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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Oct 29. 2023

성광성냥공업사

불의 노래


불의 노래


feat. 성광성냥공업사 특별전, 이재 사진전 <불립문>

2023.11.10.(금)-11.18.(토) 11am-5pm

성광성냥공업사 내 (구)구내식당, 의성읍 향교길 57-4





황야의 무법자(1964) / 영웅본색(1987) / 보안관(2016)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무법자 3부작을 보면 주연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성냥을 그어 담배에 불을 붙이는 장면이 숱하게 나온다. 그는 난로든 탁자든 구두든 벽이든 손닿는 곳 아무 데나 성냥을 그었고, 그러면 촤악-하는 소리와 함께 멋지게 불이 타올랐다. 영화가 나온 1960년대 당시엔 황린을 사용한 초기 성냥으로 발화점이 낮아서 가능했던 일이다. 

  성냥은 많은 매체에서 소품으로 사용되었다. 그것도 매우 비중 있는 역할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거나 <영웅본색>(1987)의 주윤발과 <보안관>(2016)의 이성민이 성냥 대신 라이터를 입에 물었다면 어땠을까. 드라마 <도깨비>(2016)에서 지은탁(김고은)이 도깨비 김신(공유)을 소환할 때 성냥이 아닌 라이터를 사용했다면? 그거야말로 별로인 것.    


 


도깨비(2016)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시골인 의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신문지를 잘라 직접 자른 대나무를 붙여 연을 만들어 날렸고, 나무를 잘라 스케이트를 만들어 탔으며, 중학교 들어가서는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둘씩 사 모았다. 우리는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테잎을 빌려서 보았고, 읍내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묵은 스트레스를 날리곤 했다. 

  저녁 어스름에 집에 들어가면 할아버지께서 주름진 손으로 성냥갑에서 성냥을 꺼내 불을 붙이시고는 조심스레 한 손으로 가리고 아궁이로 가져가는 모습을 매일 보았다. 솥에서 김이 피어오르면 소 여물이 익으며 내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마당의 감나무 꼭대기에서부터 서서히 내려오는 어둠을 맞이하곤 했다. 

  이러했던 기억 속의 감성이 되살아난 것이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다. 사람들은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열광했고, 오래된 건물의 낡음을 유지한 채 운영되는 카페를 찾아다닌다. 복고, 복고, 복고는 그야말로 하나의 트렌드이자 멋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복고의 한켠에는 성냥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추억도 오롯이 자리 잡고 있다.    

 




 경북 의성에는 대한민국 마지막 성냥공장이 있었다. 6.25사변이 끝난 다음 해, 1954년 2월 8일 문을 연 이곳 성광성냥은 해마다 성장을 거듭하여 1970년대에는 무려 월 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직원은 160명이 넘었고 농한기에는 의성읍민들에게 부업거리로 성냥갑 만드는 일거리를 주었다. 매일 아침 여공들은 통근버스를 타고 바쁜 걸음으로 저 문을 지나 출근을 했을 것이고, 멀리 사는 직원들을 위한 숙소도 따로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젊은 남녀들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 요즘으로 치면 그야말로 대기업에서 만나 사내연애를 하다가 결혼에 골인한 케이스였다. 이들은 성광성냥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월급날마다 통닭파티를 열었다.      





  그런 성광성냥이 문을 닫은 것은 2013년 11월이다. 1980년대 후반 일회용 가스라이터가 보급되면서 성냥산업은 1차로 타격을 받았고, 2000년이 넘어가면서 값싼 중국산 성냥의 공세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 해 우리나라는 나로호 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했고, 의성군에서는 타임캡슐 봉안식이 열렸고(이 타임캡슐은 서기 2513년에 개봉된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휘어지는 스마트폰을 출시했고, 마지막 필름 상영관이었던 시네큐브가 모든 영사기를 디지털로 바꾸면서 35mm 필름영화가 종언을 맞이했다. 이 모든 것이 원인이다. 성냥공장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편적으로는 라이터와 중국산 성냥이 밀고 들어와서이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안에서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넋 놓고 바라봄과 동시에 그 강물이 도달할 바다를 상상하고 회상에 젖는다. 성냥은 지금쯤 어느 바다에서 그 젖은 몸을 드러내어 추억의 햇빛을 받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먼 훗날 다시 사람들의 주머니에 자리 잡고 불을 환하게 밝히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몇 장의 사진과 글을 펼쳐내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소중하고 아련한 불의 노래를 기억하고자 한다.     



