료에도 쇠똥구리의 소똥과 같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 경단이 화려하고 빛난 이유는 있으면 좋을 것이 섞여 있을 뿐이다.
경단의 격은 재료에 달려 있지 않다. 재료가 화려하면 화려한 경단을 빚는데,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재료에 빛나는 것이 섞여 있으면 빛나는 경단을 만들기 쉽다. 빛나는 재료가 많다고 해서 꼭 빛나는 경단을 빚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빛나는 재료가 없어도 빛나는 경단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낀다.
경단의 격은 경단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다. 재료가 많으면 큰 경단을 만들 수 있다. 재료가 적으면 작은 경단을 빚을 수밖에 없다. 경단의 격은 어떤 재료인지, 재료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물려받은 재료인지 스스로 구한 재료인지와는 상관이 없다.
경단의 격은 얼마나 매끄럽고 둥글게 빚었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쇠똥구리는 경단을 제대로 둥글게 잘 빚었으므로 격이 높다. 우리가 더럽다고 외면하는 소똥이 소똥구리에겐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고 귀중한 보물이라, 쇠똥구리는 보물로 경단을 빚은 것이다. 다른 사람에겐 하찮은 것일 수 있어도, 자신에겐 없어서 안 될 그 무엇이고 귀중한 보석 같은 그것이 경단을 만드는 최고의 재료인 것이다.
(쇠똥구리 청년, 문인수)
시의 이 부분은 청년이 갈지자로 꼬부라진 지점에서 후진, 후진하다가 주차하는 장면이다. 시인은 청년이 부르릉! 쿵. 트럭을 멈춰 세우고 부려놓은 것이 하늘을 온통 붉게 만든 아름다운 노을이라는 것이다. 청년은 경단을 매우 둥글고 매끄럽게 빚은 것이다. 나는 궁금해졌다.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나는 경단을 얼마나 둥글게 잘 빚을 수 있을지가.
청년은 하루 일을 끝내고 자신이 부려놓은 것이 ‘낙조’라는 걸 알까? 청년은 자신이 부려놓은 것이 낙조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자신이 해를 트럭에 매달고 가는 것을 까맣게 모를 것이니까. 낙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모를 것이다. 마지막 숨을 부르릉 내쉬면서, 나도 내가 세상에 부려놓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나는 가볍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등에 달린 그것을 내려놓기 위해 몸부림쳐왔다. 등에 달린 무엇을 내려놓으면 또 다른 무엇이 달라붙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경단은 찹쌀 경단을 처음 만드는 아이가 만든 것처럼 척 봐도 서툰 티가 난다. 등에 매달린 것을 내려놓기 위해 애쓰기보다 경단을 매끄럽고 둥글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은 삶인 것 같다. 조금이라도 더 둥글고 매끈하게 경단을 빚을 수 있으니까, 그만큼 경단의 격이 올라가니까. 너무 잘하려다가 되려 망치는 경우가 있으니까. 경단을 매만질 만큼 매만져 본 후라면, 제대로 뭉쳐지지 않아도 부서져 내려도 괜찮고 울퉁불퉁해도 괜찮다. 다만 내가 쇠똥 경단을 세상에 부려놓을 때, 부르릉, 쿵! 나의 하늘에 노을이 번졌으면 참 좋겠다.
인용: 쇠똥구리 청년/ 문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