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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나이팅겔 Mar 24. 2023

실수는 묘하게 얽혀서 일어난다

내가 부친 택배가 나에게 배송되다니

운동 마치고 돌아오니 현관 앞에 택배가 하나 놓여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몇 걸음 떼고 봤을 때는 예스 24에서 주문한 책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현관문을 열고 택배를 집어드는 순간 묘한 느낌이 들어 자세히 보니 낯익은 내 글씨체로 쓰인 택배상자였다.


 

다이어트 댄스를 끝내고 사우나를 하고 머리를 말리는데 카톡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하고 드라이를 멈추고 들여다보니  그저께 딸에게 부쳤던 택배가 딸에게 잘 전달됐다는 우체국 택배 알림이었다. 어제 도착할 줄 알았는데 오늘 도착했구나 하고 생각하며 말리던 머리를 계속 말렸다.


주말에 시댁식구들과 강원도 워터파크에 간다고 딸이 래시가드를 찾아서 택배로 좀 부쳐달라고 해서 급하게 찾아서 우체국 택배로 보냈다. 세부에 갈 때 사서 한번 입고 거의 안 입어서 몇 년 되기는 했지만 옷은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긴팔에 반바지 타입이라 레깅스를 받쳐 입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사놓고 안 입은 검은색 쿨 레깅스도 함께 개켜서 포장했다.


3월부터 다시 시작한 다이어트댄스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해서인지 너무 고단하여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남편이 나 잠자는 시간에 산책 겸해서 우체국에 다녀왔다고 했다. 전날 밤에 빈 박스가 있어서 손수 포장하고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까지 구분하여 주소도 쓰고 옆에 친절하게 전화번호까지 써서 포장해 놨었다. 남편에게 전화번호는 개인정보 때문에 번호 노출 안되게 소포 부칠 때 비공개처리 해달라고 부탁하라고 말했었는데, 그건 말하지 않고 그냥 부쳤다고 해서 몇 마디 옥신각신 했다.



주말에 입을 거니까 여유 있게 도착했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집에 왔는데, 서울 딸 집에 도착했어야 할 물건이 내 집 앞에 버젓이 도착해 있는 거였다. 참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황당해서 소포 꾸러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아뿔싸 이게 뭔 일인가?!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여태까지 살아오는 동안 이런 실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나 자신의 과오는 인정을 한다. 그런데 우체국 직원은 왜 그걸 수정을 안 해준 것인가?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이 그런 거 보면 바로 눈에 뜨일 거고, 그러면 바로 수정해서 스티커 붙여서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 아무리 주소를 깔끔하게 잘 썼다 할지라도 양식이 잘못되었으면 스티커 발부해서 위치교정하여 위아래를 바꿔 붙여서 보내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아무 지적도 없이 박스에 쓰여있는 주소대로 그냥 도장 쾅 찍어 부쳤다면 그건 직원도 큰 실 수를 한 것이다.


서로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이 옷을 내일까지는 딸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 황당하면서도 기분이 나빠지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먼저 근무하고 있는 딸에게 이 사실을 카톡으로 보냈다.

딸은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며 의아해하면서도 엄마의 과실도 있다고 했다. 물론 내 과실 인정을 한다. 하지만 우체국에서 그걸 확인을 해줬어야 맞고, 분명히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명시를 했고,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써놨으니, 택배 하는 순간에라도 이상하면 전화라도 해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 연락도 없이 그냥 버젓이 <보내는 분>이라고 쓴 우리 집 앞에 택배를 놓고 가다니, 택배기사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오후 2시가 지나서도 점심 안 먹었는데 배고픈 것보다도

이 물건을 딸 집에 갖다 줘야 하나 어째야 하나 하고 고민하며 딸에게 톡을 하니, 딸은 전화해서 환불해 달라고 하고, 물건은 송도의 자기 시댁 현관문 앞에 갖다 놔 달라한다. 송도에서 송도 다른 아파트인 사돈 집에 갖다 놓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게 참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우체국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황당하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고객센터에서는 다시 세부지역 우체국에서 전화가 고객님에게 갈 것이라 했다.


1시간 조금 안되어서 우체국 국장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죄송하다고 하며,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범위에서 적극 도와드리고 싶다"라고 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내일까지 서울 딸 집에 택배가 꼭 전달되도록 해달라고 말을 했다. 어떻게 땡 시골 우체국도 아니고 국제도시의 우체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하니, 마침 우리 소포를 부칠 때 배우는 학생이 하고 있었는데, 그 학생이 그걸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일처리를 한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그 학생이 지금은 자리에 없어서 뭐라고도 못하고, 국장 자신은 조퇴를 해야 해서 우리가 가도 만나지는 못할 거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더 큰소리쳐 봤자 내 인격만 훼손될 것 같아, 내일까지 꼭 배송되는 걸로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대충 점심밥을  챙겨 먹고 바로 차를 타고 우체국으로 가서 소포를 다시 부쳤다. 내일까지 딸에게 꼭 물건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왜 실수는 묘하게  모든 일들이 뒤엉켜서 일어나는 것일까?

그날 밤늦게 옷을 정성스럽게 포장하면서 급한 마음에

나는 왜 주소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위치를 바꿔 썼으며, 몇 번을 보고도 그걸 잘 못썼다는 인식을 못했으며,

 남편도 그걸 들고 가서 실수인 줄 인식 못하고 맡겼으며,

 소포를 받아 일처리를 하는 직원도 왜 그걸 확인 못하고 그냥 보내버렸을까?

또한 택배 기사는 전화번가 바로 옆에 쓰여 있는데도 왜 확인 없이 그냥 택배를 보내는 분 집 앞에  놓고 갔을까?

네 사람 이상이 이 일에 관여하고 있음에도 아무도 모르게 그냥 황당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을까?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 까? 

어쨌든 갈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밤이다.



내가 부치고 나에게로 다시 돌아 온 택배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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