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장애 말고 정신장애요.

by 제리


"전신장애 말고 정신장애요!"


A 님,


저는 양극성정동장애 - 조울증과 싸우고 있습니다.


오늘 정신장애 등록 신청을 위해 주민센터에 600페이지 정도 되는 20년간의 진료 기록지와 검사지를 갖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 말을 세 번은 한 것 같아요.




아직 심사 결과가 나오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새벽이 되고 혼자 방에 남으니 벌써 원인 모를 패배감 같은 게 밀려옵니다.


나는 병마에 진 게 아니라 새로운 삶을 위해 좀 특별한 길을 선택한 거라고, 계속 나 자신에게 되뇌며 그 원인 모를 패배감을 물리쳐보려 합니다. 다만, 오늘 아침 정신병 환자 커뮤니티에 장애 등록 조언을 구한 제 글에 달린, 그딴 걸 왜 신청하냐는 조롱 섞인 댓글처럼, 이 패배감도 그냥 저를 한없이 비웃는 듯한 밤입니다.




A 님은 제가 아픈지 잘 모르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아픈 걸 말하지 않거든요. 이 연재를 SNS에도 올릴지 생각 중인데 그곳에는 몇 안 되지만 내가 너무 아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아픈 걸 알게 된다면 놀랄까요? 무언가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게 병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흩어진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까요?




오늘 정신장애 심사를 신청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숨기고 살아야 하는지, 그렇다고 이걸 또 뭐 '임밍아웃'처럼 복지 카드 꺼내며 '정밍아웃'을 해야 할지 참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하루입니다.




오늘 장애 등록 신청하면서, 저는 A 님과 A 님의 가족을 가장 많이 떠올렸습니다. 사실 제 성격을 잘 아시겠지만, 남들의 시선은 별로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하지만 복잡하지 않고 그냥 간단하게 처지 바꿔봤을 때, 나와 내 가족은 A 님이 20년 된 정신병 환자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A 님이 누구이든 쉽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참 용감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보여준 용기처럼 내가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과 당신에게 더욱 잘하겠습니다.




이상 600페이지로 20년간의 내 상처를 증명해야 했던 하루의 끝에서 제리가.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