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2.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법
또 쥐가 났다. 수영 중에 쥐가 나면 그가 떠오른다. 장애인에게 폭력적인 언사를 해서 수영장에서 짤린 예전 수영 강사다. 그는 강습생들이 다리에 쥐가 났다고 하면 이렇게 말했었다. "수영은! 고통이다! 가!"
야이 미친놈아. 내가 국가대표냐.
그러나 이것은 그저 나의 마음의 소리. 주로 4050이 모인 고인 물, 연수반 중년들은 그의 다그침을 들으면 더 열심히 헤엄치곤 했다. 이 나이에 누가 우리에게 그렇게 악을 지르며 더 하라고 한단 말인가. 수영장 밖 생존 압박감에 비하면 귀엽기까지 하다.
그래. 사는 건 고통이지. 조금이라도 더 가자.
어쨌거나 그는 짤렸고, 나는 다른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 쥐는 났지만 더 헤엄쳐보라고, 수영은 고통이라고 말하는 이도 없다. 옆 레인 아줌마들은 되려 강사에게 "살살해. 우리 잡으려고 그래?"하고 농을 친다.
종아리에서 시작된 근육 경련이 발가락까지 죄어온다. 쥐가 난 쪽 발에 손을 뻗어 엄지발가락을 잡아당겨 다리를 일자로 펴본다. 응급처치다. 이것조차 통하지 않으면 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1번 자리에서 헤엄친다고 너무 무리했나 보다. 뒤를 이어 사람들이 내 쪽으로 헤엄쳐온다. 물속에서 보는 내 모양이 흉할 것 같아서 다리를 바로 내린다.
그때다. 갑자기 내 종아리를 누군가 쓱 들어 올려 주무르는 것이 아닌가. 평영을 못한다며 3번 자리에 있던 1번 아저씨다. 너무 놀라 이렇다 할 적당한 대처를 못 찾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내보였나 보다. 2번 아가씨가 내게 말한다. "아 놀라지 마세요. 이 분이 한의사세요"
어머나. 무료진료였나요. 공짜라서 너무 행복해요.
1번의 손맛과 2번의 말맛에 제대로 카운터펀치를 맞고 잠시 휘청이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허허.. 이제 괜찮아요"하고 다리를 내렸다. 얼마나 더 무뎌져야 이런 게 아무렇지 않아질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내 불쾌하다. 지가 한의사면 한의사지. 장의사는 아니지 않은가. 내가 뻔히 살아서 의식이 있는데 왜 내 요청도 허락도 없이 내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건가.
열이 뻗어서 씩씩댔지만 어쩐지 며칠 후에 그 말을 꺼내기엔 알맞지 않은 느낌이다. 결국은 제때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한다. 이렇게 남의 잘못에 내 자책만 늘어가는 것이 삶이라니... 잘못한 놈들은 아무 의식도 없이 살아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