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관은 출장을 많이 다니나 봐요? 왠지 멋있어요!"
"네?"
"우리 딸이 그러는데 원이는 엄마가 출장길에 사다 준게 많다고 그러더라고요. 외국 출장도 자주 가세요?"
"아~ 하하하, 아니에요. 서울이랑 세종은 자주 가는 편인데, 외국은 최근에 한번 다녀온 게 다예요."
몇 년 전 딸아이 친구엄마와 나눈 대화 중 한 토막이다. 우리 아이들은 남편 소속기관 어린이집을 다닌 터라 나는 아이들 친구엄마랑은 교류할 시간이 많이 없었다. 그런데 운 좋게 문화센터에서 아이의 친구를 만났고, 그 엄마와 커피타임을 가지며 수다를 떨다가 나온 이야기였다. 아이친구의 엄마는 딸에게서 내가 출장을 자주 간다는 말을 들었다며, 같은 공무원인데도 하는 일이 이렇게 다르다며 출장 다니는 내가 멋져 보인다고 말해주었다. 순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대단한 커리어우먼이라도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 대화를 나누기 몇 주 전 난 독일로 출장을 다녀왔었고 내가 방문한 도시는 스위스와 국경지역에 있는 도시여서 가게마다 진열된 물건들이 독일 보다는 스위스를 닮은 느낌이었다. 나는 운 좋게도 그곳에서 정말 새하앟고 앙증맞은 그리고 가격까지 착한 면원피스를 하나 발견하였다. 그걸 출장선물로 사 왔고, 아이는 편하고 이쁘다며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정말 잘 입고 다녔었다. 아마도 그걸 본 친구들이 이쁘다고 말해주었을 것이고 우리 딸은 엄마가 출장에서 사 왔다고 자랑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때 우리 아이 나이는 만 4세였고, 만 4세 그러니깐 5살 아이들도 서로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누는 것이었다.
사실 국내출장, 국외출장 할 것 없이 출장은 그리 대단할 것도, 커리어우먼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그저 피곤하기만 일정들이다. 국내일정의 경우 짧은 2,3시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기차를 타고,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아무리 빨리 돌아와도 8,9시다. 그런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내가 항상 빼먹지 않는 출장루틴 중 하나는 쇼핑이다. 사실 쇼핑이라 말하기 웃기지만 다시 말해 물건구매이다. 바로 아이들을 위한 물건구매이다.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두 손은 항상 종이가방과 비닐봉지가 그득하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다 아이들이 떠오르는 물건이 보이면 하나씩 사들고 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어느 순간 출장지에 살만할 것이 없나 찾아보기도 하였다. 원하는 선물을 사지 못한 날은 내 손에 간식이 잔뜩 들려있다. 지금 생각나는 몇 개는 코엑스 행사에 참여하였다가 점심시간 잠깐 둘러본 코엑스몰 쇼품샵에서 산 디즈니캐릭터 잠옷, 대구 회의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 대구기념품샵에서 구매한 캐릭터 인형 정도이다. 그 외엔 대전에선 성심당빵, 또 한 번 대구에서 근대거리팥빵 정도가 생각난다. 사실 제일 출장을 많이 가는 곳은 세종시인데 그곳은 참 살만한 물건이 없다. 그래서 세종시 출장을 다녀오는 길을 항상 도착한 기차역에서 간식을 잔뜩 사들고 돌아온다. 내가 좋아하는 간식은 지역유명 빵집의 마드레느, 닭강정, 어묵핫바 등이다. 조금씩 사다 보면 어느새 두 손 가득인 날이 많다. 항상 중복되는 아이템이지만 아이들에게 엄마의 출장길을 떠오르게 하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쇼핑루틴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내가 출장 가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어쨌든 출장을 가는 날을 아이들을 더 챙기기 어렵고, 출장 중간에는 전화를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출장 가는 엄마를 뭔가 긍정적인 느낌으로 생각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느낌에 나 역시 더 힘을 내서 출장을 다녀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의 미래에 엄마가 실제보다 더 부풀려진 멋진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출장길 쇼핑품목에 신경을 쓰게 되는 거 같다. 아이친구 엄마와의 대화가 있은 후,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출장길 쇼핑루틴을 권하고 있다. 이왕 일하고 고생하며 키우는 자식에게 좀 더 멋진 엄마로 남고 싶은 건 모두의 마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