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림 Aug 03. 2024

유저 100명보다 카피가 빠르다

식물관리서비스 유지가 어려운 이유는 뭘까?

식물관리 서비스를 직접 만든 이유

온갖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해온 내가 개인의 자격으로 식물을 관리하기 위한 웹서비스를 만들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왜냐면 이 분야는 회사가, 특히 스타트업 컬쳐 베이스라면 서비스 자체의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라운드마다 투자를 받고, 그 투자금을 이익으로 투자자에게 환원해줘야 하기 때문에 비즈니스상 순이익률이 높아야 한다. 아니면 다음 단계의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사용자 수나, 리텐션같은 지표라도 매번 드라마틱한 성장을 보여주거나.


문제는, 내가 해보니 취미 원예는 그런 시장이 아니다. 고부가가치 어쩌구는 식테크 트렌드로 불어온 일시적인 바람일 뿐, 원래 식물 자체는 박리다매 시장이다. 굳이 스타트업이 기술 및 빠른 의사결정으로 혁신을 할 여지가 없다. 부가적인 기술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굳이 추가로 큰 과금을 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 식물이 싸기 때문에. 솔직히 그냥 다시 하나 사서 생화처럼 냅둬도 상관이 없고 동물처럼 학대 논란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식물 관리 앱(서비스)은 누구에게 필요할까?

내 생각이지만, 식물 관리 서비스의 유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초보자이거나, 나처럼 아주 많은 식물을 기르는 사람이다. 한두개 기르는 초보자들은 식물의 존재를 까먹거나 너무 부지런히 돌봐서 죽이다가 식물 기르기를 포기한다. 식물 기르기가 이미 생활이 된 사람들은 감으로 물을 줘도 상관없다. 그러나, 나같이 관엽 100개를 기르는 미친 오타쿠는 더이상 감에 의존할 수 없다. 돌아서면 쟤한테 언제 물 줬는지 비료는 한 달 전에 줬는지 두 달 전에 줬는지 까먹는다.


식물이 어려워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타공인 크레이지 가드너의 길로 가버린 오타쿠들은 자기 돌봄 역량보다 더 많은 식물을 사버리고, 한국의 사계절은 가혹하다. 의외로 식물 취미는 지속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으로 일시적으로 모두 집에 갇혀있게 되자 잠시 식물을 돌보아도 되는 여유가 생겼을 뿐, 놀랍게도 규제가 풀리자 집은 다시 잠만 자는 곳이 되었다. 식태기가 온 덕후들이 더이상 잘라서 팔 수 없는 덩치 큰 관엽식물을 많이 정리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다행히(?) 취미 원예는 문턱이 낮고 언제나 춘삼월이 되면 뉴비를 맞이하게 되는 계절 산업이기도 하다. 커뮤니티를 다녀보면 고인물 10% 정도를 제외하면 계속 인원이 순환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물론 잉여하게 지켜본 나의 뇌피셜이니 너무 믿으면 골룸이다.)


식물 관리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현대의 서버값(나는 이걸 사이버부동산비라고 부른다)과 운영비는 정말로 만만치 않다. 특히 식물이라면 많은 이미지 등록이 필요한데 이 비용이 상당히 발생한다. 땅 파서 장사하나? 그럴 수 없죠. 하지만 회사 소속으로 두 자릿 수의 서비스를 해본 바, 유저는 정말 과몰입 산업이 아닌 무형의 뭔가에는 비용 지불에 놀라우리만큼… 인색했다. 대부분의 대형 커뮤니티가 구글 애드센스 광고비로 운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라면, 이 서비스의 팬이 되게 만들어서 여기서 파는 거라면 뭐든지 사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건 이미 유튜브 인플루언서나 네이버의 대형 식물 카페가 더 잘 할 수 있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결국, “식물 기록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업으로 큰 이익이 날 수가 없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또한 내가 경험해본 바, 장기적 사업성이 없다면 무료 서비스는 지속될 수 없다.


그런데 그 서비스가 필요한 게 나야.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건 좋지만, 기록을 오래 맡겨놓고 있다가 갑자기 가게가 접어버리면, 또는 인터페이스를 비즈니스상의 이유로 바꿔버리면 큰 문제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노션으로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범용 기록 서비스다보니 여러 식물의 관리에는 너무 불편했다.