 


  1826년 영국의 약제학자 존 워커에 의해 최초로 발명된 성냥의 브랜드 네임은 ‘루시퍼Lucifer’였다. 루시퍼는 라틴어의 ‘빛(lux)을 가져오는(ferre) 것’에서 나온 말로, ‘샛별’이란 뜻이다. 본래 대 천사장이었던 루시퍼는 교만함이 극에 달아 신이 미카엘을 파견하여 일당을 섬멸하고 루시퍼를 지옥으로 쫓아냈다. 

  금성(샛별)은 영어로 비너스라고 불리지만 루시퍼로도 불리는데, 루시퍼가 갇힌 지옥이 바로 금성이다. 의성군 금성면에는 사화산인 금성산이 있다. 한반도 최초의 화산인 금성산과 이름이 이렇게 연결이 되니 마지막 불씨였던 성광성냥과 함께 우연치고는 절묘한 스토리텔링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듯하다. 한때 잘나갔던 루시퍼의 일대기가 성냥처럼 사그라든 것이다.     





  공장 정문에 붙은 도면을 본다. 2300평(7686㎡)이나 되는 큰 부지라는걸, 문을 열고 들어설 때엔 상상조차 못했다. 입구 오른쪽으로 사무실을 지나 대갑부, 소갑부, 약품재료창고 등이 위치하고 왼쪽으로는 윤전부(A5)와 축목부 등 본격적으로 공정이 가동되는 기계실이 있다.  

  성냥 하나를 만드는 데 10단계(세부적으로는 20여 단계)가 넘는 공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사실 조금만 신경 써서 본다면 단순히 성냥개비 하나만 보더라도 거대한 나무로부터 이것이 완성되려면 보통 일은 아니었을 거라는 걸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포플러 나무 원목을 갖고 와서 이를 40cm 크기로 절단하여 껍질을 벗기고 2.2mm 얇은 나무판(밤바)으로 만든 후 채를 썰 듯 자디잘게 만들어서 건조기를 통해 수분을 제거하고 끝부분에 파라핀과 화약을 묻힌다. 그리고 성냥갑에 넣고 성냥갑 한쪽 면에 발화점이 낮은 적린을 발라서 포장한다. 그리하여 완성된 성냥은 트럭에 가득 싣고 통영과 부산과 남해와 영덕, 울진, 속초 등 동해안을 열심히 달린다. 그야말로 철저한 분업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미지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발을 디딘다. 1954년부터 시작되어 60년 가까이 지속된 그 흔적과 공기와 향기를 맡으러 가보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숙직실과 사무실로 쓰이던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품고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건물만 보더라도 풍기는 분위기가 남다르다. 입구 몇 장면만으로도 이곳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을 거라는 게 느껴졌다. 쉽사리 여길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역시나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축목부로 연결된 공장동으로 가까이 간다.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파라핀 왁스(Paraffin Wax) 상자들이 쌓여 있다. 제작 공정의 마지막 단계 화약을 입히기 전에 바르는 파라핀 왁스는 쉽게 증발되는 탄화수소 연료를 공급함으로써 성냥의 점화를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지금 성냥 제작 공정의 마지막 단계를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아! 

들어서자마자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낡음.’ 수십 년을 버텨오면서 자연스럽게 풍화된 바로 그 ‘낡음’이 눈앞에 펼쳐졌다. 얼룩진 벽과 녹슨 쇳덩어리들, 이리저리 발길에 차이는 폐자재들... 서서히 눈이 바빠지고 발길과 손도 덩달아 바빠졌다. 눈앞에 쌓여 있는 터진 포대에서 쏟아진, 성냥이 되지 못한 작은 나무개비의 무덤을 발견했을 때 내 입에선 또 한 번의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너희들이구나.      





  각각의 나뭇가지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다. 혹은 수년째 화약이 발려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안쪽엔 더 많은 포대들이 쌓여 있었고, 저들 모두 가공되다 만 성냥개비들로 가득 차 있으리라. 천장의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과 한쪽에 놓인 빛바랜 소파가 낡은 분위기를 한층 더 애잔하게 만들고 있다.     





