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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Mar 24. 2023

76화. 13개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냅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닌 지 어느덧 3주가 지났다.

이번주는 좀 힘들었다. 우주를 어린이집 선생님의 품에 놓고 발길을 돌릴 때면 어김없이 아이가 울었다. 처음으로 우주가 운 날, 당황스러움과 속상함, 미안함 등의 감정이 한 데 뒤섞여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린이집 앞에서 한참 서있었다. 저 멀리서 아이를 업은 어떤 할머니가 내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걸 봤고 순간적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녀는 나에게 걸어와서 말을 걸었다.


"미안한데 아이 모자 좀 똑바로 씌워줄래요?"


할머니의 뒤를 보니 포대기에 우주 또래 아기가 업혀있었고 모자가 뒤로 벗겨져 있었다. 아이가 바람 하나 들어갈 구멍이 없이 겨울 옷으로 꽁꽁 싸매져 있는 반면에 할머니는 얇은 티셔츠 바람이었다. 머리도 마구 헝클어져있고, 신발도 슬리퍼 차림이었다.


내 시선을 느낀 걸까. 그녀는 아이가 하도 빨리 나가자고 보채서 내 꼴이 이래요,라고 웃었다.


아이가 몇 개월인데 어린이집을 보내요,라는 그녀의 질문을 시작으로 대화의 물꼬가 텄다. 업은 이는 친할머니, 업힌 이는 십오 개월 된 그녀의 손녀였다. 그녀는 손녀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며느리가 복직을 하면서 아이를 맡아 기르게 되었다고 한다. 들어 보니, 그녀는 대단히 열성적으로 '황혼 육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육아에 쏟아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5개월 아가에게 아직까지 이유식을 먹이는 건 의아하긴 했지만, 매일 12가지 재료로 세끼 이유식을 만들어 주고, 간식도 제철 과일을 갈아 마시게 한다고 했다.


정작 본인 자식에게는 그러지 못했노라고. 산후 우울증으로 아이의 예쁜 모습보다는 본인의 가여운 모습에 더 마음이 쓰여서. 육아도 제대로 못하고, 살림도 제대로 못한 불완전한 엄마였다고 고백했다. 그때는 젊어서, 몰라서, 그게 다 시행착오였다고.

할머니가 되니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육아와 귀찮았던 살림이 다 즐거운 일 이 되었다고 했다. 역시 할머니의 육아는 관용과 사랑인가.


이런저런 말을 하다 보니 수십 분이 지났다. 육아 얘기까지는 괜찮았는데, 이야기의 화제가 '며느리 스트레스'로 넘어가면서, 왠지 모를 불편함에 휩싸일 무렵, 업혀있던 아기의 눈꺼풀이 스르륵 감기는 걸 보고서 재빨리 그녀를 보내드렸다.



어린이집을 보내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는데, 매일 가슴이 답답하다. 달콤한 자유 시간을 세 시간이나 얻었고, 점심에 이유식 전쟁을 할 필요도 없는데 왜.

전에 만난 할머니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세 돌까지는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보다, 주양육자가 밀착해서 하는 육아가 아이에게 훨씬 좋다고. 80대 할머니가 봐도 집에서 키우는 게 낫다고.


어린이집에 간 후 계속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가 불쌍해 보였는지, 그동안 완강하게 어린이집에 보내자고 말했던 남편이 오늘은 내게 묻는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맞는 걸까"

육아에 맞고 틀리고 가 어딨어. 아프다 보면 면역력도 생기겠지, 언젠가는 겪을 일인데 미리 겪는다고 생각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했지만

내 이기심 때문에 아이가 고통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서 마음이 혼란스럽다.


길에서 만난 그 할머니의 말대로, 엄마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을까.



*나중에 내가 기억하기 위해서 써 놓는 아이의 발달 상황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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