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고 아주 조그만 너를 처음 본 순간, 아프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뭉클함, 감격스러움, 감동, 기쁨, 경이로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래서 걱정했다. 모성애가 없는 엄마일까 봐. 그런 내가 일 년 사이에너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엄마가 되었다.
아들은 일 년 동안 많은 성장을 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뒤집기, 네발기기, 앉기, 서기, 걷기를 순서대로 해냈다.
아이는 부모 덕분에 성장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 덕분에 성장한다는 걸 매 순간 느꼈다. 예를 들면, 정리정돈을 연례행사로 여길 만큼 정리를 안 하는 내가 정리를 자주 한다. 매일 환기를 하고 빨래를 한다. 부정적인 말은 물론 좋지 않은 습관도 고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제 아이가 내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육아는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 주는 촉매제다.
아이가 너무 예뻐서 미치겠던 어느 날, 우주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주가 어떤 아이(사람)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내가 어떤 엄마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친구 같은 엄마? 뭘 하든 응원과 지지를 주는 엄마? 잘 놀아 주는 엄마? 혼내지 않는 엄마? 부자 엄마? 답을 찾지 못해서 한 달을 끙끙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부엌에서 유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과거에 부엌은 부담스러운 공간이었다. 신혼 초에는 남편과 아침밥 때문에 싸우기도 했다. 아니 자주 싸웠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아침밥을 챙기는 건 너무 가혹했다. 타협은 반찬 배달이었다. 한동안은 평온했는데 남편은 시켜 먹는 반찬이 너무 질린다면서 또 나를 구박했다. 내가 임신을 하고, 입덧을 하고 나서야 부엌에서 해방이 되었다. 그즈음부터 남편은 아침으로 죽과 조금의 과일을 먹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아침으로 밥을 먹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데면데면했던 부엌과 친해진 계기는 아이의 밥을 만들면 서다. 이유식을 만들면서 부엌이 좋아졌다. 아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뿌듯해서, 더 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안 먹는 모습을 보면 왜 안 먹을까 고민하면서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궁리했다. 점점 요리가 즐거워졌다. 그러니 음식이 맛있어졌다. 정성이 더해지니 실력이 확확 늘었다. 아이 밥에만 신경 쓸 수 없어서 남편 반찬에도 신경을 썼더니 남편이 이렇게 잘할 수 있는 걸 그동안 왜 못했냐고 말했다. 불현듯'밥 잘해주는 엄마가 되어 보는 건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 잘해주는 엄마
내 주변에도 한 명 있다.
친정 엄마는 매일 따뜻한 집 밥을 해줬다. 날 위해서 음식 선물도 많이 했었다. 첫 대상은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내 도시락에 있던 김치를 맛본 선생님이 엄마에게 김치가 맛있다고 말하자, 엄마는 김치 한 통을 들고 유치원을 찾았다.
고등학생 때 다녔던 미술 학원 원장님 부부도, 대학교 때 교수님도 우리 엄마의 음식을 무척좋아했었다.
엄마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면 늘 정성스럽게 집밥을 해 줬다. 복날에는 많은 친구들을 불러 삼계탕을 해 먹이기도 했다. 남편이 처음 집에 인사를 하러 왔던 날에도 엄마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상을 차렸다.
남편이 처음 인사 오던 날의 상차림
나는 늘 엄마에게 고맙고, 엄마가 자랑스럽다.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결혼을 하고, 예쁜 아들까지 얻게 된 건 다 엄마의 밥보시덕분이다.
그래서 나도 내 엄마가 그랬듯이 내 아이에게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먹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면 그게 무엇이든 뚝딱하고 만들어서 먹여주고.
밥 먹는 데에는 돈 아끼지 않고.
아이에게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먹을 걸로 인정을 베푸는.
고맙고 자랑스러운 엄마 말이다.
한 가지 바람을 덧붙이자면,
이 음식만큼은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가장 잘 만든다고, 우리 엄마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생에 꼭 한 번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