  잠시 밖으로 나왔다. 정면 대갑부의 ‘안전제일’이라는 글자가 다시 한번 이곳의 낡은 분위기를 상기시켜 주었고, 숨을 들이마시자 ‘여긴 60년 된 공기를 품고 있어’라고 공간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옆에 있는 다른 양철문을 열고 들어간다. 커다란 윤전기와 함께 어둠과 적막이 어우러진 오래된 물건들의 냄새가 코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할아버지가 된 거대하고 녹슨 윤전기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채 나를 맞이했다. 저 구멍에 촘촘히 박혀 돌아가며 파라핀왁스와 화약에 담기던 성냥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한창 땐 이 윤전기보다 더 큰 것도 있었으나, 사업이 쇠락하면서 인도네시아에 팔았다고 한다.      





  해방 직후엔 이런 성냥공장이 전국에 200여 개나 되었다. 그중 성광성냥은 바닷가 습기가 많은 곳에서도 불이 잘 켜진다 하여 동해안 뱃사람들에게 인기가 무척 좋았다.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도 찾을 수 있도록 야광염료를 성냥갑에 칠하는 방법도 고안했다고 한다. 그러한 노하우와 기술력이 있었기에 마지막 성냥공장으로 살아남았던 것이리라.          





  벽으로 눈을 돌리자 칠판과 안전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달력은 2013년 10월에 멈춰 있었다. 윤전기의 가동이 멈춘 시간, 그 시간 속에 와 있는 것이다.     





  사진은 최대한 실제 색감과 비슷하게 살리려고 애썼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현장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직접 이곳에 와보시라고, 직접 느껴보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낡음. 그저 오래된 낡음이 아닌, 아무 곳에나 탁자 하나를 놓고 소주를 마시면 대폿집, 와인을 마시면 와인바, 커피를 마시면 카페가 될 수도 있을 그런 극한의 감성적인 낡음이다. 하지만 더 낡아 바스러지기 전에 이곳을 보전해야 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긴 롤러 위에 40cm 크기로 잘린 얇은 나무판(밤바)이 쌓여 있다. 이 나무판을 가공해서 성냥으로 만드는 거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한쪽에는 성냥이 되지 못한 나무 개비의 무덤이 또 한 무더기 있었다. 개중 몇 개는 주황색 화약이 발라져 있는 것도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조심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곳은 먼지 한 톨까지도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말이 아까부터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귀마개 착용’이라는 팻말이 붙은 걸 보니 작업장이 어지간히 시끄러웠나 보다. 이곳이 소갑부다. ‘불조심’이 적힌 문 너머로 갖가지 기계들과 함께 방수천막의 파란빛이 손짓하듯 일렁인다.      





  공간을 돌아본다. 낱낱의 성냥개비들을 작은 통에 담아 큰 박스로 포장하는 작업실의 모습이다. 나무로 된 트레이 위에 빈 성냥갑들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다. 성냥갑에는 ‘병풍산방’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다. 불과 몇 년 전 판촉물로 주문 받았다가 남아 있는 재고일 것이다.      





  성냥이 사그러든 이후, 업소에서는 한때 손님들에게 성냥 대신 가게 이름이 찍힌 라이터를 나누어 주었고, 이젠 그 모습도 보기 힘들어졌다. 여러 업소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업소 이름이 찍힌 성냥갑에 성냥을 가득 넣어서 납품했을 것이다. 

  성냥갑의 크기와 디자인도 각양각색이다. 주문이 들어오는 판촉물의 종류에 따라 42mm와 48mm 짜리로 만들어져서 각각의 성냥갑에 담겨진다. 성냥갑 공정에 쓰이는 재료들이 눈에 띄었다. 각종 업소의 로고와 이름이 찍힌 커다란 포장지가 보인다.           





  이곳 달력은 2013년 11월에 멈춰 있다. 성광성냥공업사가 문을 닫는 날, 마지막 포장 작업을 앞두고 이곳에 터를 잡아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작업에 임했을까. 쓰다 만 주전자와 녹슨 버너가 시간의 무상함을 품고 침묵하고 있고, 기계 정비에 쓰였을 법한 공구들이 어지러이 먼지를 품은 채 담겨 있다. 딸깍, 스위치를 돌리면 지금이라도 위이잉-하는 굉음과 함께 기계가 돌아갈 것만 같다.   


