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객관화의 힘
오늘의 이 마음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나는 항상 스스로를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겸손함이라기보다는 정말 특출 난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취업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동기부터 뷰티에 관심이 많거나, 숫자 보는 것을 좋아해 전공과 상관없는 분야를 선택하는 동기들까지 각자의 분야를 찾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잘하는 것도 없고, 잘할 수 있는 게 뭔지도 모르던 무색무취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자존감이라는 단어와 꽤나 거리감이 있던 사람이었다. 상대의 감정에 지나치게 예민했고, 나를 향한 칭찬이 마음을 억누르는 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난 '아니요' 봇이었다.
- 와~ 이거 잘하시나 봐요
- ㅎㅎ;; 아니요
- 너 이거 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
- 아휴 아니야 내가 어떻게..
심지어는 남자친구가 나에게 예쁘다고 하는 말조차 부담스럽게 들렸다면 말 다하지 않았을까? 그냥 그렇다고 말해도 됐을 법한 질문들까지 나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부정하는 상황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나는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아~ 아니에요"를 입에 달고 있던.
그런데 오늘 거의 초면에 가까운 사람과 대화를 할 시간이 있었는데, 집에 와 돌이켜보니 꽤나 신기한 경험을 했던 거다. 대화의 주제 중에 "일 잘하시나 봐요", "그 일은 잘 맞아?" 등의 질문이 오갔는데 난 이 대답에 한 번도 아니요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 잘해요 못하진 않는데?]라고 대답했고, [잘 맞다기보다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스스로 칭찬을 잘해준다는 말을 들었는데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라, 정말 스스로 인정을 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두 번째 놀라웠던 점은 생각보다 내 얘기를 하는데 부담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의 좋고 싫음을 명확하게 표현했음은 물론 난 이런 사람인 것 같다까지 말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 내 상황이지만 왜 그런지 잘 모르겠는 것들, 그래서 말을 꺼내기 애매했던 것들까지 이야기할 수 있었다. 듣는 상대도 아 예니님은 그때 이러저러한 마음이셔서 그러셨나 봐요라고 말했는데 난 거기서 또 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깨달음을 얻고 오는 이런 신기한 선순환의 대화랄까?
작년의 나였으면 아마도 이 모든 대화에서 아 그냥 네.. 잘 모르겠어요 이러고 얼버무려 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최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자기객관화를 하는 연습을 하고,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게 빛을 발하는 것일까? 나의 커리어에 대해서만 고민을 했지 나의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깊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음에도, 그냥 답변들에 명확함이 좀 더 생긴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 대화도 좀 더 수월하게 흘러가는 것도 느껴졌다.
문득 든 생각은 결국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내 모습이 그동안 나를 괴롭힌 게 아닐까 하는 것. 요새 혼자 다짐처럼 계속 되뇌고 있는 말이 겸손은 하되, 가치까지 절하하지 말자 인데 하루에 백번씩 새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스스로 안다는 것, 정말 이게 너무 큰 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