그루우의 배신

이 서비스의 니즈와 별도로 이익이 날 수 없는 사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식물관리서비스는 종료되거나 거의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 해외에는 플랜타라는 앱 하나만 서비스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고, 한국엔 그루우란 앱이 있다. 그루우란 회사를 보니, 내가 다녔던 회사들이랑 결이 비슷했다. 유저 사용성이나 데이터의 지속보다 회사의 생존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처음에는 식물 정보/관리 서비스로 홍보해 사람을 모은 뒤 커뮤니티로 바꾼 것까지는 한국의 사업 환경상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봤다. 식물 관리 기능은 별도 탭으로 밀렸지만 여전히 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엔가, 업데이트를 해보니 식물 관리 기능은 별도 앱으로 이관했고 원래 앱은 마켓, 즉 커머스로 바꿨다고 한다. 이거 어플리케이션 단위로의 데이터 이관이 쉽지 않은데 막 지르셨네…?

뉴 그루우라는 앱을 새로 받으라고 한다.

그런데 초록별…? 초… 록별…? 사실 초록별은 식집사들끼리 쓰는 일반명사에 가깝지만 저 이모지는 내가 플랜트샤워 만들면서 붙인 건데…?

플랜트샤워의 초록별 식물 기능과
뉴 그루우의 초록별 기념관.

아… 그…. 멘트라도 좀 오리지널리티 있게 새로 쓰셨으면…. 안될까요.ㅋㅋㅋ


초록별 식물 보관함을 만든 이유

친구가 준 마오리소포라를 500일 넘게 기르다, 석송에서 넘어간 뻐꾸기잡초때문에 죽었다. 그래서 물주기 리스트에서는 없애되, 마오리소포라의 사진을 서비스에서 남겨놓고 열람하려고 작년 8월, 퍼블릭 오픈 직전에 급하게 만든 기능이다. 그래서 나만 볼 수 있는 기능이라던가 그런 거 없고 url로 접속하면 누구나 똑같이 볼 수 있다(…….)

https://plantshower.xyz/view/65/74

그저 초록별로 간 식물 목록만 남이 볼 수 없게 해놨을 뿐이다 부끄러우니까….

서비스를 초록별 보내고 싶지 않으면 유료로 가입하라구요?

새 그루우는 당연히(?) 유료다. 서버값과 인력비용이 땅파서 나오는 게 아니죠? 하지만 새 앱으로 사용자를 쫓아내면서 그동안 무료로 제공했던 걸 유료화하는 건 도의적으로 좀 너무했다. 돈을 안내면 당신의 기록도 골로 갈 수 있다고 협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구에 초록별이라는 말 붙이지 마시죠 기분나쁘니까. 하는 비뚤어진 심정이 되어버렸다.


뭔지도 모르고 베낀 기능이라니

더욱더 황당한 건 초록별 기념관으로 넘어가면 이전 기록은 이어서 쓸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와… 그냥 이름만 막베꼈네…….


UX/UI에는 저작권이 없다지만

왼쪽이 뉴 그루우고 오른쪽이 플랜트샤워다. 도대체 왜 이런건 똑같이 하는건지 이해를 할 수 없음이고…

어플리케이션의 UI 디자인에는 저작권이 사실상 인정되지 않는다. 이 디자인만 15년을 넘게 했는데 내가 모를까? 회사에서 애써 궁리해서 만든 것들도 동종업계 여기저기 열화카피판이 많이 퍼지곤 했다. 간단한 버튼이나 문구부터 설명용 랜딩페이지를 통으로 베껴가는 회사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나서 씩씩댔지만 이제는 그래봐야 별 소용 없음을 안다. 모든 인터페이스는 비즈니스 환경에 따라 일시적이며, 심지어 내리게 하거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통으로 전체 인터페이스를 베끼는 케이스도 흔함을 안다. 보통 해외 유명 서비스나 국내 1등 서비스를 베끼는데….

어디서 많이 본… 쿨럭쿨럭

하지만 유저가 100명도 안되는, 나랑 가좍들 쓰려고 만들어 서버비나 조금씩 걷는 개인 제작 서비스를 베끼는 건… 좀 심한 것 같다. 내가 그루우에 뭘 바라는 건 아니고요, 너무 기가 막혀서 올해도 기기괴괴한 경험 추가요, 하고 기록해 본다.


* 플랜트샤워는 제가 식물 접는 날까지 천천히 운영됩니다. 아마 안 접을 것 같긴 한데….

https://plantshower.xyz/

결국, 그루우 원래 앱은 커뮤니티조차 맨 끝으로 밀려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사리 집사로 레벨업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