  



  실로 오랜 시간 사용한 흔적이 있는 낡은 나무트레이 위에 담다 만 성냥이 수북이 쌓여 있고, 작업종료 30분 전을 알리는 걸까, 시계는 5시 30분에 멈춰 있다. 무한한 시간 앞에서 유한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무엇을 남겨야 할까.  



    


지나가던 작업자 김성광 씨의 머리에 부딪혔는지 형광등 스위치만 까딱까딱 고요와 적막을 흔들고 있다. 침묵하는 공기 속을 숙연한 마음으로 걸으며 낱낱의 순간을 빠짐없이 셔터에 담으려 애쓴다. 모든 것은 끝이 있다.      




  창밖에 세워진 녹슨 리어카를 보고 시선을 돌리는데 벽에 붙은 상장과 안전포스터가 보였다. 1985년 3월 11일 상장수여식 날의 순간이 사진으로 남아 추억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노동부와 월간 산업안전의 안전포스터. '생산제일 자랑말고 안전제일 자랑하자'. 국민학교 시절 불조심이나 반공에 대한 표어 짓기나 포스터 만들기 대회를 심심찮게 열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당시 문구가 딱 저랬다. 낡디낡은 종이의 표정. 어쩌다 사람은 늙음이 되고, 사물은 낡음이 되었을까. 나 또한 나이가 들면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고 이처럼 아름다운 ‘낡음’이 될 수 있을까.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는 것조차 이들 앞에선 사치인 것 같다.  



   


  밖으로 나간다. 소화전 아래 땅속으로 커다란 물탱크가 있고 지금도 물이 가득 차 있다. 불이라도 나면 큰일이기 때문에 모든 공정 단계에는 언제라도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장치가 되어 있다. 다행히 큰불이 난 적은 없다고 한다. 물탱크 안을 내려다보는 내 그림자는 흡사 60년 전의 것인가. 건물이 바스러지는 자리에 풀이 돋는다.     





  밖으로 나와 녹슨 풍경에 매료되어 걷는다. 오랜 시간 산업 역군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고, 이젠 수명이 다해 잊혀져 가는 기억이 되고 있다. 건물을 돌아 축목부 옆 공장 뒷문으로 나간다.      





  깨진 창과 찢어진 낡은 천막, 녹슨 철계단 같은 것들이 흡사 정밀한 영화세트장 같은 느낌마저 든다. 축목부에 성냥이 되지 못한 몇 개의 커다란 포플러 나무가 길게 누워 있다. 운반 트럭이 날마다 이곳에 목재를 쌓아두었을 것이다.      





  축목부 옆, 모터와 톱니바퀴로 포플러나무 원목을 자르는 곳이 있다. 그리고 공장 안에서 성냥 크기로 잘게 잘려진 개비들이 공기흡입기를 통해 뿜어져 나오던 관이 보인다. 바람을 타고 우수수 쏟아지는 광경이 볼만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나무개비들이 건조과정을 거쳐 다음 공정으로 넘어간다. 벌써 몇 년째 건조되고 있는 개비들이 아직 듬뿍 쌓여 있다.      





  텅 빈 구내식당에서 인부들이 허기를 채우는 숨소리를 듣는다. 구수한 밥냄새가 나는 듯하다. 더 이상 사람의 흔적은 없지만 빛이 가득 들어찬 빈 창고까지 돌아본 후 돌아갈 채비를 한다. 1954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내가 살고 있는 2021년의 현대적이고 각박한 세계로 돌아가는 길이다. 한데 왠지 녹슨 철문을 지나 밖으로 나가면 일흔이 된 내가 담배를 물고 구겨진 성냥갑에서 성냥을 꺼내어 탁탁 불을 붙이고 있을 것만 같다. 이곳은 아직도 더 많은 공간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다. 





성광성냥공업사 손진국 대표. 2020년 2월 12일 타계. 향년 84세. 2019년 10월 촬영

  

  복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우리가 궂은 날을 대비해서 옷장에 비옷 걸어둘 자리를 늘 마련해두듯, 급변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정신의 피폐함과 문화적 빈곤함을 느낄 미래의 어떤 날을 위해 이러한 그리움의 장소를 온전히 보전하여 후세에 물려주는 것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일 것이다. 


자, 시간여행은 끝이다. 이제 당신의 세계로 돌아가자. 



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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