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렌디피티 Oct 06. 2022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자꾸 떠오르는 민원실의 악몽

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려 집을 나서는데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서 어떤 할머니가 고성을 지르고 계셨다.

"내 집을 돌려주세요~ 내 집을 돌려주세요!" 경찰분들도 와 계셨는데 무슨 일인가 의아했지만 학교에 늦을까 봐 딸아이의 손을 꼭 쥐고 가는 길을 재촉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그 할머니는 아직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듯했고 경찰분들도 여전히 그분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계셨다.

당황스럽게도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저 할머니가 돌려달라는 집이 '우리 집'이면 어떡하지?'

'저게 내 문제면?'

밑에서 소리를 지르는 그 할머니는, 꼭  내가 책임을 져야 할 민원인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나의 뇌는 가동되고 있었고,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경찰차에 몸을 싣고 사라지는 것 같았던 할머니는 저녁 무렵에 다시 나타나 고층인 우리 집까지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셨다.

낮동안 다시 어렵게 평온을 되찾은 나의 머릿속은 갑자기 혼돈 상태로 빠져들었다.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해주어야 하는데 도무지 그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가장 편안했던 나의 집은 갑자기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민원실'로 변해 있었다.

모든 이의 혈액의 흐름마저 멈추어 버릴 듯한 삭막한 사무실의 팽팽한 공기가 나의 집에서 느껴졌다.

심장은 펄떡펄떡 요란하게 뛰고, 숨이 조여 오고, 호흡이 가팔라지며 위가 부어 윗배가 팽팽해졌다.

사무실에서 종종 느꼈던, 익숙한 증상이었다.

회사 풍경이 뇌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악성 민원인의 삿대질, 고성, 울부짖음.

단지 그분에게 '오늘의 타깃에 된 나'에게 향하는 모멸감 가득한 욕설.

나는 무조건

"네.. 네.."만 말할 줄 아는 로봇이 되어야만 했다.

회사에서 나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 어떤 부당한 요구에도 고개 숙여 연신 "죄송하다, 기다려 달라."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감사관실에 찾아간 민원인에게 훗날 따로 전화로 내키지 않는 사과를 해야만 했다.

핸드폰을 찾아 손에 쥐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밖에서 어떤 할머니가 소릴 지르시는데 나한테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울먹이며 말끝을 흐렸다.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다는 걸.....

"당연하지." 남편의 심드렁한 대답에 나는 어영부영 전화를 끊었다.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티를 내고 싶지 않아 감정의 끈을 꽁꽁 동여맸다.

다음날도 이 상황은  계속됐다.

일주일 정도 후에 알았다.  

그 할머니가 돌려달라는 건 우리 집이 아녔음을...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음을...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내가 해결해야 할 민원인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말도 안 되는 나의 반응에 또 한 번 놀라고, 실망스러워 그 이후로 며칠 동안 혼란스럽고 우울했다.

회사에 돌아갈 수 있을지

더욱 '불투명'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리 못해도 '장관'쯤은 됐어야 할 울 엄마의 교육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