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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렌디피티 Apr 29. 2023

재즈만 듣던 40대 아줌마, 아이브 노래에 빠지다.

요즘 아이돌 노래에 빠져버린 아줌마 이야기.

"요즘 애들 노래는 도통 가사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예전 노래가 훨씬 낫지."

차에서 노래를 듣다가 요즘 유행하는 노래라도 잠시 나올라치면 핸드폰을 들고 얼른 익숙한 노래로 바꿔버렸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아들의 별명은 '90년대 사람'이라고 한다. 요즘 아이돌이 어쩌고 저쩌고 할 때 아들은 오래된 팝송 레몬트리를 흥얼거리거나 90년대 유행가에 대해 말하고 다니다 보다. 사실 아들의 말을 듣고 살짝 놀랐다. 예전 노래, 익숙한 노래만 듣기 좋아하는 나 때문에 아이가 저렇게 요즘 유행하는 것엔 문외한이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괜한 거리감이 들진 않을까 조바심도 들었다. 그렇지만 굳이 내 노래 취향을 바꾸고 싶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룹 아이브의 신곡이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떴다. 노래의 제목은 '키치'였는데, 별생각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이게 웬걸? 음... 마치 산딸기크림 봉봉을 먹은 듯 상큼했다. 그동안 발효버터 같은 부드럽고 기름진 재즈의 풍미에 항상 젖어있었다. 느끼한 초콜릿에 가미된 상큼한 민트맛을 깨달은 아줌마는 '키치'를 듣고 나서부터 변해버렸다. 집에서 반찬을 만들 때나 빨래를 개는 단순한 일을 할 때 노동요로 아이브의 '키치'를 듣기 시작했다. 그동안 상큼이들의 음악을 멀리한 탓에 내 일상이 이리도 칙칙하지 않았나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과 딸도 처음엔 시큰둥하더니 키치에 맞춰 점점 흥얼거리며 춤을 들썩이며 신나게 리듬에 맞춰 흐느적대기 시작했다. 이 노래를 듣고 나서부터는 분에 두세개 개던 빨래도 네다섯 개까지 갤 수 있게 되었고 반찬 만드는 시간도  빨라졌다. 주방에서 일하는 동안 궁둥이를 촐싹맞게 덩실거리고, 어깨도 들썩거렸다. 요리하는 시간이 '일'이 아닌 '놀이'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요즘 노래가 궁금해졌다. 음악 어플을 열어 이것저것 눌러보니 세상에나, 좋은 노래들이 많았다. 그동안 이 좋은 걸 왜 모르고 살았던 거니......

'요즘 애들 노래' 이런 말을 하는 나도 80대 90대 노년층에겐 요즘 애들뻘(?)은 안 돼도 요즘 노래를 듣겠거니 하는 '요즘 사람'일 텐데, 왜 '요즘'과 '예전'이라는 경계를 만들어 선을 긋고 즐거움의 폭을 제한하며 살았을까? 지금도 혹시 깨닫지 못한 또 다른 나의 '키치'같은 존재가 있지 않을까?

인생은 짧다. 이왕 이렇게 태어나서 살게 된 바에야, 나의 기분을 때때로 업 시켜줄 수 있는 상큼한 것들을 가까이에 두고 어루만지며 궁둥이를 덩실거리며 살고 싶어졌다.

(아이돌의 노래를 좋아하게 된 어미와는 달리 요새도 아들은 여전히 승용차 뒷좌석에서 토끼 귀 모양 헤드셋을 끼고 '레몬트리'를 흥얼거리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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