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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렌디피티 Jun 21. 2023

시어머니께 미니멀라이프를 한다고 했더니...

나는 좋은 물건을 헐값에 파는 며느리입니다.

미니멀라이프라는 신박한 세계를 알게 되면서 가장 먼저 실행한 건 집에서 오랫동안 안 쓰는 물건을 찾아 중고마켓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평소에 모르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물건을 거래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아 중고판매 앱을 잘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고리 거래'라는 거래방식을 발견하게 되면서 '앗, 바로 이거야.'라는 유레카를 외치며 닥치는 대로 나의 물건을 올려댔다. '문고리 거래'는 보통 물건의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물건이 금액을 선입금해주고, 입금이 확인되면 판매자의 집주소를 알려주고 집 앞에 물건을 내놓는 비대면 방식으로 물건을 거래하는 방식이다. 타인에게 나의 집 주소가 고스란히 알려지는 위험부담이 있지만, 그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방식을 택했다. 시세보다 다소 저렴하게 물건을 내놨다. 내가 안 쓰는 물건은 빠른 속도로 중고거래 앱에서 팔려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시어머니가 방문을 하셨다. 김치를 가져다주러 오셨는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현관 벨이 울렸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문을 열어보니, 어떤 할머님이 서계셨다. 세상에나, 내일 문고리거래로 야채다지기를 사가기로 했던 구매자가 갑작스레 집에 찾아온 것이었다. 이 근처를 지나는 길에 그냥 들렀다고 하셨다. 아니 이런... 황급히 판매하기로 한 야채다지를 주섬주섬 챙겨 그분께 전달하고 집에 들어왔다. "누구니?" 어머님이 질문에 그간 사정을 설명하며 진땀을 뺐다. 왠지 모르게 진땀이 났다. 어머님은 그 야채다지기 얼마에 팔았냐고 물어보시더니 내가 헐값에 팔았다며, 차라리 본인이 가져가서 쓰게 주지 그걸 왜 파냐고 하셨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 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지만, 내 물건 내가 파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나란 억한 심정도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 미니멀라이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미니멀라이프의 가장 큰 적은 시어머니라고... 왜 이런 말이 나왔나 하고 살펴보니, 어떤 분이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기 위해 현관 앞에 잔뜩 쌓아놓았는데 갑자기 오신 시어머님이 이 아까운걸 왜 다 버리냐고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자신은 시어머님에게 집안 살림 아까운 줄 모르고 막 버리는 며느리로 낙인찍혀 한동안 고생을 했다고 말이다. 그 분과 비슷한 일이 나에게도 벌어진 듯했다. 어머님은 손주 책상에 올려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LED스탠드를 보시며 저건 얼마에 팔 거냐고 물어보신 후 너무 싸게 판다며 자신이 쓸 테니 달라고 가져가셨다. 어머님께 내가 여태까지 쓰지 않은 물건은 앞으로도 쓸 가능성이 적을뿐더러 미래의 '언젠가'는 거의 오지 않는다며 침을 튀기며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열창했지만 이미 어머님의 마음은 나의 뜻과는 멀어져 있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물건다이어트의 막바지에 다다른 군더더기 없는 우리 집에 시어머님이 다시 놀러 오셨다.

어머님은 집이 너무 넓어 보인다며 몰라보게 달라진 아이들 방을 구경하시며 연실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제 목표는 저희 집에 제가 모르는 물건이 없는 거예요, 집에 가 좋아하고 사용하는 물건만을 갖춘 집을 만들고 싶어요."

그 틈을 타서 미니멀라이프라는 방식에 대해 약간의 홍보를 보탰다. 흡사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는 손님에게 호객행위를 하는 상점 직원의 자세로 말이다.

며칠 뒤 어머님께 카톡이 하나 왔다.

"어멈야, 우리 집도 좀 넓게 쓰고 싶은데 이 짙은 색 거실장을 흰색으로 바꾸면 어떻겠니?"

거실장을 새로 하나 장만하시려고 하시는 어머님께 그러지 마시고 거실장을 비우고 티브이를 벽에 다는 방법을 추천드렸다. 비좁은 상가주택을 거처로 사용하시는 시부모님 댁은 집 규모에 비해 짐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고 계신다는 걸 익히 알고 있기에 권해 드린 방법이었다.

"어머님 댁에는 뭘 사서 채우기보단 비우는 게 더 나을 듯해요."

어머님은 알았다고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다음날 어머님은 티브이를 벽에 걸었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이런 내용의 톡을 보내셨다.

'우리 보석 같은 어멈아, 니 덕분에 집이 깔끔해져서 잠이 절로 온단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고 싶고 기분이 좋네... 네 말대로, 고맙다.'라고 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거실장은 그냥 버리지 않고 그 위에 물건을 싹 정리하고 예쁜 천을 덮어 새로운 느낌의 공간으로 꾸미셨다고 한다.

어머님의 '첫 버리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미니멀라이프라는 생활방식에 대한 '편견 버리기'는 약간의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싶은 마음이 조심스럽게 들었다.


나의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할 의무도 권리도 없다. 다만 집이 좁아 늘 고민이 많으셨던 어머님께 새로운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드린 것만으로도 족하다. 새로운 방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 고리타분함을 털어내고 손을 내밀어 준 어머님께 감사하다. 좋은 물건을 헐값에 파는 며느리였지만, 남에게 베푼 선의는 언제나 내가 필요할 때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믿는다. 그리고 이 믿음은 평생 나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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