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다, 글쓰기로

나에게로 이르는 길

by 문지

나는 언제부터 글을 썼을까?


중학생 즈음 뾰족한 속엣말이 차올라 내 마음을 긁으며 돌아다닐 때, 어찌할 바를 몰라 블로그에 비공개 게시물을 처음으로 올렸다. 나의 감정을 세밀하게 쓸 때마다 깨끗하게 씻기는 느낌을 받았다. 글은 가장 입이 무거웠고, 정직했고, 두려울 정도로 솔직했다. 나만이 유일한 독자인 글들이 쌓이며 내 안의 무언가가 되어갔고 꾸며내지 않고 되는대로 휘갈긴 글들은 서툴고 거칠지만 진정으로 나를 위로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7살 땐 언니 오빠의 학교 숙제로 일기를 쓰는 게 멋있어 보여서 자발적으로 따라 했고, 9살 때는 방과후 글짓기 수업을 들었다. 그림 동화책을 만들어 보여드리니, 엄마가 ”너는 작가야.“라고 말씀하셨다. ‘글이 좋다’거나 ‘잘썼다’라거나 ‘작가 같다’라는 표현이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예비 작가였다.


성인이 되고 나니 글로 무언가를 해내야만 할 것 같았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글쟁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글밥 먹는 유명 작가의 모습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나의 글 관련 목표는 하염없이 미뤄졌다. ‘언젠가’, ’나중에‘만큼 중독적이면서도 파괴적인 단어들도 없다. 그즈음의 내가 그랬듯 우울하고 어두운 내용의 글들을 썼다. 글을 쓰기만 하면 활자가 눈물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그 잔해를 닦으며 나는 작가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평생 글을 쓰지 못할 줄 알았다. 시간이 흘렀다.


문구점에서 알바를 하며 알게 된 수지님은 미술에 문외한인 나까지도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 꾸미고 싶게 만든다. 개성 있는 글씨체와 따뜻한 내용의 일기, 수지님의 시선이 닿은 예쁜 그림들을 보자면 나까지 창작욕이 생긴다. 나는 수지님이 그림을 그릴 때 따라 그리고, 일기를 쓰면 나도 노트를 꺼내 마스킹 테이프를 붙였다. 카페 이곳저곳을 같이 다니며, 우린 많은 날들을 기록했다.


나도 수지님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미술과는 상관도 없이 살았지만 열심히 해서 안 되는 건 없겠지? 거의 매일 문구와 다이어리 꾸미는 내용을 SNS에 업로드하며 4개월이 흘렀다. 나름대로 실력이 늘고 팔로워가 늘었다. 나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다. 글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잘하게 되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수지님이 자신을 닮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듯이 나도 그러고 싶은데, 표현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아주 많이 재미있지는 않았다. 기술적으로 잘 그리고 싶을 뿐이었다. 가 본 카페가 많아질수록, 내가 글씨를 또박또박 쓰고, 그림을 그리고, 스티커를 붙일수록 그랬다.


텅 빈 문서를 켰다. 칭찬이 그리웠을까? 몇 년간 쓰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너 글 진짜 잘 쓴다.’라는 말보다 더 좋아하는 말은 없었다. 칭찬이라도 받고 싶어 글을 쓰려고 앉으면, 무엇을, 왜 써야 하느냐는 의문이 도저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알게 모르게 뭐든 쓰고 있었다. 방 안의 나만 보는 수첩 안에, 핸드폰 메모장에.


글 하나를 완성하고 나니 세 시간이 흘러 있었다. 시키지 않아도 쓰고 싶다. 글 없이 지나온 날들을 촘촘히 다시 쌓고 싶다. 늘 휴대하는 소지품에 키보드 하나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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