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장인
‘46165’. 노래방에 가자마자 누르는 번호다. 원래 늘 검색해서 불렀었는데, 노래방에 갈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첫 곡으로 부르기 때문에 귀찮아서 외워버렸다. 낮은음부터 높은음까지 차례로 부르며 소리의 길을 뚫어주기 딱 좋다.
음악은 늘 좋았다. 나는 한 곡을 질리도록 많이 듣는 편이라, 안 외울 수가 없다. 그 상태로 노래방에 가면 음성지원 서비스처럼 귓가에 원곡이 들리는 지경이라 그대로 따라 부르면 된다. 12살 즈음 가족들과 다 같이 갔던 게 내 노래방 역사의 시작이니 이제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크게 변하지 않은 노래방 리모컨은 여전히 묘하게 잘 안 눌린다. 나는 능숙한 손길로 버튼을 눌러 빠르게 노래 제목을 검색한다. 익숙한 전주가 들리고 마이크 전원을 켜는 순간은 언제나 설렌다. 혼자 가면 늘 12곡 정도는 부르고 오는 것 같다.
취미와 오래 함께하다 보면 특기로 격상시키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며 갑자기 성과를 내고 싶어진다. 나는 예전에 너무 높아서 못 부르던 노래들이 있었고, 언젠가는 꼭 불러 보고 싶었지만 엄두를 못 냈다. 그 중 하나가 ‘46165’, 이하이의 한숨이다.
노래방 약 14년 차쯤까지 나는 이른바 ‘생목 창법’을 썼다. 틀린 발성이라도 10년 넘게 반복하면 어떻게든 길을 찾게 된다. 목 근육이 단련되었는지 어느 음까진 나긴 났지만 엄청나게 소리가 크고, 듣기가 힘들었다. 음치는 아니라 음은 정확했지만 그게 다였다. 방법을 모르니 늘 열심히 불렀다. 정말이지 이번엔 부르고 말겠다는 간절함을 담아 온 힘을 다해 귀를 괴롭혔다.
알바하던 카페의 사장님이 예전에 뮤지컬 배우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노래를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 여쭤보니, 성악 발성을 배우면 된다고 하셨다. 노래를 배운다는 게 아주 처음 듣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새로웠다. 생각해 보니 배워본 적 없이 틀린 방법만 썼나 싶어서, 보컬 레슨을 알아보았다. 운이 좋게 아주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가난한 대학생에게 취직과 상관 없는 배움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이 듦에 따라 변한다. 나는 이왕이면 더 어린 목소리로 잘 부르고 싶었다. 선생님은 내 발성을 완전히 뜯어고쳐 주셨다. 그리고는 몇 살만 어렸으면 전공하길 권했을 것 같다고 하셨다. 살면서 처음 듣는 칭찬이라 처음엔 믿기지 않고 얼떨떨했지만, 선생님의 진심 덕분에 늘 희망과 자신감에 부풀어 더 열심히 연습했다. 이전엔 꿈도 못 꾸던 높은음이 힘들이지 않고 났다. ‘나 노래 좀 부르네.’하는 생각을 감히 했다.
발성을 고쳤을 뿐 아직 미숙한 걸 알지만, 이전의 나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발전했기에 조금만 불러도 행복할 수 있다. 자기 검열이나 완벽주의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온몸을 사용해서 노래를 부르고 나면 운동을 하고 난 직후처럼 시원하다. 머리가 기분 좋게 살짝 얼얼하고, 몸 안쪽을 노래가 휩쓸고 지나간 기분이 든다.
할 수 없던 걸 하게 되는 기분은 처음으로 고음을 냈을 때의 비현실성과 비슷하다. 내 안 어딘가에서 나온 처음 듣는 고운 소리가 낯설면서도 너무 좋아서 더 자주 노래방에 갔다. 이 고마운 취미 덕분에 나는 늘 부르는 노래를 또 처음처럼 신나게 부른다. 소리가 몸을 관통하는 시원한 느낌에 몰입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