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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Mar 02. 2022

욕망과 좌절의 문제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모든 동물은 가만히 있어도 지치고,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기 마련이며, 수면과 섭식 등 생리적 욕구를 무시하지 못한다.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해진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봐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이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다.  


    인간은 배고픔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와도 씨름해야 한다. 그 목록은 따분함, 초조함, 인정받고 싶은 욕구, 비난에 대한 두려움, 무기력함, 그리고 삶의 의미 찾기 등 끝이 없다. 신체적 허기와 마찬가지로 이런 과제들은 원치 않아도 주기적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다만 대부분의 정신적 욕구는 직관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차이점이 있다. 심심함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어도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란 요원한 일이다.


    삶의 보람이나 성취에 대한 욕구처럼 비교적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가 주기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은 무척 곤란한 일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목표 달성의 성취감을 누린다고 해도 그 충만함이 오래가지 않는다. 아무리 깨끗하게 목욕을 해도 며칠만 지나면 상쾌함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주변을 청결하게 하고 땀이 나지 않도록 신경 쓸 수는 있겠지만 다시 더러워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한번 기쁨을 느꼈다고 해서 그것을 영원히 되새기며 만족할 수는 없다.   


    소설가이자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Status Anxiety)」에서 이처럼 끝없이 만족을 찾아 헤매지만 결코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세속의 욕망을 끊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경지이지만, 적어도 그런 욕망들이 계속해서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돈을 많이 벌거나, 빼어난 배우자를 찾거나, 커리어에서 승승장구한다고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새로운 욕구가 생긴다는 것을 인식하면 현재 상황에 대한 불필요한 원망과 죄책감을 줄일 수 있다. 더 나은 삶의 조건을 획득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도 좋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해서 자책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나의 숙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숙제가 생기니 무엇 하나 미루거나 서둘러야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각자의 고민이 해결된 상상의 인생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한다. 물론 아주 운 좋은 소수는 문제가 전혀 없는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겉보기에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아무리 자세하게 자신의 인생을 중계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보여주지 않는 부분까지 알 수는 없다(덧붙여 자신의 인생을 남들에게 인정받으려 한다는 점에서 이미 어떤 결핍을 읽어낼 수 있다). 내가 겪는 문제나 고민과는 먼 삶을 사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 사람이 모든 욕망의 좌절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인정과 의미를 찾아 헤맬 것이다. 성취감보다는 좌절감과 박탈감을 자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겉으로 보기에 얼마나 쉽거나 어려워 보이건 간에 누구나 자기 몫의 과제를 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욕망의 좌절을 조금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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