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삐 Feb 03. 2023

68. 돌잔치 드레스를 고르면서 파리지엔느가 되었다.

돌잔치 드레스 피팅

'한복을 입느냐,

드레스를 입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돌잔치 장소를 예약하고 나서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하기 힘들어서다.


처음에는 한복을 입기로 했었는데 드레스에 자꾸 미련이 생겨서.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드레스를 입어보겠냐는 생각에.


결국, 드레스를 입기로 했다.

내가 고른 드레스 업체는 판교에 있는 '어바웃 드레스'

그 업체를 고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방문 피팅이 가능하고 가봉을 할 수 있으며 (사이즈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 또 하나는 대부분대여 업체는 '여아' 드레스만 다양하고 남아 의상의 선택지가 몇 개 없는데 반해, 그곳은 '남아' 슈트 종류가 많고 옷감이 너~무 고급스러워보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피팅 날-

아이가 입을 옷을 먼저 골랐다.

힘든 일정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는 정말 얌전했고 차분했다. 네 벌 정도 입어보고 트위드 원단의 민트색 재킷에 흰 바지로 결정했다.


그 다음은 내 차례.

대표님은 드레스를 입어 보기 전, 나를 바라보면서

“본인을 파리지앵이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했다.     


순간 당황했다.

파리지앵? 프랑스에 사는 사람처럼 행동하라는 건가?

그건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그 뜻을 알아내려고 애쓰던 찰나, 대표님은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여자들(엄마)은 자신감이 정말 부족해요. 객관적으로 괜찮은 외모를 가졌음에도 평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죠. 남자들은 달라요. 실제 외모에 비해 더 잘생겼다고 생각하죠. 자신감의 차이라고 할까요. 저는 여자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본인을 파리지앵이라고 생각하고 거울을 보세요."


아. 주체적인 삶을 살면서도, 우아함, 매력적인 여자의 대명사가 된 ‘프랑스 여자’를 상상하면서

출산 후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으라는 그런 의도구나.


후.. 그런데 어쩌지..

나는 내가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맞아요. 자신감을 가질게요."라고 말했다.


내가 고른 한 벌과 대표님이 골라주신 두 벌, 총 세 벌의 드레스를 연이어 입어 보았고 대표님은 그때마다 "예쁘다.", "잘 어울린다."라고 리액션을 크게 해 주었다.

솔직히 그 정도로 소름이 끼치게 잘 어울리진 않았지만, 드레스 놀이는 재밌었다.

결혼식 드레스를 입어봤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수줍은 모습이 있었지만 이제는 좀 성숙한(늙은) 아줌마의 모습이??

결혼식 드레스 피팅 때는 화사한 메이크업을 해서 봐줄만 했는데 돌잔치 드레스 피팅 때는 왜 이렇게 퀭하고 초췌해 보이는 아줌마가 보이는지.

불과 2년 사이에?애 낳으면 확 늙는 게 이런거.


남편은 "여보가 입고 싶은 걸로 입어, 내 눈에는 다 이뻐."라고 말했다.

나는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남편은 결혼식 드레스를 고를 때처럼.. 내 눈에는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그게 그거다, 어차피 네가 입고 싶은 걸 입을 거잖아 라는..


그래 맞아, 나는 처음부터 미카도 실크 드레스를 입을 생각이었거든.

내가 입기로 한 드레스는 광택 있는 미카도 실크라서 적당히 단아하고 고급스러워보였고

위에 비즈 볼레로를 입어서 은근히 화려한 느낌도 뿜어냈다. 무엇보다도 미카도 실크의 탄탄함이 군살을 가려주는 큰 역할도 했다.

가봉을 통해서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간 몸매'가 가능할 것 같았다.

덕분에 돌잔치 전 다이어트는 안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나는 변함없는 몸뚱이로 돌잔치를 하게 되는데.. 피팅이 잘못된 건지 드레스가 잘못한 건지.. 결국 이틀 전날 집으로 도착한 드레스를 입고 나서 저녁을 굶어야만 했다.

작가의 이전글 67. '죽을 만큼 힘든데 행복하다'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