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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훈느 Oct 01. 2021

Lay's 감자칩 변주곡

편의점 감자칩 천태만상

 중국에서 얻은 집은 우리나라로 치면 주상복합 서비스 아파트이다. 1층부터 16층까지를 상업시설로, 17층부터 32층까지를 주거 시설로 쓰는 그 건물은 주차장 방향, 대로 방향 출입문이 2개 있는데 회사도, 지하철역도, 버스 정류장도 주차장쪽 방향이 더 가까워 나는 그쪽을 더 자주 이용한다. 주차장쪽 출입구 옆에는 동북식(东北) 요리를 파는 음식점 하나와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하나 있다. (여담이지만 동북 요리집은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꽤 있어 점심, 저녁 시간마다 사람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의 생필품이나 식재료는 허마선생(盒马鲜生) 어플로 배달해서 장을 보지만 가끔 자질구레하게 뭔가 필요하거나, 싼 커피를 급히 마시고 싶거나, 간단히 허기를 떼울 간식이 필요할때면 세븐일레븐으로 향한다. 할인이니 포인트 적립이니 온갖 마케팅 문구가 써진 요란한 POP 들을 보며 주의 깊게 1+1 요거트를 고르기도 하고, 때론 매장에서 뜨겁게 끓이고 있는 어묵이나 그릴 소시지를 고르기도 한다.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기분이다! 하며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미니 컵을 사들고 오기도 하니 생각보다 세븐일레븐을 자주 이용하는 것 같기도...?

  편의점에 들어서면 살 물건을 향해 곧장 직진하지 않고 매장을 휘휘 둘러보며 뭐가 있나 한번 보곤 하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곤돌라에 잔뜩 진열된 과자들을 구경하는 일이다. 한국에도 판매하는 과자의 중국 버전 포장재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 있고, 한국에는 없지만 익숙한 생김새의 과자를 구경하는 것 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유독 알록달록한 색이 많고 진열도 자주 바뀌어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자주 바뀌는 진열의 가장 중심에는 언제나 Lay's (乐事) 감자칩이 있다.          

봉지 과자로도, 프링글스 같은 원통형 과자로도 나오는 감자칩 Lay's(乐事)

 중국에 각양 각색 온갖 괴랄한 맛의 Lay's 감자칩이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 범주가 더욱 다양해 보는 재미가 굉장하다. 신제품 출시 사이클도 아주 짧은 것 같은데 거의 이주에 한번씩은 매장에 못 보던 맛이 새로 진열되는 것 같다. 계절이 바뀌는 시점이면 계절 특선 새로운 맛이 두세개씩은 곤도라에서 가장 좋은 자리인 눈높이, 위에서 두세번째 자리에 놓인다. 


 처음 보는 다양한 맛이 많지만 우선 언제 어디서나 접하기 쉬운 종류로 기본 감자칩 맛 (짭짤한 포카칩맛, 누구나 아는 그 맛), 토마토, 바비큐, 오이맛이 있다. 이 4가지는 대부분 매장에 다 구비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중에선 토마토와 오이맛이 좀 특이하다.

오이맛 Lay's

  특히 오이맛은 한국에서 민트 초코 만큼이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식품인데 대중적인 과자로 출시되는 점이 좀 놀랍다. 오이 냄새도, 맛도 '극혐' 하는 남자친구는 뭐 저런 걸 파냐고, 저게 팔리냐고, 고문용이냐고 사진만 보고도 펄쩍 뛰곤 했다. 나는 오이에 편견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오이를 즐기는 편이라 한번 사 먹어 보았는데 진짜로 신기하게 감자칩 끝맛에 화하고 시원한 오이향이 난다. 조향을 누가 하는지 재현력이 기가 막히다. 오이와 비슷하게 신박하다고 생각한 맛으로 라임 맛이 있다. 사워 크림 외에 시큼한 감자칩을 잘 접해 보지 않아 이게 무슨 맛일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먹을만하다. 그러고보니 영국에서는 감자튀김에 식초를 쳐서 먹는게 일반적이라 하고, 서구권 감자칩에는 sea salt and vinegar 같은 맛이 흔한데 라임맛이 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다만 서구권의 sea salt and vinegar 맛 보다는 덜 짜면서 끝맛으로 더 가볍고 상쾌한, 과일향이 가미된 신맛이 난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맛으로 훠궈 맛과, 동파육 맛(东坡肉) 이 있다. 훠궈맛이야 예측 가능한, 맵싸한 맛일테지만 동파육이라니! 이거야말로 정말 찐으로 중국스러운 맛이라며 보자마자 바로 샀던 기억이 있다. 동파육 맛은 프링글스 과자처럼 길쭉한 원통형으로 된 용기에 담겨 있는데 봉지 과자가 생 감자칩이라면 이건 전분과 반죽해 일정한 모양으로 튀겨낸 과자라는 점이 조금 다르다. 동파육 맛이라면 간장에 졸인 단짠단짠하고 묵직한 고기 맛이 먼저 떠오르는데 놀랍게도 과자를 씹으면 정말 그런 맛이 난다. 정확하게는 그런 향을 구현해 맛이 난다고 착각하게 만든거지만 이쯤되면 Lay's 중국 지사는 놀라운 조향 능력을 지닌 것 같다. 맛이나 향의 구현이 어색하거나 인위적인 느낌 없이 제법 그럴듯하다.  


