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돌잔치 드레스를 고르면서 파리지엔느가 되었다.
돌잔치 드레스 피팅
'한복을 입느냐,
드레스를 입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돌잔치 장소를 예약하고 나서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하기 힘들어서다.
처음에는 한복을 입기로 했었는데 드레스에 자꾸 미련이 생겨서.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드레스를 입어보겠냐는 생각에.
결국, 드레스를 입기로 했다.
내가 고른 드레스 업체는 판교에 있는 '어바웃 드레스'
그 업체를 고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방문 피팅이 가능하고 가봉을 할 수 있으며 (사이즈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 또 하나는 대부분의 대여 업체는 '여아' 드레스만 다양하고 남아 의상의 선택지가 몇 개 없는데 반해, 그곳은 '남아' 슈트 종류가 많고 옷감이 너~무 고급스러워보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피팅 날-
아이가 입을 옷을 먼저 골랐다.
힘든 일정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는 정말 얌전했고 차분했다. 네 벌 정도 입어보고 트위드 원단의 민트색 재킷에 흰 바지로 결정했다.
그 다음은 내 차례.
대표님은 드레스를 입어 보기 전, 나를 바라보면서
“본인을 파리지앵이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했다.
순간 당황했다.
파리지앵? 프랑스에 사는 사람처럼 행동하라는 건가?
그건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그 뜻을 알아내려고 애쓰던 찰나, 대표님은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여자들(엄마)은 자신감이 정말 부족해요. 객관적으로 괜찮은 외모를 가졌음에도 평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죠. 남자들은 달라요. 실제 외모에 비해 더 잘생겼다고 생각하죠. 자신감의 차이라고 할까요. 저는 여자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본인을 파리지앵이라고 생각하고 거울을 보세요."
아. 주체적인 삶을 살면서도, 우아함, 매력적인 여자의 대명사가 된 ‘프랑스 여자’를 상상하면서
출산 후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으라는 그런 의도구나.
후.. 그런데 어쩌지..
나는 내가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맞아요. 자신감을 가질게요."라고 말했다.
내가 고른 한 벌과 대표님이 골라주신 두 벌, 총 세 벌의 드레스를 연이어 입어 보았고 대표님은 그때마다 "예쁘다.", "잘 어울린다."라고 리액션을 크게 해 주었다.
솔직히 그 정도로 소름이 끼치게 잘 어울리진 않았지만, 드레스 놀이는 재밌었다.
결혼식 드레스를 입어봤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수줍은 모습이 있었지만 이제는 좀 성숙한(늙은) 아줌마의 모습이??
결혼식 드레스 피팅 때는 화사한 메이크업을 해서 봐줄만 했는데 돌잔치 드레스 피팅 때는 왜 이렇게 퀭하고 초췌해 보이는 아줌마가 보이는지.
불과 2년 사이에?애 낳으면 확 늙는 게 이런거.
남편은 "여보가 입고 싶은 걸로 입어, 내 눈에는 다 이뻐."라고 말했다.
나는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남편은 결혼식 드레스를 고를 때처럼.. 내 눈에는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그게 그거다, 어차피 네가 입고 싶은 걸 입을 거잖아 라는..
그래 맞아, 나는 처음부터 미카도 실크 드레스를 입을 생각이었거든.
내가 입기로 한 드레스는 광택 있는 미카도 실크라서 적당히 단아하고 고급스러워보였고
위에 비즈 볼레로를 입어서 은근히 화려한 느낌도 뿜어냈다. 무엇보다도 미카도 실크의 탄탄함이 군살을 가려주는 큰 역할도 했다.
가봉을 통해서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간 몸매'가 가능할 것 같았다.
덕분에 돌잔치 전 다이어트는 안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나는 변함없는 몸뚱이로 돌잔치를 하게 되는데.. 피팅이 잘못된 건지 드레스가 잘못한 건지.. 결국 이틀 전날 집으로 도착한 드레스를 입고 나서 저녁을 굶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