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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렌디피티 Oct 14. 2022

순종적인 외동딸, 부모님 뜻에 따라 공무원 되어보니

예스 걸(YES GIRL)의 최후

공무원이 되어 회사에 앉아 자주 했던 생각 중 하나는, '내가 어쩌다 이곳에 앉아 있게 되었을까?'였다. 꿈 많던 학창 시절, 농담으로라도 공무원이 되고 싶단 말은 꺼내지도 않았던 내가 어쩌다 이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난 지독한 '예스 걸(yes girl)'이었다. 

사춘기 시절 아주 약간의 울퉁불퉁함도 표현했지만, 고작 나만의 색깔을 표현한다는 방식은 부모님께 말 안 하고 독서실에 가방을 놔두고 친구와 함께 쇼핑몰 돌아다니기 정도의 일탈이었으니까.

한창 나의 길을 탐색해야 했던, 24살.

엄마의 갑작스러운 병고(苦)에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 학점을 거의 포기해야 했고, 병간호에 매진해야 했다. 그 와중에 길을 건너다 소형 트럭에 치이는 제법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체력 소진으로 결핵까지 앓아야 했다. 교통사고 당시 부상으로 극심한 요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 집에서 운동복을 입고 침대에 드러누워 쉬고 있는 나의 모습은, 평생을 성실함으로 살아오신 아버지가 보시기엔 몹시 한심해 보였던 것 같다.

"넌 체력도 약하고 하니, 사기업에 들어가면 오래 못 버틴다. 아버지 말 들어라. 당장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도록 해. "

"네..." (내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음.)

그렇게, 나의 공무원 수험생활이 시작되었다.

노량진으로 가서 학원 수강신청을 하 수업을 들었다.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좋지 않은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서 정말이지 내 몸을 갈아 넣고 나서야 공무원 합격이란 자격증을 얻었다. 그것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부모님께 이것으로 내가 할 도리를 다 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모든 과정은 얼핏 보면 잘 연출된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렇지만 그 과정엔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의무감'과 '책임감'만 있었고, '흥미'와 '소망'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그저 공무원이 되는 게 부모님께 효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굳게 믿었고, 남들에게 보기에 좋은 것이 당연히 나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회사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밤중에 울다 지쳐 과호흡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나 자신에게 주문을 외우듯 최면을 걸고 버텨야 했다.


내가 들어보지 못해서,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말들 (다나카 시게키 지음, 장민주 옮김)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은, 꿈을 찾아 방황해보지 못했던 나의 20대 시절을 되돌아보게 했다.

만약 부모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닌, 아이 스스로 결정한 진로였다면 어땠을까요? 힘들어도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목적지에 도달했다면 '아수라장'같은 시련이 닥쳤을 때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진로 때문에 고민을 할 땐 일단 부모의 희망이나 욕심을 멈추고 아이가 자신의 마음과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더 큰 불행을 막는 올바른 대처법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잡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설사 부모 눈에 변변치 못한 결정 같고 아이가 금세 흥미를 잃을 것 같아도 아이가 직접 찾은 관심 분야나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부모로서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아이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할애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마세요. 멈춰 서거나 다시 시작하는 데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내가 만약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나를 돌아보았다면, 지금쯤 어떤 자리에 서있을까?

그때도 이렇게 힘들었을까?

아니면 힘은 들지만,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가고 싶어 하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다시 한번 더 높이 뛰어보고 있진 않았을까? ('벗어나고자'가 아닌...)


그렇지만 이제 와서 멈춰 서거나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예스걸이 아닌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 바람이 이뤄지기를, 멈춰 서거나 다시 시작하는 데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책 속의 말이 나에게도 해당된다고 굳게 한 번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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