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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Sep 11. 2022

추석,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늦었지만 더 늦게 전해서는 안 될 말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추석 연휴에 하행 열차도 버스도 타지 않은 적이 이전에 한 번 있었다. 2학년 시절 표 예매 타이밍을 놓쳐 KTX에도 고속버스에도 타지 못해 꼼짝없이 방에 틀어박혀 4일을 보냈다. 연휴 기간에 생각보다 여는 가게가 얼마 없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먼 곳까지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처절하게 실감하기도 했다.


  그때 이외에는 매해 꼬박꼬박 내려가서 명절을 맞이했다. 버스 표의 시간대를 잘못 보는 바람에 타야 했던 버스를 타지 못하고 처음 가본 지역의 찜질방에서 꼼짝없이 1박을 보낸 적도 있었지만, 내려갈 방법이 존재하는 한 내려가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복을 입고 있을 때와는 달리 친척 형들, 누나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명절에 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나라도 가야지'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도 있었다.


  3학년이 되고 나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조부모님을 뵙기 위해서 가야 할 곳이 시골 벽지가 아닌 어느 도회지의 병원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추석이 중간고사 기간에 들어가는 바람에 내려가기가 어려운 점도 있었기 때문에, 2~3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두 분을 찾아뵙는 것으로 도리도 지키고 명절의 의미도 챙기고자 했다. 지하철로 편도 2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매번 오가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지만, 더 편찮아지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뵈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기에 다른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었다.




  명절을 맞이하는 장소는 다시 한번 달라졌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입원 환자와 가족 사이에 넘어서기 어려운 벽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지방에 사는 가족을 대신해 홀로 병원에 계신 조부모님을 주기적으로 찾아뵈었지만, 그것마저 어려워지자 가족 얼굴이라도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본가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부모님을 찾아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길어야 1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사태가 끝을 모르고 길어지면서 시골에서 머무르지 않는 어색한 한가위가 반복되었다. 성묘와 제사상 차림이 병원비 송금으로 대체되고, 친척들과의 모임을 통화 한두 번으로 갈음하는 추석이 소위 뉴노멀이 된 것이었다. 과거에 경험한 것과는 사뭇 다른 추석에 불편한 괴리를 느끼면서도,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모두에게 적응을 명령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일을 하면서 맞이한 지난해 추석에서는 예전의 형태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연휴 기간 동안 비상근무자로 뽑혀 출근을 해야 했고, 아버지도 연휴 전까지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요인들의 연속으로 인해, 4인 가족 기준으로도 명절이 산산조각 나는 불상사가 일어났던 셈이다.


  달력이 몇 번씩 교체되는 동안 모두가 변화에 점점 무뎌져 갔다. 우리 가족은 연휴에 이동하지 않을 근거를 들고 그 근거의 불가피함을 설명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10년 전에는 서서히 얼굴을 보기 힘들어진 사촌 형, 누나들의 사정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막상 그 나이 대에 들어와 보니 이쪽의 사정도 크게 다를 바가 없어진 것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불편함을 눌러보려 했다.




  추석의 형태가 달라질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바이러스가 만들어놓은 벽이 걷히기 전에 먼저 자리를 떠나셨다. 처음 입원하셨을 때보다 더욱 노쇠한 부모의 모습을 본 자식들이 죄송스러운 표정을 짓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으셨던 듯했다. 서울에서 2시간 걸려 찾아온 손주가 매번 무거운 책이 든 가방을 이고 오는 것을 안타까워하셨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2년 가까이 찾아뵙지 못한 손주로서, 사진 너머로 줄곧 한 방향만을 응시하시는 두 분의 눈을 떳떳하게 바라보기 어려웠음은 물론이다. 달라진 여건과 피치 못할 사정을 변명거리로 쓰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많은 명절을 지나치고 운구, 발인 날짜가 되어서야 황급히 달려온 분들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빛의 눈물을 흘리며 비통의 3일을 보냈다.


  3개월 만에 두 차례나 상주가 된 아버지만큼은 예외였다. 조금이라도 더 병원비를 보내드리지 못한 점, 멀리 떨어진 지방에 살아 자주 찾아뵙지 못한 점, 평소 감정을 잘 전달하지 않아 전해야 할 말도 드리지 못한 점은 아버지의 마음 한 구석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터져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조문객 중 누구도 아버지의 눈물을 본 사람은 없었다.


  두 분의 유해는 두 분의 댁과 논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뒷산의 중턱에 안장되었다. 조금 먼저 도착하셔서 쉬고 계셨던 할머니의 곁에 할아버지의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 보이자, 보는 이의 눈시울이 다시금 붉어졌다. 화장장에서 유골함이 나왔을 때에도, 야산에 묘비가 세워질 때에도 의연함이 묻어난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고농도의 나약함이 섞인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제야 손주는 진정으로 두 분을 위해 보여드려야 할 것이 어떤 모습인지 찾아 나설 수 있었다.




  달력 속에 빨간 글자로 적힌 날이라면 마냥 좋아할 법한 어린아이였을 때에도 명절이 싫었던 이유가 있었다. 산을 타고 내려온 수많은 모기, 하루에 몇 번씩 고통을 선사했던 재래식 화장실의 악취는 3-4일만 견디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름조차 모르는 다른 이들과의 비교와, 손주들에 대한 거대한 기대치는 몇 달이고 지속되는 스트레스였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이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에 평소부터 노출되어 있던 터라, 자식이 이루지 못한 것을 손주가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이 중첩될 때마다 부담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명절 때마다 찾아오는 손주를 귀여워하시며 용돈을 주시곤 하셨던 할아버지께서는,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신 분이었다. 신경 쓸 것도 많고 일 하나하나가 고된 농사를 오래 지으셨기 때문에, 자식들만큼은 몸이 힘든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길이 그 바람을 충족하지 않는 길이었기 때문에, 실현되지 않은 이중의 염원은 21세기까지 흘러서 넘어 들어왔다.


  그러한 심경을 그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떨쳐내고만 싶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지금은 양면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면 자라면서 이뤄낸 성취 중 많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점에서는 감사함을 느낀다. 한편으로 '더 크게 될 수 있었던' 손주가 선망을 받는 직업인이 아닌 평범한 예비 월급쟁이가 되어, 과거 시점의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성인이 된 것에는 죄송함을 느끼고 있다.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놓치지 말고 데려오거라.
손주도 이렇게 예쁜데 증손주는 얼마나 예쁘겠나?


  할머니께서 건강에 이상이 없으셨던 시절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한 마디의 잔상은 당신께서 떠나신 지금까지도 무의식 속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바람 역시 현실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오히려 예전에 비하여 많이 닫혀버린 가능성으로 인해, 미래의 자신이 떳떳하게 묘소를 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지금까지 겪어온 일련의 과정에는 두 분의 바람을 포함해 많은 이들의 기대치가 투영되어 있었다. 그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자신의 바람은 다른 누구도 정확히 들어주지 못하며,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자신 한 명을 채우기에도 청춘, 인생은 짧다.


  그리하여 두 분께서 떠나가신 이후 처음 맞이하는 명절에, 살아생전에 감히 드리지 못했던 말씀을 이 글에 담아 한가위 저녁 바람에 실어 보내고자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주가 가는 길이 미덥지 않게 느껴지시겠지만, 10년 전만큼만 믿어주세요. 두 분 앞에서 자랑스럽게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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