 계절이 바뀔 때가 되면 Lay's 의 특이한 맛 대행진은 더욱 심해진다. 주로 계절성이 강한 식재료를 모티브로 새로운 맛을 만드는 것 같은데 대표적 예로 봄에 나오는 벚꽃맛 (?) Lay's 가 있다. 벚꽃이 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꼭 이 감자칩이 아니어도 유독 중국에서 봄철 벚꽃 향, 벚꽃 맛 음료나 과자류 출시가 많았던 것 같다. 가리는 것 없이 아무거나 곧잘 먹는 편이지만 먹고 마시는데서 꽃향이 나는 것은 별로 즐기지 않아 - 비슷한 이유로 꽃차도 잘 마시지 않는다- 사먹어 본 적은 없다. 

양메이맛, 밤맛, 벚꽃맛 Lay's

 이 외에도 여름에는 6월경에만 잠깐 나오는 양메이 (杨梅, 영어로는 wax berry 라고 한다. 리치만한 사이즈에 산딸기같이 빽빽하게 과육이 들어차있는 모양새이며 새콤달콤한 맛, 양귀비가 즐겨 먹었다고 한다) 맛 감자칩이 출시되는가 하면, 반짝 등장하고 그 이후로 본적이 없지만 모히또 맛이 스리슬쩍 나타나기도 한다.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는 밤맛 Lay's 가 출시되기도 한다. 세가지 맛 모두 먹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꽃이나 과일류가 워낙 감자칩의 맛으로 구현되기엔 낯설고 맛이 잘 연상되지 않는 소재라 인상깊고, 포장지에 일러스트가 매우 화려하고 정확하게 그려진게 생각나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계절 메뉴만큼 낯설고 독특하진 않지만 꽤나 다양하다고 생각했던게 각종 해산물 맛이다. 장어, 꽃게, 랍스타 맛 Lay's 같이 어느정도 맛이 예상된다. 장어맛은 아마도 데리야키 소스가 발린 장어 구이 같은 맛, 꽃게맛은 '꽃게랑' 과자 같은 맛이 아닐까? 랍스터 맛은 먹어봤는데 앞서 설명한 다른 맛들이 워낙 특이하고 예상 외로 잘 재현되어서일까? 맛이 없는것은 분명 아닌데 그렇다고 대단히 인상싶은 맛도 아니었다. 랍스터가 오이나 라임, 동파육과 비교했을 때 자주 접할일이 없어 맛과 향에 대한 사전 정보가 부족했던 탓일 수 도 있다. 

장어맛, 랍스터맛, 꽃게맛 Lay's

해산물 맛 Lay's 사진을 찾는다고 바이두(百度, 중국판 구글이라 불리는 검색 엔진) 를 검색하다보니 치즈 랍스터 맛이나 볶은 크리스피 꽃게 맛 같은 해산물을 재료로 한 요리 맛 도 따로 있는 것을 보니 메뉴의 인앤아웃도 활발하고 제품맵 자체가 참으로 다양한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마라롱샤(麻辣龙虾) 맛이나 카오위 맛(烤鱼)도 있는게 아닐까 궁금해진다. 식품 BM 은 아니지만 BM팀에서 제품 개발 업무를 하고 있기에 신기하고 다양한 맛들 후단의 비즈니스도 궁금해진다. 새로운 맛의 제품을 출시할때 의사결정은 어떻게 진행할까, 제품 품평은 보통 몇번쯤 할까, 지역과 식습관으로 타겟을 나누어 소비자 조사도 진행할까? 새로 출시될 제품의 샘플을 가지고 FGD 도 진행할까? 가끔 이국적이고 새로운 재료를 구하기 위해 저 멀리 다른 곳으로 출장도 가곤 할까? 재고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단종처리는 어떤 절차를 밟아 하는지, 중국에서만 유독 다양한 맛을 지역 한정으로 출시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전 세계가 각기 다른 지역 에디션을 운영하는지, 감자칩 하나를 두고 생각이 많아진다. 요즘 한국에도 육개장 맛, 신포 만두 맛, 간장 치킨 맛 같은 특이한 맛 감자칩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는데 그럴때마다 집 앞 세븐일레븐에 가서 천태만상 Lay's 를 구경하다 사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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