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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아리 Aug 07. 2023

04. 이 집안의 북_part 2

명절에 남매는 무조건 엄마 편



지난 글에 이어서, 농담이 아니라 진짜 우리 아빠가 이 집안의 북일 때도 있다.


명절. 


그 누구도 아빠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시기.


우리 엄마는 할 수 있는 건 해야 하는 주의고, 아빠는 효자셨다.


지금은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돌아가신 지 꽤 흘렀지만, 두 분 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살아 계셨다. 그리고 며느리는 많은데, 며느리 노릇은 우리 엄마만 했다.


다른 친척들은 오지도 않는 할아버지 댁에 우리는 명절 내내 가 있었고, 까다로운 할아버지의 입맛에 맞춰 매일 다른 음식으로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내던 엄마.


엄마는 자주 약을 먹는다. 손목을 너무 혹사해 약 없이는 고통을 버틸 수 없으시다. 


어느 날은, 명절 기간 중에 위경련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작은 고모는 그런 엄마에게 쌀 몇 컵이나 넣어야 해? 지금 밥 시작할까? 이런 사소하고 필요 없는 질문을 해대며 괴롭혔다.


그건 즉, 다 차려놓은 반찬에도 밥조차 자기가 하기 싫으니 위경련으로 쓰러진 엄마 보고 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내 눈에 그 뻔한 수작이 안 보였을 리 없고, 내가 그런 걸 넘어갈 성격도 아니다.


나는 엄마를 작은 방으로 옮기고, 그 방의 문을 잠가버렸다.



"내가 할 테니까 엄마 좀 가만두세요."



사실 욕이 치밀었지만, 아닌 척 시침을 떼는 고모한테 뭐라고 해봤자 당장 아빠는 상황도 파악하지 못할 거다. 엄마는 곤란해지겠지. 


그래서 그냥 내가 했다. 그러니 또 시침을 뚝 떼고 가버리던 그 모습이 참, 얼마나, 화가 나던지.







내가 비혼주의자에 가까운 이유의 8할은 그 시댁 때문이다. 


물론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무척 사랑했다. 돌아가신 지 몇 년이나 흐른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고, 가끔은 너무 그리워 몸부림 칠 정도로. 


그만큼 정말 사랑을 많이 받기도 했고, 어릴 땐 매년 여름을 할아버지 댁에서 보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엄마를 더 사랑한다. 그래서 가끔은 그토록 사랑해 주신 분들인데도 미운 생각이 든다. 


아빠는 그런 부분에서 눈치가 없다. 그저 효자라서 아무도 안 찾는 할아버지 댁에 무슨 일만 있으면 온 가족을 데리고 갔다는 정도.


그렇다고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미워했던 건 아니다. 우리 엄마는 두 분이 돌아가셨을 때 탈진 지경까지 우셨을 정도로 정이 많았다. 실제로 그토록 힘든 시댁 일에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아빠, 엄마라고 불러가며 그 모든 일을 도맡았었으니까. 


할머니는 오래 아프셨고, 할아버지는 꽤 장수하셨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마치 자기가 친 딸인 것처럼 많이 울고, 많이 힘들어했다.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친 부모에게도 그렇게는 못할 거 같을 정도로 해놓고. 친 딸조차 억지 눈물 몇 방울 흘리고 마는데도.


아마 우리 가족이 시댁으로 이렇게 아픔을 겪게 된 건, 할아버지와 할머니보다는 그 식구들 때문일 거다.


뜯어갈 것만 뜯어가고, 그 이후엔 발길조차 끊은. 심지어 장례식에 안 온 이들도 있다.


물론, 아빠는 이런 내 평가에 속상해하신다. 아빠라고 원망이 없었을까? 그래도 형제니까, 어쩔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있으셨겠지. 그걸 다 알면서도 나는 선언했다.


우리 집에 모신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신 후 작은 고모가 그런 말을 했다. 이제 ** 올케(우리 엄마)네 집에 모이면 되겠다. 


아니, 그런 일은 없었다.


이제는 시댁 식구 수발까지 들란 말인가? 우리 집에 모이면 당연히 우리 엄마가 음식을 하겠지. 다 망가진 손목으로. 한 번 앉지도 못하고. 


그리고 그 이후로 우리가 시댁 식구를 만난 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산소에 가는 일정이 겹쳤던 두 번 정도가 끝이었다. 솔직히 안 보게 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앞으로도 보고 싶지 않다. 







이런 배경 사실이 있다 보니 명절에는 아빠를 예의 주시하게 된다. 제발, 말실수를 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평소라면 그냥 웃어넘길 말도, 이 기간에 하면 치명적이니까. 


그런데 지금껏 한 번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다. 아빠는 그런 데 둔감한 편이시고, 엄마는 예민한 편이니까.


다행스럽게도 모든 상황을 종결시키는 건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빠, 아빠 딸이 엄마처럼 그렇게 시댁에서 혼자 다 하고, 매번 가서 병시중도 혼자 들고, 손목 다 망가지도록 고생하면 아빤 어떨 거 같아?"



"그런 시댁을 내가 가만히 둘 것 같니?"



"그러니까. 우리 엄마도 우리 할아버지한테는 그렇게 귀한 딸이야." 



나를 인질로 잡으면 아빠에게 남는 건 항복밖에 없다.



"그래, 내가 죄인이지."



툴툴거리는 것처럼 말씀하시며 끝낸다. 그럼 나와 동생은 한 마디를 더 얹는다.



"아빠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야.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엄마가 아주 힘들었다고. 그러니까 적어도 명절 때는 조금 더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기울여 달라는 소리야."



그렇게 이야기하면, 엄마는 자식들이 자기를 생각해 주는 마음에 또 스르르 풀려버린다. 아빠는 여전히 좀 서운할 수 있겠지만, 그 모든 엄마의 고생을 봤던 동생과 나는 적어도 명절에는 어지간하면 엄마 편이기로 결정했으니 별수 있을까?


자칫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있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설전을 벌인 뒤 술 한 잔으로 건배하며 마무리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꽤 건강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속이 상한 아빠를 딸내미의 특제 애교와 챙김으로 달래고,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시며 풀어주면 임무는 완료!


이렇게 풀어놓고 보니, 어쩌면 요즘 명절에 제일 고생하는 건 나와 동생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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