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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림 Jul 08. 2021

프리랜서의 도시락 1

시작은 엉성하게

21.07.08 오늘의 도시락


나는 프리랜서다.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는 과정이 출근이고, 저녁 무렵 일어나 침대에 눕는 게 퇴근이다. 가족들과 같이 살고 있는 집의 내 방에서 매일 벌어지는 출퇴근과 일. 어떻게 보면 편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단, 가정과 일이 분리가 안 된다.


잡일이 많은 집안일의 특성상, 막내인 나는 제법 많이 불려 나간다. 나 또한 그런 잡일은 으레 이 내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 불려 나가면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다. 얼굴 맞대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말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수다. 얼마나 재미있나? 결국 말이 한 번 시작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되며, 내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같은 맥락으로 방 밖으로 나가면 시간을 많이 뺏기는 경우가 많다.


불려 나가는 경우가 아니라도, 밥을 먹기 위해 방을 나서면 누군가와 마주치게 된다. 그럼 또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되고, 한 시간 두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시간, 시간, 시간! 아무도 잡아 주지 않는 프리의 특성상 어떻게든 시간의 안배를 잘해야 하고, 그걸 지키기 위해 정신줄을 잡아야 하는데 워낙 말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걸 참기가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집에서도 흐름을 깨지 않고 쭉 갈 수 있을까.

일을 할 때 만이라도 안 나와도 되는 방법. 나는 고민 끝이 한 가지를 발견했다.


도시락이다.


*


나는 몇 년 전, 4년 간 자취를 한 적이 있다.


집에서 멀리 떠나 살던 그때 그 시절. 처음에는 호기롭게 나갔지만, 4년이 지나자 몸이 굉장히, 많이, 상했다. 몸무게가 7kg 이상 찌고, 몸이 이곳저곳 짓물러서 옷을 입는 것조차 힘들었다.


외식을 너무 많이 했던 탓인가?


1, 2년 차에는 스스로 밥을 많이 해 먹었지만, 1인 가구는 밥을 지어먹는 거보다 사 먹는 게 더 싸게 먹힌 다는 걸 깨달은 후 제법 많이 사 먹었다. 그랬더니 이 모양 이 꼴. 건강은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외식을 줄이자!


몸이 상하자 나는 곧바로 외식을 끊고 도시락을 쌌다. 안 먹던 야채를 갈아먹고, 운동도 꾸준히 했다. 그랬더니 몸이 외식을 할 때 보다 훨씬 좋아졌다. 아, 외식이 꼭 몸에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돈 없는 자취생이 고르는 저렴한 외식거리들은 분명 몸에 나빴으리라.


어찌 되었든, 그때 기억이 좋게 남았던 덕일까. 나는 곧바로 도시락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나가는 시간을 줄이고, 원할 때 밥을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자 '편식을 방지하며 밥을 차려먹을 수 있는 방법'. 아주 나이스했다.


생각난 김에 당장 시작하자. 나는 다짐하며, 자취 때 썼던 도시락통을 꺼냈다.


“뭐하냐.”

“도시락 싸려고.”

“별 짓을 다한다.”


해도 돼? 마음대로 해라. 주방의 주인인 엄마에게 허락을 받은 나는 도시락을 준비해본다.


*


집에 있는 음식 재료들을 살펴본다.


계란, 떡볶이, 밥, 엄마가 해준 반찬들.


첫날에 난리를 피우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일단 있는 것들로 배를 채워보기로 한다. 떡볶이에 불린 중국 당면을 넣고, 계란을 젓가락으로 쪼개 플레이팅 한다. 커다란 프라이팬에 계란도 적당히 말아서 넣은 다음, 냉장고에 있는 맛있는 반찬들도 도시락에 그득그득 넣어본다.


“오오.”


5월 초, 첫 도시락


오랜만이라 굉장히 엉성했지만, 언뜻 보기에는 제법 도시락 같다. 나는 그걸 또 보자기에 싸서 방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도시락을 까먹었다.


기분이 제법 괜찮았다.  


나는 곧바로 도시락용 물건들과 계란말이용 미니 프라이팬, 밥에다 뿌릴 후레이크, 조금씩 넣을 냉동식품들을 샀다.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먹을 거니 사 두면 다 같이 먹겠거니 하는 생각도 있었고 말이다.


-이게 2개월 전 일이다.


그 후 나는 거의 매일 도시락을 싸 먹었고, 능률도 제법 올랐다.


그중 보기에 괜찮은 물건들도 많았기 때문에 레시피 북 아닌 레시피 북을 여기에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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